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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31 17:22

┃전문가 칼럼┃ - ③ 간판과 규제

  • 편집국 | 193호 | 2010-03-31 | 조회수 2,378 Copy Link 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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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호(우리은행 홍보실 차장)

 
개성을 실종한 대한민국 간판
지역적 특색 무시한 획일화된 규제가 문제
개성과 지역색 반영할 수 있는 정책·법규 마련 절실     
 
사라져가는 거리의 개성, ‘도대체 왜’
요근래 인기있었던 ‘아이리스’라는 드라마 장면 중에 광화문 광장에서의 총격씬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그 장면을 보고 있노라면 화면 속의 광화문 거리는 아주 잘 정돈되고 깨끗한 이미지로 비쳐지 고 있어 ‘어! 저거 광화문 맞아?’, ‘광화문 거리가 언제 저렇게 변했지?’, ‘아! 저게 바로 요새 말하는 디자인 서울이라는 거구나!’ 라고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필자 역시 이런 생각을 가지고 광화문 광장부터 종로 쪽으로 발걸음을 옮겨 천천히 도시의 풍경을 음미해 보곤 하는데 어느 순간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걸 느낀다.
혼자만의 생각일까. 이 도시가 그다지 재미없다는 생각이 든다. 예전에 알던 종로는 정돈된 모습은 아닐지라도 생동감이 넘치던 거리로 기억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종로를 대표하던 그 생동감은 자취를 감추고 사라진 모습이다. 특히 해가 지면 을씨년스럽기까지 하다. 이런 광화문과 종로를 보고 있자면-다른 거리도 매한가지라는 생각한다, 그 고유의 개성이 퇴색된 것 같아 안타까울 따름이다.
‘디자인 서울’이라는 미명 아래, 도시의 미관을 겨냥해 행해지고 있는 시책들은 과연 누굴 위한 것일까. 궁극적으로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있는지 헤아릴 수가 없다. 과거 종로가 가지고 있던 특유의 색깔, 개성은 도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디자인을 도입한다는 것은 궁극적으로 개성을 강조하고자 하는 행위인데, 디자인을 하면서 개성은 사라져가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연출되는 것은 왜일까. 
 
간판만 바꾼 결과 나타난 부작용들
지금의 종로 거리, 과거와 비교해 어떤 것들이 바뀌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별반 바뀌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따지자면, 사실 간판은 바뀌었다. 간판 시범 거리사업을 추진한 결과, 건물 전면에 빼곡히 부착돼 있던 기존의 플렉스 간판들이 문자형 간판으로 바뀐 것이다.
문제는 도시를 구성하는 여러가지 요소들은 배재된 채 간판만 바뀌었다는 것이다. 때문에 예상치 못한 여러 가지 부작용들이 나타나고 있다. 
첫째, 건물을 뒤덮고 있던 플렉스 간판이 철거되자 마치 아토피라도 앓는 것 같은 흉한 건물의 표면이 드러나 보행자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둘째, 야간의 거리가 너무 어두워졌다. 간판의 규제로 조명이 줄어들거나 표현이 약해져 예전의 밝고 환한 모습과 상반된 어두운 거리로 뒤바뀌었다. 야간에도 유동인구가 많은 종로의 특성이 무시된 결과다.
셋째, 종로 거리에서만 찾을 수 있었던 특색이 자취를 감추었다. 어디가 어딘지 혼란스러울 지경이다. 종로의 개성과 본질은 어디서 찾아야 하는 걸까. 단지 간판만 교체했을 뿐인데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날까. 도시를 구성하는 간판 이외의 구성 요소들은 왜 이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걸까.
 
대한민국에서 간판이 가지는 의미
우리나라의 간판은 1990년대 중반 이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많은 변화와 과도기를 겪어왔다. 나라마다 각기 다르겠지만, 적어도 대한민국에서 간판은 ‘거리의 색’이면서 동시에 ‘조명’이었다.
바로 도시에 옷을 입히는 역할을 해온 것이다. 심미성이 떨어지는 대한민국의 성냥갑 건물의 화려한 옷이 됐으며, 무채색의 거리에 생동감있는 컬러를 부여했다. 또 어두운 야간에는 도시의 밤을 밝히는 ‘빛’의 역할을 했으며, 생활형 점포를 가진 서민들에게는 단순한 표시의 기능을 뛰어넘어 밥과 직결된 생존 수단이었다.
물론 다양한 활약상을 보여줬다고 해서 종전의 간판들이 문제가 없었다는 것은 아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우리의 간판 문화는 양적인 팽창만을 거듭해 왔다. 간판의 형태나 디자인 등 컨텐츠에 대한 개발과 연구는 뒷전이었다. 기업이든 개인 점포주든 간에 간판의 주목성을 고려한 크기나 색에만 온 신경을 쏟았다. 간판이 잘 보여야 경쟁에서 승리한다는 인식이 팽배했던 탓이다. 사실 이같은 인식은 여전하다.
 
