뉴스기사

2009.07.15 14:17

(오피니언) 국내 간판 문화에 대한 소고

  • 편집국 | 176호 | 2009-07-15 | 조회수 2,984 Copy Link 인기
  • 2,984
    0
“국내 간판 문화 의식 수준 바닥”
“규격 뿐 아니라 색 규제도 필요”
 
이경순 대표가 이번 사업에 참여하면서 느낀 점과 국내 간판문화의 현주소에 대해 기고했다. 이경순 대표는 히딩크 넥타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유엔마크 넥타이 등 정재계 인사의 넥타이나 스카프 디자인을 도맡으며, 유명인사들 사이에서 입소문난 디자이너이다.   
 
293_.jpg
누브티스 이경순 대표
 
이번 사업의 디자인에 참여하면서, 세입자들의 이해관계로 인해 강으로 가야할 배가 산으로 올라가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또한 아직 우리의 문화 마인드가 한참 부족하다는 것을 절감했다.
면적은 한정돼 있는데, 12개 점포의 점주들은 각자 튀어보겠다고 색상에서 불빛까지 치열한 경합을 벌인다. 한치의 양보도 없다. 형광 색상으로 가독성을 높이고, 이웃 간판 위치보다 좋은 위치를 고집하며, 사이즈는 당연히 커야한다는 것이 기본적인 주장이다. 전화번호도 꼭 넣겠다고 고집한다. 사익만을 추구하며, 공익을 위한 디자인은 안중에도 없다. 삭막하고 각박한 것이 대화가 진행될수록 점입가경이다. 한 업소를 위해 다시 크레인을 부르고 디자인을 바꾸면서 발생한 이중의 경비는 고스란히 우리의 몫이었다.

도대체 디자인을 하는 것인지 의견을 조율하는 것인지, 점주들의 비위를 맞추는 것인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나중에는 궁여지책으로 그들의 의견반, 디자이너 의견반으로 결말을 낼 수 밖에 없었다. 회의만 20회가 넘었고, 디자인 수정만 30 차례가 됐다. 그때 사용한 프린트 분량도 200장이 넘는다.
우리 회사 사옥에는 간판이 없다. 특별한 필요성을 느끼지 않기 때문에 간판을 달지 않았다. 향후에도 간판을 걸 생각은 없다. 개인적인 경험으로 간판은 일과 비즈니스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본다. 또한 앞으로 인터넷의 영향력이 더욱 강화돼 간판은 그저 추상과 예술로, 보는 이의 시각을 위한 서비스 차원의 수단이 되리라고 보여진다.

기원전 79년 대폭발로 매몰되었던 폼페이의 유적지에서 발굴된 벽면 구조를 통해서 당시의 간판 모습을 읽을 수 있다. 우유가게는 ‘산양’을 나무판에 걸어서 표시했고, 목로주점의 간판은 술통을 멘 두 남자의 조각품이다. 이런 소박한 유형의 은유적인 간판들은 로마시대 이래 17세기까지 이어졌다. 중세에 이르러서 옷가게는 가위를 하나 걸어 놓았고, 농기구 가게에는 쟁기, 식품점에는 설탕포대, 서점에는 성서와 왕관을 표시했다. 상상만해도 아름다운 풍경이다.
아직도 우리의 간판은 전하고, 표시하며, 유도하는 광고 기능적 역할에만 충실하다.
 
서울의 현실이 이러한데, 지방이나 소도시는 더 심각한 실정이다. 현란한 색상, 도로 위에 버젖이 난립한 스탠드 간판, 때묻고 칠이 바랜 간판들이 즐비하게 몰염치한 상업주의의 상징물이 되어 늘어서 있다. 도무지 경관이나 주변과 조화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지자체들은 막대한 예산을 지원해 간판 대정비에 나섰지만 그 뜻이 점주들의 상혼을 뚫기에는 갈 길이 멀다. 선진국과 같이 자신을 낮추고 배려하며 조화를 이루려는  의식이 자리잡지 않는한 먼 나라 이야기이다.
현란한 주황색을 요구하는 업주와 상담을 진행하며, ‘색상 규제를 새롭게 도입해 공공색에 대한 규범을 만들지 않으면 지자체의 재정적 지원은 공염불이 될 것’이라는 판단이 섰다.

샹제리제 거리의 경우 붉은 잿빛 건축물에는 ‘붉은 색’을 건물이나 간판에 사용하지 못하게 규제를 가하고 있다. 반면, 우리는 사이즈만을 규제하는 법규만 있고 색상에 대한 제한은 부족하다. 색상을 규제하기 위한 ‘색환경 관련조항’의 신설이 필요한 시점이다. 도시디자인이라는 명제하에 이웃을 배려하고 서로 양보하는 아름다운 풍광을 언제쯤 감상할수있을까!
디자이너의 아름다운 상상력이 행정과 함께 융합되기를 학수고대한다.

[ⓒ SP투데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공유링크 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