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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16 18:32

┃전문가 칼럼┃ - ⑬ 이후일의 사인세상 엿보기

  • 편집국 | 214호 | 2011-02-16 | 조회수 2,071 Copy Link 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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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일 주무관은 1992년부터 관악구청에서 옥외광고 업무만을 담당해온 전문 공무원이자 환경미술, 조형물을 아우르는 테마환경미술연구소의 소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환경미술 전문가이다. 그간 일선 현장에서 보고 느낀 다양한 경험과 생각들을 풀어내는 ‘이후일의 사인세상 엿보기’ 코너를 연재한다. 

‘간판, 여백을 가지고 감성으로 다가가자’ 

 ‘잘 살린’ 여백 하나가 ‘잘나가는’ 간판 만들 수 있어
  

 

여백(餘白)은 “종이 따위에,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리고 남은 빈자리”라는 사전적 의미를 가지고 있고, 간판은 “기관, 상점, 영업소 따위에서 이름이나 판매 상품, 업종 따위를 써서 사람들의 눈에 잘 뜨이게 걸거나 붙이는 표지(標識)”, “대표하여 내세울 만한 사람이나 사물을 비유하는 말”, “겉으로 내세우는 외모, 학벌, 경력, 명분 따위를 속되게 이르는 말” 등으로 정의되고 있다.

간판에 있어서 ‘여백의 미(美)’는 어떤 의미일까?

간판은 점포의 위치와 존재를 고객에게 알리는 중요한 설치물로 사람과 비교할 경우 사람의 ‘이름’과도 같다.

그래서 광고주는 간판의 시각성을 중요히 여기며, 다른 간판들과 차별화를 꾀하고자 한다.  청색-빨강, 노랑-빨강, 노랑-검정 등으로 대비되는 극단적이고도 자극적인 색상들이 많이 사용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동안 우리는 간판을 사각 프레임에 가득 채워야 하고 또 무조건 크게만 설치해야 시각적으로 잘 보인다고 생각해 왔으며, 광고주들은 그런 간판들을 보면서 왠지 모를 만족감을 나타내고 있었다.

간판을 조금이라도 크게 해야 제작비를 많이 받고 이윤을 남길 수 있는 제작자의 이해관계와 광고주들의 왜곡된 광고욕구가 만나면서 우리의 간판들은 그렇게 만들어져 왔다.

그래도 최근 몇 년간 서울시가 선정한 ‘좋은간판’의 수상작들을 살펴보면 종전의 간판을 바라보는 왜곡된 시선이 조금은 바뀌어 왔음을 엿볼 수 있다. 서울시 좋은간판의 일부 수상작들을 보면, 여백의 미를 강조한 간판들을 볼 수 있다.

간판이라는 단어는 “‘상점, 영업소 따위에서 이름을 써서 사람들의 눈에 잘 뜨이게 걸거나 붙이는 표지(標識 )”라는 본 뜻 외에, “겉으로 내세우는 외모, 학벌, 경력, 명분” 따위를 속되게 이르기도 한다.

이같은 간판의 사전적 의미에서 볼 수 있듯이 학벌, 직장 등 출신을 따질 때도 ‘간판’이라는 말이 붙고, 일례로 ‘대학 간판’이 취직의 당락을 좌우하기도 할 정도로 사회생활에서 간판은 중요한 것이다. 겉으로 잘생긴 외모를 가진 사람이 일단 눈에도 잘 띄는 것이다.

간판에도 바로 이같은 논리가 적용된다. 잘생기고 멋진 디자인의 간판이 효과가 있다는 의미다. 디자인이 좋은 간판은 휼륭한 영업사원이 될 수도 있다.

많은 사람들의 인식 속에 각인될 수 있는 좋은 디자인이라면 큰 영업적 효과를 유발할 수 있다.

과거 우리 간판의 성격이 단순히 ‘크게’, ‘화려하게’, ‘자극적으로’ 만들어서 업소의 존재를 알리는 기능이 일반적이었다면, 이제는 업소의 존재를 알림과 동시에 시민들에게 감성적으로 다갈 수 있어야 하는 변화의 시점이 온 것이다.

감성적 디자인은 여백의 미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백은 영어의 ‘심플(simple, 간단한, 단순한)’과도 일맥상통한다.

간판을 제작하는데 있어 너무 많은 것을 보여줄 필요는 없다. 간단하고, 여백의 미를 살린 간판이 훨씬 더 구매자의 마음에 감성적으로 다가갈 수 있다.

현재 서울시 옥외광고물 가이드라인은 중점권역의 경우 1업소당 1개 간판만을 허용하고 있다.

4~5년 전처럼 많은 수량의 간판을 부착할 수 없게 됐다. 좋은 디자인으로 간판을 제작해야 간판 수량의 부족함을 채울 수 있게 된 셈이다.

국내에서는 아직 간판 디자인 비용에 대한 개념이 없지만 제작업자 스스로 퀄리티(quality)를 높여 좋은 디자인의 간판을 제작한다면 디자인 비용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생길 것이다.

업자들 스스로가 자긍심과 사명감을 가지고 노력한다면 머지않아 제작비용 이외의 디자인 비용까지 인정받을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다. 광고주나 제작자 모두가 간판에 있어 ‘비움의 가치를 느껴보며 생각해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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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 좋은간판 대상작
간판이 사각 프레임에 다 채워지지 않고 여백의 미가 살아 있어 다양한 느낌을 떠오르게 하는 것은 물론, 상상력마저 자극하는 작품이다.
채워지지 않은 빈 공간에는 다음에 어떤 업소가 들어올지 궁금증을 자아내게 하고, 마치 무언가 있을 것 같은 공간으로 보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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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 좋은간판 은상작
여백의 미를 잘 살린 작품이다. 말 그대로 ‘남겨져 있는 부분에 대한 아름다움’을 간판에서 잘 보여준다. 녹슨 철판을 배경으로 자리잡은 ‘잡’이라는 흰색 톤의 광고문구가 한 폭의 동양화같은 이미지를 주며, ‘여백의 아름다움’은 바쁘고 정신없는 세상 속에서 막걸리 한사발로 한숨 틔워주는 느낌마저 안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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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좋은간판 은상작
비움으로 꽉 채울 수 있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잘 나타내 주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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