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중 기자 | 191호 | 2010-03-08 | 조회수 2,7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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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허름하고 낡았던 한빛맹아원의 모습이 마을미술프로젝트를 통해 신선하게 변화했다. 건물의 벽화작업과 함께 외벽의 보수가 함께 진행돼 비가 오면 물이 스며들던 시설을 효과적으로 복구했다.
마을미술프로젝트가 진행되기 이전 한빛맹아원의 모습.
맹아원 원생들이 직접 만든 도자기 공예품으로 꾸민 담장.
건물 내부 1층 벽면을 따라 설치된 작품 ‘공룡과의 시간여행’. 촉감이 우수한 소재를 활용해 제작한 공룡 부조물과 점자판을 통해 추상적으로만 인식되던 공룡의 모습을 더욱 세밀하게 상상할 수 있게 했다.
수유 1동의 모습이 한쪽 벽면에 다 보이는 우리 동네 지도. 이 부조물은 특수 아동의 특징상 멀게만 느껴졌던 공간지각능력, 미적능력, 감지능력을 향상시켜 주고 지역 주민들에게도 미술로 쉽게 지리적 위치를 파악할 수 있게 해준다.
마음으로 보는 미술… 도시 속에 그려낸 치유의 공간 적은 비용 활용해 두 마리 토끼 잡아
‘좁은 골목 어귀에 위치한 낡고 초라한 시설.’ 지난 날 한빛맹아원을 처음 보았을 때 들었던 생각이다. 너덜너덜 도색이 떨어져 나간 외벽사이로 갈라진 틈까지 보였던 초라한 건물 외관과 을씨년스러운 회색빛 내부 공간. 가장 따뜻한 공간이 돼야 할 장애아들을 위한 복지시설이 이런 환경으로 인해, 되레 도시미관을 해치는 마을의 천덕꾸러기로 인식돼 왔다. 점점 더 화려해지고 있는 도시의 이면에 감춰진 사회의 그늘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최근 다시 찾아본 한빛맹아원은 이전 허름하고 낡은 모습이 감쪽같이 사라지고 깔끔하면서도 이색적인 모습의 건물로 탈바꿈했다. 문화관광부가 지난해 실시한 ‘2009 마을미술프로젝트’에 따른 결과이다. 마을미술프로젝트는 마을 주민과 교감하는 ‘생활 속 예술’과 함께 경기 침체기 미술 작가들을 돕기 위한 ‘예술 뉴딜’을 취지로 전국 21개 지역에서 진행된 공공디자인 사업이다. <본지 187호 참조>
이 프로젝트를 통해 변화된 한빛맹아원의 건물 외벽 전체에는 거대한 나무를 연상케 하는 벽화가 그려졌다. ‘꿈이 자라나는 숲’이라는 컨셉으로 진행된 이 벽화는 맹아원의 건물을 복잡한 도시 속에 자리 잡은 숲과 같은 이색적인 공간으로 변화시켰다. 이 벽화는 단순히 건물을 꾸미는 것만이 아니라 건물의 보수작업과 함께 진행됐다. 전체 외벽을 숲을 상징하는 초록색으로 도색한 후 균열 때문에 비가 새던 부분에는 퍼티와 핸디코트로 틈을 메웠다. 특히 이 부분에는 방수페인트를 사용해 나무의 가지형태로 그림을 그려 넣음으로써 시설복구에 따라 이질감이 생긴 벽면의 외관 또한 효과적으로 보완했다. 이와 함께 건물 입구 앞 담장에는 원생들이 직접 참여해 만든 도자기 공예품들이 장식됐다. “누구나 부족함이 있지만 모두가 함께 할 때 세상은 더욱 아름다워질 수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맹아원측의 설명처럼 눈이 잘 보이지 않는 원생들이 만든 작품이기 때문에 하나하나 볼 때는 서툴기 그지없지만, 수십개가 하나로 어우러지니 그 어떤 것보다도 멋진 예술작품이 됐다. 건물 내부의 모습도 색다르게 변화됐다. 1층에서 3층까지 이어지는 계단부의 벽면에는 공룡과의 시간여행, 우리마을지도, 재미있는 수학 등 층별로 테마를 달리하는 부조작품이 설치됐다.
이 작품들은 원생들이 층간 이동을 위해 걸어가는 동안 손끝으로 만져볼 수 있도록 촉각이 우수한 재질을 활용해 제작됐다. 이를 통해 원생들이 이야기로만 듣던 공룡이나 마을의 지리적 특성 등 추상적인 형태로만 인식할 수 있었던 것들을 보다 세세하게 상상할 수 있게 했다. 또한 맹아원생의 70%는 아예 앞을 보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가까이서는 색을 인지할 수 있기 때문에 작품 제작에 있어서도 컬러와 다양한 배경 이미지를 부각시켜 맹아원은 물론 시설관계자, 시설방문자들의 눈도 즐겁게 할 수 있도록 했다. 이번 작업을 진행한 홍익대 디자인팀 코드엠의 박지숙 작가는 “디자인이란 단순히 예쁘고 보기 좋게 꾸미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향한 배려가 담겨 있을 때 빛이 나는 것”이라며 “원생들의 입장이 되어 그들에게 필요한 부분을 하나하나 짚어보며 작업을 진행했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프로젝트는 1억에 채 못 미치는 적은 비용을 활용해 효과적으로 시설을 개보수 했다는 점에서도 그 의미가 깊다. 한강을 지나는 다리들이 수천개의 LED조명으로 번쩍번쩍 빛나고, 수백억원대의 호화청사가 건립되면서도 부족함을 탓하는 지금, 그 발밑에도 미치지 못하는 작은 관심만으로도 더욱 따사로운 세상을 만드는 공간이 있다는 것을 돌이켜 봐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