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필씨 선거부정 뒤엎고 지부장에… 만신창이 서울지부 정상화시켜 자신이 산파역할한 김상목 중앙회장과 관계 악화… 장기간 핍박 받아와
차해식 지부장의 주검 앞에서 미망인은 한편으로 협회를 원망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협회 임직원들의 손을 눈물로 감싸 쥐었다. 애증(愛憎)의 교차.
생전의 차해식 지부장과 협회, 협회와 차해식 지부장의 관계가 꼭 그랬다.
차 지부장의 협회 활동은 재임기간 내내 거친 가시밭길이었다.
그는 이한필 지부장 시절 부지부장으로 서울지부 집행부에 합류했으며, 2005년 중앙회장 선거때 이형수 후보를 지지하면서 중앙무대와 연을 맺었다. 그리고 이 때는 이한필 전 지부장과 같은 노선이었다. 그러나 이형수씨의 회장당선 직후 곧바로 고난의 역경이 시작됐다.
두 이씨가 밀착하면서 관계가 소원해졌고, 이어 지부장선거에 출마해 이 회장이 지원한 이한필씨와 경선을 벌여 근소한 표차로 패배했다. 그러나 이후 법정에서 이한필씨의 계획적인 선거부정을 입증, 이씨를 중도하차시키고 재선거를 통해 지부장 지위를 탈환했다. 그리고 중앙회장 선거에서 이형수씨에게 맞선 김상목 후보를 물심 양면으로 전력을 다해 지원, 당선시켰다. 김상목 집행부 출범의 일등공신으로서 사실상 산파 역할을 다한 것. 당연히 이때만 해도 그의 협회 활동은 순탄할 듯 보였다.
그러나 그가 떠맡은 서울지부는 이한필 집행부의 각종 불법행위와 방만한 경영으로 이미 재정이 거덜난 상태였다. 게다가 경기지부 소속 회장이 경기지부 소속 측근인사들을 중앙회 요직에 잇따라 등용하면서 그의 입지는 상대적으로 약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열악한 재정난에 중앙회 분담금을 제때 못내면서 중앙회와 갈등의 골이 깊어만 갔다. 중앙회는 서울지부가 돈을 쌓아놓고 분담금을 일부러 안낸다고 의심하고 서울지부는 중앙회가 뻔히 사정을 알면서 지부를 너무 몰아부친다고 불만이 커갔다.
이러던 차에 중요 정책에서 계속 이견이 노출됐으며 그 대표적인 정책의 충돌이 회관 매각과 연수원 건립 건이었다. 차 지부장은 연수원을 돈먹는 하마로 보았다. 나중에 협회를 말아먹는 화근이 될 것이라는 인식이 강했으며 또한 회관을 매각해서 연수원을 건립하려는 김 회장의 의도를 순수하게 보지 않았다. 서울지부 회원들의 반대도 강했다. 그래서 그는 드러내놓고 회관 매각과 연수원 건립을 반대했고 이러는 상황에서 중앙회는 회관에 세들어 있는 서울지부에 대해 임대차 문제로 지속적인 압박을 가해, 결국 서울지부가 인근 지하방으로 나앉는 국면으로 치달았다.
그리고 김 회장은 집요하게 연수원 건립을 시도했으나 결국 총회에서 공식적으로 부결되기에 이르렀다. 이처럼 두 사람의 관계는 계속 삐걱댔고 중앙회는 서울지부의 사단법인 전환에 계속 제동을 걸었다.
여기에 김 회장의 출마때 입후보등록비로 빌려준 차용금 문제가 또다른 관계악화의 도화선이 됐다.
김 회장은 출마때 등록비가 모자라자 차 지부장에게 차용증을 써주고 총 등록비의 약 절반가량을 차용했으나 이를 계속 상환하지 않고 있었고 그러자 차 지부장이 상환을 요구하기에 이른 것.
구두상환 요구에도 계속 갚지 않자 차 지부장은 법적 절차에 착수, 김 회장으로부터 강제로 차용금을 받아냈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이 직후 김 회장은 차 지부장을 선출한 선거가 보궐선거이기 때문에 임기가 이미 끝난 것이라는 생뚱맞은 주장을 하면서 지부장 지위 박탈을 시도하고 나서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 시도는 임기 3년이 타당하다는 다수 이사들의 유권해석 결과로 무산됐다.
그 후 차 지부장에 대한 중앙회의 제재는 인사위원회와 이사회를 통한 징계로 방향이 틀어졌고 1차 징계가 법원에 의해 무력화되자 똑같은 사유로 2차 징계가 가해졌다.
그리고 이 2차 징계에 대한 법원의 심리가 진행되던 도중 차 지부장이 홀연 생을 마감함으로써 끊임없이 닥쳐온 역경을 오뚝이처럼 헤치며 극복해온 그의 6년여 협회 활동에도 종지부가 찍혔다.
서울지부 한 관계자는 “지부장님은 임기 3년 동안 파탄에 빠졌던 서울지부를 완전 정상화시켰고, 중앙에서도 정관규정을 무시하는 집행부 인사들의 전횡을 온몸으로 막아 왔다.”면서 “지부장님의 공백이 너무도 아쉽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