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기사

2011.06.01 10:06

┃기고┃ ‘소소담(少小淡)’ 간판문화를 꿈꾼다

  • 편집국 | 221호 | 2011-06-01 | 조회수 2,910 Copy Link 인기
  • 2,910
    0
적고, 작고, 주변과 어우러진 색


   61-김태희.jpg
 김태회 파주시 도시미관과장.


   61-간판거리로1.jpg
   61-간판거리로2.jpg
간판 거리로 유명한 일본 오사카의 도톤보리 거리의 사인물. 가타가나의 조합은 시각적으로 아름답지 않지만 간판의 질서정연한 정리로 돋보인다.



최근 웬만한 시민이라면 선진국 한두 군데 다녀오지 않는 사람이 거의 없다. 그 때마다 이구동성으로 간판문화에 대해 지적한다. 우리나라 도시는 간판이 너무 많고, 크고, 혼란스러운데 유럽 등 선진국 도시의 간판은 그 반대이면서 품격까지 갖추고 있다는 지적이다. 

몇 달 전 일본의 몇몇 도시를 방문한 적이 있다. 지극히 개인적인 시각이지만 그들의 간판에 씌어진 ‘가타가나’ 글자조합은 모양이 없어 보였다. 종(從)으로 내리 그을 때 왼쪽 또는 오른쪽으로 삐친 모양이 쓰다만 글자 같아 예뻐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침 방문한 곳의 근거리에 한글, 영문자, 한자 그리고 심지어 아랍어 등 다국어 간판들이 한데 있어 비교해 볼 기회가 있었다. 그가운데 한글은 글자 자체가 정돈이 잘된 형태로 어느 나라 글자조합보다 아름답게 보였다.

그럼에도 일본의 ‘가타가나’ 글자조합으로 만든 간판 거리가 어색해 보이지 않았던 것은 왜일까? 불필요한 간판이 없고, 사이즈가 너무 크지도 않고, 색채가 요란하지 않다는데서 그 원인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한마디로 ‘소소담(少小淡)’에 가까웠다. 품격 있는 도시라고까지 느껴지진 않았지만 전체적으로 조화를 이룬 도시라는 인상을 받았다. 
 
반면 우리의 모습은 어떤가? 최근 몇년 사이 정부와 각 지방자치단체가 디자인 개념을 도입해 간판을 정비하고 도시경관 개선에 적극 나서고 있는 분위기 속에서도 여전히 불필요한 불법간판이 즐비하고, 건물을 뒤덮을 만큼 큰 간판들 투성이다.

원색의 울긋불긋한 간판도 수두룩하다. 여기에 아무데나 걸어 놓아 제멋대로 펄럭이는 현수막, 전봇대나 건물 벽을 가득 메우고 있는 벽보, 길거리 여기 저기 나뒹굴고 있는 전단지는 도시 미관을 저해하고 있다. 때로는 천박하기까지 하다. 도시 품격은 커녕 간판의 주기능인 알림 기능조차도 마비시키고 있는 실정이다. 때문에 선진 간판문화 도입의 필요성이 부각되었고 파주시는 광고물 전반의 정비를 위해 조직적인 접근을 시도했다. 일명 ‘화장기법(化粧技法)’이다. 요즘은 남자들도 화장을 한다.

사람들은 자신을 예쁘게 꾸미고 싶거나 세인의 조명을 받고자 할때 화장을 한다.

단, 화장하기 전에 세수(洗手)는 필수다. 세수를 하지 않고 화장을 하면 예뻐지기 보다는 오히려 이상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아름답고 깨끗한 도시를 가꾸는 것은 지역의 가치와 경쟁력을 높이는 효과가 있다. 때문에 도시도 화장을 해야 한다. 파주시는 화장 전 세수 차원에서 현수막, 전단, 벽보 등 유동광고물을 없애기 시작했다. 2005년도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불법 유동광고물 약 320만 건을 적발해 처리했다.

이어서 화장 단계로 아름다운 거리 조성 사업을 시차를 두고 추진하게 되었다. 약 5년간 72억원의 사업비를 투자하여 4천여 개의 간판을 정비했다. 광고물 정비팀과 설치팀을 구분해 조직도 강화하고, 광고물 담당공무원 인센티브 제공과 옥외광고물 관리기관 평가 등 경쟁원리를 도입했다.

