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중 기자 | 210호 | 2010-12-08 | 조회수 3,7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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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인 마을에서는 간판도 예술이 된다
단순하기에 오히려 새로운 ‘민낯’의 미학
짙은 스모키 화장에 아찔할 미니스커트와 킬힐로 도시를 활보하는 미녀를 보면 나도 모르게 ‘쩍’ 벌어지는 입을 다물 수 없다. 그러나 그 뒤로, 또 그 뒤로 이어지는 똑같은 차림새의 행렬에는 결국 ‘피식’ 웃음이 흘러나올 뿐….
첨단 유행으로 가득한 거리에서는 오히려 털털한 듯 수수한 민낯의 미인과의 만남을 기대하게 된다.
경기도 파주시에 위치한 ‘헤이리 예술인마을’에서 만나는 간판들은 민낯의 소녀처럼 억지로 꾸미지 않은 자연스런 얼굴로 시민들을 맞이한다.
파주시 15만평의 늪지에 조성된 ‘헤이리 예술인마을’은 370여명의 내로라하는 예술인들이 참여해 마을 전체가 하나의 문화예술공간으로 조성된 곳이다. 고즈넉한 자연 풍경과 이색적인 건축문화가 어우러지며 카메라 앵글을 들이대는 것만으로도 작품이 되고 추억이 만들어 지는 장소로 최근 젊은이들의 데이트 장소로도 각광받고 있다.
이곳의 모든 건물은 페인트를 칠하지 않고 건축자재의 질감 그대로 드러내 보이고 있다. 시멘트, 나무, 철골들이 가공되지 않은 본래의 질감 그대로 표현되는 것. 다소 거칠고 성의 없어 보이지만, 각종 유성도료를 만들어 낸 도시의 현란함에 지친 사람들에게 편안한 아름다움을 전달한다.
사인 역시 마찬가지다. 그 특성상 도료를 사용하지 않을 순 없지만, LED등 첨단 소재의 현란함으로 이뤄진 도회지의 사인에서는 볼 수 없는 수수한 매력으로 사람들을 잡아끈다.
‘길가를 굴러다니는 널빤지를 주워 물감으로 상호를 적는다. → 다 적고 보니 무언가 허전하다. → 인형이라도 하나 붙여 볼까? → 이제 됐네!’ 이런 과정으로 만들어진 게 아닐까 의심되는 허접한 사인들도 곳곳에서 눈에 띈다. 그러나 이런 사인들도 헤이리라는 공간 속에서 멋진 디자인으로 승격된다. 우거진 초목과 가공되지 않은 아름다움을 지닌 건축물들 속에서 썩 조화롭게 어우지기 때문이다.
예술인들이 만들어 낸 예술 같은 공간 ‘헤이리 예술인마을’을 안내하는 다양한 사인들을 담아봤다.
더초콜릿 갤러리. 건물 전체를 덮은 부식철(코르텐강)이 마치 초콜릿처럼 독특한 색감을 전달하는데 이 검붉은 건물과 흰색의 채널 사인이 멋진 조화를 이룬다.
헤이리 예술인마을 속에는 또 하나의 마을이 숨어 있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소녀 딸기가 살아가는 곳, 바로 ‘딸기마을’이다. 일종의 종합 쇼핑몰이라 할 수 있는 이곳에서는 사람들은 안내하는 딸기양의 모습을 구석구석에서 만날 수 있다.
3D VR 스튜디오의 사인. 노출 콘크리트로 이뤄진 회색 건물과 검은색 아크릴 사인이 대비되며 멋진 조화를 이룬다.
목재 소품 상점 ‘토마스와친구들’은 매장의 간판도 귀여운 목재 간판으로 만들었다.
갤러리 모아는 건물 외벽 대신 입구 앞에 설치된 작은 연못 위에 사인을 설치했다. 녹색 빛이 도는 연목 위 녹슨 간판이 서정적인 분위기를 전달한다.
레스토랑 크레타의 사인. 세월의 흔적 가득 머금은 듯 잔뜩 녹이 슨 철봉에 대충 깎아 만든 것처럼 보이는 판자가 붙어 있다. 주변의 초목과 함께 하기에 아름다울 수 있는 이 사인에는 친환경 마을 헤이리만의 철학이 고스란히 담겼다.
‘이거 버린 건가?’ 너무 낡아 건물의 한구석에 휙 던져 버린 듯, 방치돼 있는 간판이건만, 이를 본 시민들은 ‘멋지다!’ 감탄하며 사진을 찍는다. 생각의 차이가 바로 디자인의 차이라는 것을 실감시키는 간판.
‘난 레드!’, ‘난 블루!’, ‘난 그린!’ ‘지렁이로 합체!’ 버려진 드럼통 뚜껑들이 모여 독특한 간판으로 변신했다. 재활용 상품을 판매하는 친환경 쇼핑몰의 철학을 고스란히 반영한 ‘지렁이다’의 사인.
널빤지에 대충 글씨를 쓰고 인형을 하나 붙였다. 그래도 멋진 간판이 되어 사람들의 발길을 잡아 끌 수 있는 곳, 바로 헤이리 마을이다.
시간을 거슬러 왔을까? 한국근현대사 박물관 입구에서서는 그 시절, 그 모습 그대로 남아 있는 간판들이 잊혀진 시절의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식물성 원료만을 사용하기에 그 이름도 식물감각이다. 빵집 식물감각은 초목을 상징하는 초록색의 간판 옆으로 호방한 인상의 아저씨를 세웠다. 누구든 한번쯤 시선이 가게 되지 않을까?
세라믹워크숍 카페. 그 이름만으로 당최 어떤 카페인지 알수가 없다. 하지만 화초 사이에 우뚝 서 있는 고풍스런 사인은 왠지 한번쯤 가게를 들어가 보고 싶은 묘한 감정을 상기시킨다.
사람의 눈이 닿기 쉽게 약간 기울어진 형태로 제작된 헤이리 안내사인. 사람을 배려하는 디자인이 무엇보다 아름답다.
예술인 마을에서는 배너도 예술이 된다. 마치 미술작품 같은 갤러리 퍼즐의 배너 광고물이 시선을 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