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간판도 문제지만 그런 간판들을 정비하기 위한 사업자선정 방식은 더 문제다’ 전국 자치단체들에 의한 간판 정비사업이 경쟁적으로 전개되고 있는 가운데 사업자 선정을 둘러싼 시비와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공사권을 따낸 사업자의 자격 시비, 특정업체 밀어주기 의혹 등 사업자 선정과정에서 크고 작은 문제점들이 속속 불거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간판만 바꿀게 아니라, 간판정비사업의 사업자 선정방식부터 달라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최근 한국옥외광고협회의 한 현직 지부장이 구청의 간판정비 사업 진행과정에 개입, 수천만원의 거액을 챙겨 물의가 빚어지고 있는 사실이 본지 보도<2009년 8월 31일자 제179호 4면 참조>를 통해 알려지자 본지에는 이 사건은 간판정비사업의 왜곡된 사업자선정 구조 때문에 빚어진 일이라며 잘못된 사업자 선정방식의 문제점을 짚어서 개선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이 답지했다.
‘간판정비 사업에서 정작 간판업자는 배제돼’
간판정비 사업의 사업자 선정 방식에서 가장 큰 폐단으로 지적되는 것은 간판정비사업의 주체가 돼야 할 간판업자들이 사업에서 배제되고 있다는 점이다. 해를 거듭하면서 간판 정비사업의 규모가 커지고 건수가 많아지는데 반해 정작 사업권을 딸 수 있는 업체는 극소수로 제한되고 있고, 또 사업의 주체가 돼야 할 간판 사업자들이 다른 사업자들에게 사업권을 빼앗기고 그들의 하청업체로 전락하는 사례가 늘어만 가고 있다. 이는 단순히 간판업계의 밥그릇을 다른 업계에 빼앗기는 이권침탈의 차원을 넘어 하청에 의한 부실공사로 이어지는 구조적인 문제라는 점에서 심각성이 크다. 지난해 지방의 A시는 5억원 규모의 간판정비사업을 추진하면서 지역제한 경쟁입찰을 통해 사업자를 선정했다. A시의 옥외광고업자들은 입찰에 참여했으나 결과적으로 아무도 사업권을 따내지 못했다. 나중에 알고보니 입찰 약 한 달 전쯤 사업장 주소지를 A시로 옮겨온 외지업체가 단독으로 사업권을 따냈다. 게다가 그 외지업체는 원래 옥외광고업자도 아니었고, 옥외광고업과 전혀 무관한 사업자였다. 낙찰업체는 사업권을 거머쥔 뒤 실제 제작과 시공은 공사금액의 60% 정도로 A시에 소재한 옥외광고업자들에게 하도급으로 넘겨 진행했다. 공사규모가 이미 절반 가까이 줄어든 상태에서 진행되다보니 저가형 자재가 사용됐고, 시공 1년도 채 안돼 여기저기서 간판의 형태가 뒤틀리거나 변색되고, 조명이 안되는 등 하자가 발생해 점포주인 지역 상인들의 원성이 자자하다. 이같은 사례는 비단 A시뿐 아니라 전국적으로 비일비재하게 벌어지고 있다.
간판 공사에 금속창호 면허는 왜?