간판 가이드라인 제정 등 법과 제도의 정비도 함께 전개했다.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시민과의 갈등, 간판을 마음껏 달지 못하는 광고주와 수많은 마찰도 감수해야 했다.

그 결과 광고물 분야 평가에서 경기도에서는 6년 연속 최우수, 전국에서는 격년으로 연속 세 차례나 최우수 자치단체로 선정되어 대통령상을 수상한바 있다. 이런 소문이 전국으로 퍼지면서 524개 기관에서 5,100여명이 파주시를 방문했으며, 지금도 방문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때로는 전문가들로부터 따끔한 비판을 받기도 한다. ‘간판이 획일화되었다’, ‘행정기관의 주도에 치우쳤다’, ‘실적 쌓기나 포퓰리즘에 천착했다’ 등의 질타가 이어졌다. 물론 이는 비단 파주시 뿐만 아니라 전국의 모든 지자체에 해당되는 이야기 일 수 있다. 파주시는 비판을 겸허히 받아 들였다. 그동안 간판 정비를 담당했던 행정 공무원 조차도 광고물에 대한 수준 높은 마인드가 없었기 때문이다. 실례로 옛날 모습의 방앗간 간판을 현대식 입체형 간판으로 교체한 경우도 있었다. 참 어울리지 않았다. 진안군 원촌마을과 같이 건물형태나 지역 여건에 맞게 조금은 어수룩한(?) 간판이 제격인데 말이다. 극히 드물긴 하지만 그런 예들도 있으니 비판을 달게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주시가 밟아온 이러한 과정들은 반드시 거쳐야 하는 것임이 분명하다. 간판의 주기능인 ‘알림’과 도시미관의 유지라는 목적을 충족시키면서 전폭적인 예산지원과 시민참여가 한꺼번에 이루어질 수만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유감스럽게도 그리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일반적인 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일선 행정의 실태는 이론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실행력을 우선적으로 고려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파주시는 간판에 대한 시민의 의식을 일깨우는 동기를 마련했으며, 그것을 과감히 실천했음을 자위해 본다. “내 가게에 내가 간판을 다는데 니들이 뭔데 참견이냐!” 라고 광고물법이 있는지 조차 모르는 상태의 시민들을 설득해 지대한 관심과 참여를 이끌어 냈기 때문이다. 막막했던 심정에서 한 줄기 희망이 생겼다. 실제로 파주시는 광고물 관리행정의 성과가 가시화되고 있고 가속도가 붙고 있다.

이제는 ‘잘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겼다. 파주시는 먼저 전문가들이 지적한 대로 관주도가 아닌 시민참여 또는 시민주도형으로 전환해 간판사업의 획일성을 탈피하고자 했다.

예쁜 간판 공모전(2010년에 이어 두 번째), 간판 디자인 사전협의제(인허가 전 디자인 협의), 시민 참여형 간판사업(간판 정비사업의 관 일방적 추진 지양), 시민주도 광고물 위원회(전문가, 광고물협회, 공무원, 음식업, 이미용, 학원, 부동산 종사자 참여)등 우수한 광고물 시책을 정착시켰다.

앞으로 파주시는 간판의 소소담(少小淡) 원칙을 철저히 실행하고자 한다. 1업소 1간판 주의에 입각해 숫자는 최소화(少)하고, 알맞은 크기(小)로 주위환경과 조화를 이루는 색채를 사용(淡)하여 세련된 간판문화를 조성하는 것이다.

시민들은 스스로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품격 있는 도시를 만드는 ‘화장(化粧)’에 참여토록 할 것이다. 그동안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쌓은 노하우가 있기 때문에 세련된 도시의 화장을 기대해 볼만하다. 다만, 라스베이거스와 같은 위락도시처럼 일부 지역이긴 하지만 ‘소소담(少小淡)’과는 반대로 쇼무대에 오르는 사람처럼 때로는 짙은 화장, ‘다대농(多大濃)’도 고려하고 있다. 그래야 도시 전체로 봤을 때 활기차고 조화를 이루게 될 것이다. 오늘도 파주는 ‘화장발’ 잘 받도록 도시를 세수시키고 화장(化粧)을 한다. 고상한 품격 도시를 꿈꾸며...




[ⓒ SP투데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공유링크 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