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지방재정공제회 산하 옥외광고센터가 2010년 연말 간판문화 선진화 방안의 일환으로 국내의 아름다운 간판거리를 다룬 ‘사인스케이프2010 : 아름다운 간판거리’를 출간했다. 간판문화연구소 최범 소장을 비롯해 계원디자인예술대 김명환 교수, 콜코스 김영배 대표, 곽명희 간판칼럼니스트, 부산대 우신구 교수 등 10인의 전문가가 필진으로 참여해 국내 간판 문화에 대한 10인 10색의 시선을 개성 있는 문체로 풀어낸 이 책은 국내 아름다운 간판거리의 문화 및 역사, 경관적 의미를 살피고 시사점을 찾아보는 것을 목적으로 제작됐다. 본지에서는 ‘대한민국 간판을 바라보는 10가지 시선’이라는 코너를 통해 ‘사인스케이프2010 : 아름다운 간판거리’에 소개된 10곳의 간판거리를 책 속 저자의 글 일부를 인용해 독자들에게 소개한다. 편집자 주
주민과 함께 한 날들, 그 곳의 간판과 거리
광복로는 2004년 문화관광부의 공모를 통해서 시범가로사업으로 선정됐다. 이 사업의 목표는 옥외광고물, 건축물, 보·차도 시설물 등을 토털 디자인 개념으로 종합 개선해 세계적인 문화예술 명물거리로 조성하고, 이를 모범사례로 전국에 파급·확산해 문화관광 진흥을 도모하는 것이었다. 사업기간은 당초 2005년에서 2006년까지 약 2년으로 예상했으나 실제 사업을 진행하면서 국제 공모와 주민참여 등으로 인해 1년 2개월이 늘어나 2008년 2월까지 약 3년 정도가 소요됐다. 사업예산은 총 85억6,700만원이었다.
간판은 기본적으로 사유재산이다. 그러므로 공공이 개입해 간판을 바꾼다는 것은 주민 협조 없이는 불가능하다. 일반적으로 주민참여는 주민설명회나 공청회를 통해 이뤄지는데, 일방향적 통보이기 때문에 주민참여의 폭이 매우 제한적이다. 제대로 주민참여가 이뤄지기 위해서는 주민들이 사업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광복로 프로젝트는 주민이 적극적으로 참여했을 뿐 아니라 전문가들과 공무원이 함께 힘을 모아 진행한 사업이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민·관·학의 협력이 이뤄진 가장 큰 이유는 시범가로 추진위원회라는 조직이 있었기 때문이다. 공무원 3인, 주민 3인, 전문가 10인으로 구성된 추진위원회는 3년간 44차례의 회의를 개최하면서 사업방식, 예산 배분 등 실질적으로 중요한 의사결정을 내렸다. 추진위원회의 합의에 따른 의사결정이 없다면 사업이 추진될 수 없는 혁신적 거버넌스 사례였던 셈이다.
광복로의 사업 대상지는 약 1km의 거리인데, 구간별로 업종분포, 건물의 크기, 가로의 폭이 조금씩 다르다. 이러한 구간별 차이를 반영하기 위해 각각 구간에 그린·블루·레드의 세 가지 색채를 부여했다. 이 색채는 원래 광복로에 있던 지역적 색채는 아니었다. 그런 점에서 인위적인 색채라고도 볼 수 있다. 이런 인위적인 색채를 너무 많은 면적에 사용하게 되면 자연스럽지 않을 뿐더러 획일적인 거리가 되기 쉽다. 광복로에서는 구간별로 지정된 색채를 선적인 요소인 가로등과 간판에만 적용했다. 특히 간판 전체 구간에 색채를 적용한 것이 아니라 간판의 주요부분은 개별 상점의 개성을 살려 다양성을 인정하면서 지지대 부분에만 세로로 가늘고 긴 홈을 파서 구간별 주제색을 적용해 최소한의 통일성을 확보했다. 주제색을 적용한 홈이 가늘지만 야간에도 상당히 잘 지각되기 때문에 개별 상점 간판의 다양성은 인정하면서도 어느 정도 거리 전체의 통일성을 확보할 수 있었다.
한편, 공적사업의 결과인 간판개선사업의 성과를 유지하려면 주민단체의 결성, 간판협약만이 아니라 어느 정도 강제적인 제도적 뒷받침도 필요하다. 새롭게 광복로에 입점하는 업주들이 거대하고 과다한 간판이나 디자인 수준이 낮은 간판을 설치할 경우, 애써 형성된 간판 경관이 도미노처럼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사인스케이프2010 : 아름다운 간판거리’ 중 부산대 건축학부 우신구 교수의 ‘주민과 함께 한 날들, 그 곳의 간판과 거리’ 전문에서 일부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