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회사 다니세요? 어떤 업무를 하세요?” “음…미디어 관련 업무인데…음…말해도 잘 모르실 거예요.”
사회초년병시절 처음 만난 사람들이 ‘연예인과 최신제품에 대한 기대 가득한 눈빛’으로 질문을 던지면 이처럼 얼버무릴 때가 많았다. 조금 지나서는 정확히 얘기하기보다 ‘대표 간판부서’라는 둥 ‘광고회사 내 부동산’이라는 둥 에둘러 반 농담으로 얘기하길 즐기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 새로 만날 사람들이 줄어들고 처음 봐도 이른바 ‘옥외판’ 내에서 만나기 시작하면서 ‘어떤 업무’를 하는지에 대한 설명 고민을 잊었는데 최근 다시 고민이 시작되었다. ‘브랜드 플레이스먼트(Brand Placement)팀’ 2010년 1월부로 새로 바뀐 팀 이름이다. ‘옥외매체’, ‘SP미디어’, ‘OOH 미디어’ 등 그 나물에 그 밥 식으로 팀 이름 바뀌는 건 그간 익숙해졌다. 하지만 이번엔 조금 다르다. 우선 발음하기가 수월치 않고 업무영역 설명하기가 상당히 난해하다. 머릿속이 더 복잡해 질 수밖에 없는 이유가 하나 더 있다. 나조차도 아직 팀명과 업무에 적응하기 전인데 다음주면 새 직원을 맞이해야 한다. 결국 새로 들어올 후배 직원에게 업무 오리엔테이션을 대신해서 이 글을 정리하고 있다는 걸 먼저 밝히고 싶다. 그래야 후배 직원이 나처럼 겪게 될 상황(광고회사에서 무슨 일 하냐는 주변 사람들의 질문)에서 주눅들지 않고 대답하게 하고픈 마음으로 쓴 ‘거품 가득한 논리와 비현실적인 욕심’을 눈감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비록 개인적 동기로 이 글을 정리하게 됐지만 내용만큼은 옥외매체 업무에 직접 종사하시는 분이나 관련 있으신 모든 분들과 함께 꼭 공유하고픈 것이라는 점도 함께 밝혀두고 싶다.
브랜드 플래이스먼트팀. 정확히 얘기하면 옥외매체팀의 이름이 바뀐 것은 아니고 기존 PPL(Product Placement)팀의 업무가 옥외매체 업무와 합쳐지면서 만들어진 이름이다. 그런데 꿈보다 해몽이라 할 수 있겠지만 바뀐 팀 이름을 적용하고 보니 옥외매체에 대한 업무 태도도 보다 능동적으로 바꾸고 매체 영역도 보다 넓게 볼 수 있는 근거로 삼을 수 있게 되었다. 기존 광고회사 내 ‘옥외매체 업무’의 뉘앙스는 허가된 장소 또는 주어진 영역을 광고주에게 중개하는 방식 즉 ‘트레이더’ 개념이 강했다. 하지만 다양한 브랜드를 여러 가지 방식으로 플레이스먼트(배치) 할 방법을 찾아야 하는 최근 광고회사의 옥외매체 업무부서는 디벨로퍼 개념이 더 강하다. 그렇다고 전통적인 옥외매체 디벨로퍼(매체사)의 영역을 침범한다기보다는 기존의 디벨로퍼(매체사)와 공조하여 보다 고객의 요구에 맞추어 상품을 개발해 나가는 방식이라 할 수 있겠다. 만들어진 사례로는 광고회사 이노션과 매체사 동아일보가 합작한 메트로9 광고를 들 수 있겠고, 미래를 보여주는 사례로는 제일기획에서 진행했던 ‘아이디어 통섭전’을 참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디벨로퍼의 적극적 마인드를 갖추고 거리를 나서게 되면 적극성을 무색하게 만드는 현실의 벽이 너무 많은 것도 사실이다. 대표적인 것이 관계당국의 각종 규제와 매체주(매체를 만들 수 있는 시설의 주인)의 닫힌 마인드이다. 한때는 규제와 닫힌 마인드가 잘못되었다고 핑계 많이 댔었지만 지나고 나니 다 필요 없는 짓이었다. 남을 탓하기보다는 스스로 첨단기술·현대예술에 대한 지식과 상상력을 늘리는 것이 벽을 넘을 수 있는 지름길이다. 예를 들면 요즘 나에겐 ‘소리가 나지 않는 화면이라는 단점’ 때문에 다른 물리적 특성이 너무나도 우수한 전광판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있다. 그리고 ‘강남역’과 같이 더 이상 매체를 만들 수 없을 것 같은 곳에 기존 매체 외 새로운 매체를 계속 요구하는 광고주의 요구에 어떻게 부응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도 있다. 풀리지 않을 것 같은 두 가지 고민에 대해 해결할 수 있는 작은 희망의 단초를 주는 책을 최근 발견했다. 크로스(정재승/진중권 공저)란 책으로 과학자와 미학자가 과학과 예술 및 대중문화에 대해 각자의 관점으로 해석한 내용인데 정말 흥미진진하다.