일부 자치단체들이 사업자 선정시 불필요한 자격을 요구하는 등 사업 참여의 문턱을 터무니없이 높이고 있는 것은 더 큰 문제로 지적된다. 사업참여 자격으로 옥외광고업등록증 외에 산업디자인, 환경디자인, 철구조물, 금속창호 등의 자격을 추가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업계는 이들 자격증이 간판을 만들고 시공하는 일에는 아무런 쓸모가 없으며 그럼에도 사업참여 대상자를 제한하기 위해 동원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간판업자들이 사업의 주체가 되지 못하고 업역(業域)을 침범당하는 주된 이유가 바로 이같은 잘못된 사업자 선정 방식에서 비롯된다. 게다가 이같은 사업자선정 구조가 반복되면 간판업자들은 자연스럽게 하청업자로 전락해 버릴 수밖에 없고 그 결과 옥외광고물의 제작 및 시공에 전문성을 부여하고 관련 산업을 진흥시킬 목적으로 도입한 옥외광고업등록제도는 그 자체가 유명무실해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간판정비사업의 주체는 간판업자가 될 수 있도록 사업참여 자격을 옥외광고업 등록업체로 한정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사업자 수는 사업규모에 맞도록 해야
이와 함께 간판정비 사업에 참여하는 사업자의 수를 현실에 맞도록 늘려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 간판정비 사업은 대부분 일정 기간내에 대량의 물량을 제작 시공하는 구조로 진행된다. 적게는 수백미터에서 많게는 수킬로미터에 이르는 거리를 사업구간으로 정하고, 수백개의 간판을 일괄 교체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간판은 제작과 시공을 막론하고 작업의 특성상 한 사업자가 단시간에 많은 물량을 소화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런데도 대부분 정비사업의 경우 1개 업체가 사업권을 따내 단기간에 수백개의 간판을 교체해야 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때문에 사업권자는 불가피하게 다른 업체에 하도급을 주지 않을 수 없고, 사업이 하도급으로 넘어가게 되면 사업 금액은 반토막나고 결국 부실시공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소수 사업자를 선정해 사업을 진행하는데 따른 이같은 폐단을 인식, 일부 자치단체는 최근 사업규모를 감안한 적정 수의 사업자를 선정하는 등 차별화 시도에 나서고 있다. 서울 강남구는 올 상반기 디자인서울거리 사업의 일환으로 강남대로 일대 16개 건물의 간판을 정비하는 사업을 벌이면서 건물별 공모를 통해 최종 8개 업체를 선정, 각각 1~3개 건물을 맡아 진행을 하도록 했다. 마포구도 약 6억원을 투입, 서교로의 37개 건물 236개 업소를 대상으로 간판정비사업을 진행하면서 최종 5개 제작업체를 선정해 구간별로 공사를 하도록 했다. 하지만 이같은 사례는 극소수에 불과하고 아직까지도 많은 자치단체들이 한, 두 개 업체에 독점적인 공사권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와 관련, 옥외광고협회 서울시지부 차해식 지부장은 “사업의 규모에 맞는 사업자 선정이 이뤄져 업계에 사업권이 골고루 배분돼야 한다”고 강조하고 “사업자 선정권을 해당 점포주나 건물주에게 부여하여 각자의 선택에 따라 개성있게 진행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대안을 제시했다. 차 지부장은 “그렇게 되면 주민들이 스스로 선택한 업자와 충분한 협의 과정을 거쳐 간판을 설치하기 때문에 사업 결과에 대한 만족도도 올라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역 사업자가 진행하는 게 합리적
현장 작업이 핵심인 간판일의 특성상 원거리 사업자는 근거리 사업자보다 작업여건이 나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지방 간판업자들은 사업권을 해당지역 업체들로 국한시킬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원거리 타지에 가서 사업을 직접 추진하려면 원거리 이동과 현지 숙식, 동의를 구해야 하는 지역 점포주들과의 정서적 괴리 등 불리한 점이 한둘이 아니다. 외지업체가 사업권을 가져갈 경우 거의 모든 작업이 지역업체들에 의한 하도급으로 진행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사후관리가 어렵다는 데 있다. 간판에 A/S 문제가 발생해도 즉각적인 대응이 불가능하며, 일회성 사업이라는 허점을 이용해 대응조차 안할 공산이 크다. 간판을연구하는사람의 이송근 대표는 “마포구 서교로의 경우 사후관리의 문제 때문에 관내 업체를 선정해 사업을 진행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간판은 죽으나 사나 현장의 일이기 때문에 지역업자가 사업을 진행하는 게 합리적”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같은 여러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문제가 있는 방식으로 사업자가 선정되는 일이 되풀이되다 보니 해당 사업을 둘러싸고 ‘특정업체 밀어주기 의혹’이나 ‘업체 선정의 불공정성’ 잡음도 끊이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