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는 신년호 사설을 통해 ‘2010년을 옥외광고산업 재도약의 발판으로 삼자’고 제안하면서 그러기 위해서는 업계가 권리의식을 가져야 하고 업종단체들이 제역할을 수행해 나가야 한다고 역설한 바 있다. 그런데 그로부터 며칠도 안돼 옥외광고업 등록대상 자격을 산업디자인 분야로 확대하겠다는 정부 방침이 나왔다. 기획재정부가 정부부처 의견을 취합 작성한 ‘제4차 기업환경개선대책’에 따르면 시각디자인 기사 등 산업디자인 분야 자격자들에게도 옥외광고업 등록자격을 부여한다는 것이다. 옥외광고 주무부처인 행정안전부는 그같은 방향에 이미 동의하고 앞으로 있을 옥외광고물등관리법 시행령 개정시 반영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어 등록자격 확대는 기정사실로 다가서는 느낌이다.
정부는 이번 정책이 기업 환경을 개선하고 규제를 완화하는 차원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정부의 정책 방향은 불과 4년 전 도입한 옥외광고업 등록제의 근본 취지와 업의 현실을 간과한 것으로서 여러 심각한 문제점들을 안고 있다. 우선, 이 방향은 등록제의 근본 취지를 뿌리째 흔들 수 있는 정책이라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는 지난 2006년 신고제를 등록제로 바꿔 옥외광고업의 문턱을 높였다. 당시 각 분야에서 규제 완화가 대세였지만 옥외광고업 만큼은 거꾸로 규제를 강화했다. 신고제로 인한 자격미달 사업자 난립→과당경쟁→광고물의 질적 저하 및 불법광고물 양산→도시경관 황폐화로 이어지는 우리의 일그러진 간판문화 현실에서 어쩔 수 없이 규제를 강화하는 처방을 내렸던 것이다. 무자격자를 걸러내 업의 전문성과 광고물의 질적 개선을 꾀하고 나아가 산업화를 도모해 나간다는 취지였다. 그에 앞서 정부는 등록제의 성공적 정착을 위해 국가공인 옥외광고사 제도를 시행했다.
2003년 11월 첫 시험이 실시된 국가공인 옥외광고사는 현재까지 총 8,000여명이 배출됐다. 관련법규, 광고경관, 광고디자인, 설계및 시공 등 필기 4과목과 옥외광고물의 설계·디자인에 관한 실기 1과목으로 이뤄진 자격시험을 통과한 이들은 현재 현장에서 산업역군으로서 등록제가 정착돼 나가는데 있어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이처럼 옥외광고사 자격제와 등록제가 뿌리를 내려가는 상황에서 자격대상을 이업종으로 확대하는 것은 옥외광고사들의 사기 저하 및 업의 전문성 저하로 이어질 개연성이 크다. 또한 업의 문턱을 다시 낮춤으로써 과거의 과당경쟁 및 그로 인한 광고물의 질적 저하로 이어지던 악순환이 재연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그렇게 된다면 지금까지 공을 들여온 옥외광고사 자격증제와 옥외광고업 등록제는 유명무실화될 우려가 크다.
둘째, 산업디자인 분야가 과연 옥외광고업을 영위하기에 적합한 분야인가의 문제다.
광고물에서 디자인의 요소가 중요해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옥외광고업에서는 디자인이 주가 될 수 없다. 옥외광고업은 크고 무거운 광고물을 위험한 장비들을 사용하여 제작하고 건축물에 시공하는 작업이 핵심이다. 옥외광고 전문업체가 디자인을 하는 경우는 많아도 디자인 전문업체가 광고물을 제작하고 시공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디자인 전문업체들이 수주하는 광고물공사가 전량 옥외광고 업체를 통해 하청처리되고 있는 현실이 이를 방증한다. 초기 간판정비사업을 담당했던 지자체 공무원들은 디자인 전문업체들이 만든 디자인 때문에 애를 먹은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림 속의 디자인을 막상 광고물로 표현하려고 보니 적합한 소재가 없고 소재가 있어도 표현에 한계가 있어 결국 디자인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다. 그림속 디자인과 현실 광고물 사이의 간극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일화다.
산업디자인 분야가 등록자격 확대를 요구하는 배경을 들어보면 더더욱 정부의 이번 정책방향을 수긍하기 어렵다. 산업디자인 분야는 옥외광고업과의 연관성이 더 떨어지는 컴퓨터그래픽스운용기능사에게 자격을 부여한 것을 근거로 정부에 줄기차게 요구를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사실 컴퓨터자격자에게 옥외광고업 문호를 열어준 것이 잘못 끼운 첫단추였다. 컴퓨터그래픽스운용기능사의 시험과목은 산업디자인일반, 색채 및 도법, 디자인 재료, 컴퓨터그래픽스 등 필기 4과목에 컴퓨터그래픽스운용실무 실기 1과목이다. 옥외광고사 자격시험과 비교해 보면 옥외광고업과의 연관성 차이가 어느 정도인지 단번에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잘못 끼워진 첫 단추 때문에 두 번째 단추도 잘못 끼워지려 하고 있다. 지금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등록제의 취지가 보다 잘 살아나는 정책을 개발하고 열악한 업계 환경을 개선하여 산업화로 이끌어주는 일이라고 본다.
등록제가 시행되고 있지만 아직도 무등록 사업자들이 적지 않다. 금속창호 업체, 건축업체, 인테리어 업체, 디자인 업체들이 광고물을 수주하여 옥외광고 업체에 하청주어 처리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그 결과는 원청업자 몫 만큼의 하청업자의 손해, 그로 인한 광고물의 질적 저하 및 광고문화의 퇴보다. 옥외광고물에서 디자인 요소가 중요하다면 옥외광고 업계의 디자인 능력을 고양시키면 될 것이다. 옥외광고사 자격시험시 디자인 능력을 대폭 강화하는 것이 한 방편이 될 것이고 옥외광고업을 하고 싶어하는 산업디자인 분야 자격증 소지자들에게는 옥외광고사 자격증을 취득하도록 하면 될 것이다. 연관성을 이유로 산업디자인 분야에 옥외광고업을 열어준다면 거꾸로 똑같은 연관성을 이유로 옥외광고업 분야에 산업디자인 문호를 열어줄 수 있겠는가. 등록제 도입시 컴퓨터자격자를 포함시키는데 대해 반대했었던 옥외광고 업계는 이번에도 강력한 반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정부가 업계의 주장을 이기적인 것으로 치부하지 말고 산업 발전과 광고문화 발전의 주체라는 시각에서 진지하게 경청하고 수렴해 주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