이 책에 소개되어 있는 ‘색을 소리처럼 사용해 그림으로 연주한’ 현대 예술가 파울 클레에 대한 내용에서 소리 없는 전광판을 소리가 느껴지는 전광판으로 활용해 볼 수 있겠다는 상상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로서는 최근에서야 알게 된 ‘증강현실(augmented reality)’ 기술을 이용해 만든 작품 ‘읽을 수 있는 도시’를 20년도 전에 발표한 미디어 아티스트 제프리 쇼 부분을 읽으면서 혹시 강남역에도 새로운 개념의 매체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상상도 시작해 볼 수 있었다. 물론 두 가지 고민을 해결할 수 있을지는 매우 불투명하지만 첨단기술과 현대예술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거기에 상상력을 더하면 옥외매체의 영역이 무섭게 확장될 수 있을 것이다라는 가능성만큼은 함께 공유하고 싶다. 이쯤 되고 나니 옥외매체가 뭐 그리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그 어려운 첨단기술·현대미술 지식에 상상력까지 더해야 하나 하는 의문이 든다. 옥외매체는 주요 광고 캠페인 기준으로 보면 기껏해야 예산의 10% 내외인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작은 역할’이 ‘작지만은 않은’ 결과를 내는 것 또한 요즘의 트렌드이다. 최근 큰 인기를 얻은 드라마 아이리스의 박철영(김승우분)이나 추노의 천지호(성동일 분)는 모두 역할 비중이 많지 않음에도 주연급 이상의 감동을 주는 연기로 인해 네티즌식 표현으로 ‘미친 존재감’이라는 극찬을 받아냈다.
주연에게는 ‘미친 존재감’이라는 찬사가 따라붙지 않는다. 작은 역할일지라도 충분한 해석을 통해 극 전체를 빛나게 함과 동시에 깊은 감동을 주는 연기가 나왔을 때 그러한 찬사가 주어진다. 옥외매체는 대부분 광고캠페인의 경우 조연 일 수밖에 없다. 역할에 맡는 충실한 해석을 통해 주연(대부분은 TV CM)과는 또 다른 방식으로 전체 캠페인을 빛나게 한다면 ‘미친 존재감’적 매체가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이제 후배 직원 잘 교육시키기만 하면 ‘어떤 업무 하세요?’라는 질문에 주눅들지 않고 대답 하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팀 이름은 BPL이구요, 첨단 테크놀로지나 현대 예술을 이용해 광고주와 소비자 모두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상상력 넘치는 매체를 집행하는 업무를 하는 곳이에요. 광고 캠페인에서 맡는 비중은 작지만 역할에 꼭 맞는 해석을 통해 미친 존재감을 발휘하게 하죠.” 그런데 아무데서나 그렇게 말해서는 곤란하다라는 충고도 같이 해줘야겠다. 실제 옥외매체 업무에 관련 있는 광고주나 매체사 직원 분들을 만나서 섣불리 그런 의견을 밝혔다가는 ‘시키는 일이나 좀 열심히 하시지’나 ‘있는 매체나 좀 잘 팔아줘’라는 시큰둥한 말을 들어가며 ‘증강 현실’ 같은 건 얘기도 꺼내기 전에 짜‘증 강’하게 나는 현실부터 경험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