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희 기자 | 216호 | 2011-03-16 | 조회수 2,0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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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 조각사인 전파하는데 선구자적 역할”
16년간 조각사인 한우물 파며 강철 내공 쌓아
"한번 보고 휙 지나쳐 버리는 사인이 아니라, 뒤돌아보게 만들고 머릿속에 오랜 잔상으로 남는 사인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돈이 되는 사인’ 이전에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사인’을 만들고 싶었다는 뉴스타싸인아트 장길수 대표. 그는 실사 출력을 통해 대량으로 양산해낼 수 있는 플렉스가 국내 사인 시장의 주류를 형성했던 16년 전 선도적으로 컴퓨터 조각기를 도입, 조각사인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국내에 알리고 개척하는데 선구적인 역할을 했던 장본인이다.
컴퓨터 조각기 도입하며 조각사인 시장 개척 지금은 조각기가 보편화되 있지만, 16년 전만 해도 컴퓨터 조각기는 생소한 장비였고 그것을 이용해 사인을 만든다는 상상은 하지도 못하던 시절이었다. 장 대표는 외국 매체를 통해 조각사인을 처음 접하게 되었고, 조각사인이라는 생소한 분야에 점차 매력을 느끼게 되었다.
“손으로 작업할 때는 상상도 할 수 없던 것들을 장비가 만들어내는 것을 보고 조각사인에 매료됐고, 미국의 사인문화를 접하며 국내에도 머지않아 이 시장이 열리겠구나 싶었다”며 조각사인에 관심을 갖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조각사인에 매료된 그는 급기야 국내에 컴퓨터 조각사인이라는 신시장을 개척하겠다는 결심을 하고, 조각사인이에 도전했다. 당시 20년 넘게 운영했던 ‘신성광고’라는 옥외광고 회사를 과감하게 정리했다.
1995년, 그는 독일 거버社의 조각기 도입을 필두로 조각사인 시장 개척을 위한 본격적인 작업에 착수했다. 그리고 ‘신성광고’라는 상호를 그대로 영어명으로 옮긴 ‘뉴스타싸인아트’라는 이름을 내걸고 조각사인 제작업체를 오픈했다. 조각기를 도입한지 2년이 지난 1997년도의 일이었다.
“그때만해도 국내에서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분야라 조각사인을 배울 수 있는 곳이 없어 미국의 사인스쿨에 연수를 다녀왔고 한국에 돌아와서도 오랜 시간을 사업 준비에 쏟았다”며 한글화된 매뉴얼조차 없어서 주경야독으로 영문 매뉴얼을 분석하고 장비를 실습해 사업체를 오픈하기까지 꼬박 2년이 걸렸다”고 장 대표는 당시를 회고했다.
척박한 환경에서 어렵사리 사업 준비를 마친 그는 1997년 봄 ‘뉴스타싸인아트’라는 상호를 내걸고 본격적인 사업의 스타트를 끊었다. 국내에서는 생소한 분야인 만큼 이를 국내 사인시장에 알리고 전파하기 위해 서울 중랑구 면목동 대로변에 조각사인 전시장까지 별도로 오픈했다.
인내와 끈기로 버티며 다년간의 기술과 노하우 축적 그런데 공교롭게도 사업을 시작한 해 가을 IMF 등 국내에 금융위기가 불어닥치면서 사업이 기대만큼 순조롭게 진행되지 만은 않았다. 장 대표는 “전시장을 오픈하면서 조각기를 비롯해 시스템을 추가로 도입할 계획이었으나, IMF 때문에 이내 그 생각을 접었다”며 “그때 외화로 무리하게 장비를 구입했던 업체들은 큰 피해를 입기도 했는데, 운이 좋았는지 그런 타격은 없이 지나갔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IMF라는 부침을 겪으면서도 그는 조각사인을 향한 새로운 도전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하지만 조각사인에 대한 국내 소비자들의 반응은 미온적이었다.