45cm 간판에 무엇을 담아야 하나
무분별한 양적 팽창의 결과, 급기야 간판이 수량, 크기, 형태, 컬러 등 거의 모든 부분에서 엄격하게 제한되고 통제받는 법적인 시스템 속에 갇히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때문에 서울 시내 어느 곳에서도 간판 하나 달기 참으로 어려운 게 요즘의 세태다. 관의 요구대로 수정과 보완을 거쳐 간신히 허가를 받기는 하지만 달아야 하는 간판 크기를 보면 뜨악하다. 20~30m의 큰 간판을 철거하고 45cm 크기의 조그마한 문자간판을 설치해야 한다니... 그뿐이 아니다. 색상이나 형태, 재질도 원하는대로 표현할 수가 없다. 사업자 입장에서는 깨끗하다는 측면 외에 별다른 의미를 찾아 볼 수가 없다. 물론 규제해야 하는 관의 입장도 일견 이해가 간다. 하지만 규제 자체가 나쁜 게 아니라, 규제의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간판의 실질적 주체는 시민
모든 논의에 앞서 모두가 주목해야 할 점이 있다. 간판을 규제해 도시 미관을 정비하고자하는 관이나 간판을 설치해 마케팅의 목표를 달성하고자 하는 개인 사업자나 기업체, 모두가 이 도시의 주체인 시민이자 소비자인 국민을 간과하고 있다는 점이다.
간판의 제작, 간판을 둘러싼 규제 등 이 모든 행위의 귀결점이 이미 한 곳으로 정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핵심 주체를 배제시킨 채 모든 정책과 행위들이 이뤄지고 있다. 또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 따른 부작용은 고스란히 주체들에게 피해로 돌아가고 있다. 국민이 바로 이 모든 도시의 주인이며, 도시의 모든 요소들은 이 주체를 위해 존재한다. 만약 앞서 예를 든 종로 거리 정비사업이 이러한 관점에서 출발했다면 한층 더 개성있고 활기넘치는 거리로 탈바꿈했을 것이다.
 
아이덴티티있는 도시 조성을 위한 제안
도시의 구성요소는 무한하다. 따라서 그중 하나의 요소를 바꾼다고 그 거리가 크게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거리의 질적인 변화를 주기 위해서는 해당 지역의 특성을 잘 살펴보고 적어도 2~3개의 요소들을 추출해 이들을 함께 바꿔야 한다. 또한 그 기준은 종과 횡이 결코 동일해서는 안된다(여기서 ‘종’은 ‘가로’란 의미로 ‘도시의 구역’ 또는 ‘카테고리’를 지칭하며, ‘횡’은 ‘세로’의 의미로 ‘높낮이’를 말한다).
이를 위해 먼저 ‘종’적으로는 지역별 카테고리화에 대한 분류를 심도있게 추출한 후 유형화해 그 유형화된 카테고리별로 적용되는 규정과 기준이 달라야 한다. 현 서울시 옥외광고물 가이드라인을 보면 지역을 5개로 구분해 각 지역별 특징이나 색상 등을 분류했으면서도, 단일한 법규를 적용하고 있다.
동일한 법을 적용할 바에 굳이 분류 작업이 필요했던가에 대한 의문이 남는다. 동질의 집단이 동일한 지역 내에 거주하는 성향이 강한 국내의 경우 카테고리별 유형화와 그에 따른 법규와 기준의 다양화가 필요하다. 
다음으로 ‘횡’에 있어서는 두가지 요소를 적절히 조화시켜야 한다. 이 두가지 요소는 바로 형태와 조도다. 예를 들어 5층 건물에 들어가는 개별 간판의 형태와 조도가 1층부터 5층까지 각기 다르다면 어떨까. 유동인구가 많은 1층은 파사드와 차양막을 이용한 풍성하고 감성적인 디자인과 간접조명을 설치하고, 2, 3층에는 거리의 특성과 점포의 특성을 표현할 수 있는 조형물을 이용한 디자인과 간접·직접조명을 적용한다.
 또 4, 5층은 가독성을 높인 심플한 디자인과 직접조명을 중심으로 구성한다면 다양한 형태와 빛의 영향으로 재미와 즐거움을 충분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해당 지역의 특성과 감성을 반영할 수 있을 것이다.  
 
총체적인 관심과 접근법 필요 
기업이나 점포주들은 이제 간판을 설치할 때 단순히 표시로서의 기능만 고려할 게 아니라 심미적인 요소까지 고려해야 한다.
관도 역시 도시를 정비한다는 목적 아래 간판을 수량, 크기, 형태 등으로 제한하는 낡은 방식을 탈피하고 디자인적인 창의성을 유도해낼 수 있는 규정이나 법규를 마련해야 한다.
도시를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그 지역만의 본질을 찾아 구성 요소들을 잘 어우러지게 하는 작업으로, 많은 시간과 투자와 생각이 필요한 종합적인 프로젝트임을 명심해야 한다. 또한 도시의 실질적 주체의 행복을 고려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우리은행 홍보실 한호 차장
하는일 : 광고 담당(사실 이것저것 다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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