“치열한 저가 경쟁의 타성에 젖어 사람의 손길이 많이 요구되는 조각사인이 시장성이 없다는 게 소비자들의 반응”이었다며 “관심 정도가 호기심에서 그치거나 혹은 이 일을 배우겠다고 뛰어든 사람들 조차 1년 반을 채 못 견디고 중도 하차하기 일쑤였다”고 말하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실제로 조각사인을 제작하는 데 있어 소재에 조각을 입히고 절단하는 공정은 기계가 해주지만, 소재의 특성이나 현장 설치 방법 등을 고려한 디자인 수정 및 적절한 가공 수치 설정 등 핵심 공정은 인력으로 해결하는 부분이다. 또 연마나 채색 등 세심한 후공정이 필요한 만큼 사람의 손길이 중요하다.
장 대표는 “조각사인을 만들기 위해서는 다년간의 경험과 노하우 축적이 필요하다”며 “그만큼 인내와 끈기가 요구되지만, 어느정도 노하우가 쌓이고 응용력도 생기면 그에 따른 보람도 큰 분야”라고 덧붙였다.
16년 노하우 담아 가공 매뉴얼도 만들어 물론 그도 처음부터 특별한 기술과 노하우를 갖췄던 것은 아니다. 사업 초반에는 시행착오도 많이 거쳤다는 장 대표. 그는 “다년간 경험을 쌓으며 사인 재료와 조각기법 등에 최적화된 수치를 찾아 독자적인 매뉴얼을 만들었고 그러면서 차츰 노하우를 축적해왔다.
가공 매뉴얼 뿐 아니라 기업 수요에 대비해 수집한 기업 CI 및 심볼마크 만해도 1,000여개가 넘는다.
이같은 노력으로 완성한 다양한 조각사인 제품들은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회사의 벽면과 구석구석을 가득 메우고 있다.
단순한 사인물이라기보다 일종의 예술작품이 진열되 있는 듯하다. 다양한 소재와 조각기법이 적용된 흔치않은 응용사인도 많다. 실사출력을 응용한 조각사인, 빛을 응용한 조각사인, 조각사인을 모듈화한 시스템사인에 이르기까지 그는 무수히 많은 사인의 재료들과 기법들을 접목하고 응용하는 시도를 해왔다.
장 대표는 “남들과 똑같은 사인을 만들기보다 새로운 것을 개발하고 제안하다보니, 나름대로 고부가가치 시장을 공략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인력 부족’과 ‘제한된 소재’ 아쉬워 고급화된 시장을 공략하며 조각사인 분야에서 독자적인 입지를 구축하고 있지만, 국내에서 조각사인 시장이 활성화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아쉽다는 장 대표. 국내에서는 조각기가 많이 보급됐음에도 불구하고 조각사인 시장이 활짝 열리지 않았다는 것. 그 이유를 크게 ‘기술인력의 부족’, ‘사인 소재의 한계’ 라고 지적한다.
장 대표는 “조각기의 활용이 커팅 수준에 그쳐 고난이도 기술 인력이 필요하지 않을뿐더러, 일을 제대로 배우려는 기술자들도 절대적으로 부족한 실정”이라며 “또 해외의 경우 부드러운 재질의 소재도 많이 나오고 두께도 다양하게 나와 다채로운 디자인을 표현하는데 제약이 없으나 국내에서는 아크릴이나 MDF가 소재의 대부분”이라고 부연했다.
국내에 조각사인을 알리고 보급하는데 선도적인 역할을 한 장 대표의 나이도 벌써 67세. “일을 할 수 있을 때까지는 하고 싶은데 현업에서 물러나야 할 때가 멀지는 않은 것 같다”며 은근과 끈기, 장인정신을 가지고 조각사인을 배우고자 하는 후배가 있다면 기술과 노하우를 전수해주고 싶다는 소박한 바람을 전했다.
직접 만든 조각사인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장길수 대표.
사진은 음각 부분에 골드립을 입힐 때 사용하는 재료들. 국내에서 유통되지 않는 재료들을 해외에서 공수해 사용하고 있다.
작업에 열중하고 있는 장길수 대표. 67세의 나이에도 현업에 종사하며, 조각사인의 명맥을 이어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