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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8.31 17:37

‘기업간판에서는 동반성장 안 통한다’

  • 이승희 기자 | 227호 | 2011-08-31 | 조회수 2,544 Copy Link 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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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기업간판 저가 입찰 행태 갈수록 점입가경
 단가 낮추는데에만 관심… 방법도 가지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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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상생을 강조하는 ‘동반성장’이 간판 업계에서는 전혀 통하지 않는 듯하다. 크고 작은 간판 입찰과 관련, 대기업의 횡포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다량의 수요가 동시다발적으로 쏟아지는 기업간판은 볼륨있는 일이 많지 않은 간판 업계에 소위 ‘있어 보이는 일’이다. 어디가서 포트폴리오를 보여 줄 때도 기업간판 실적이 있으면 신뢰의 ‘보증수표’ 같아 보인다. 하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기업의 일을 맡고 있는 제작사들의 속은 타들어가는 게 현실이다. 사업을 끝내면 돌아오는 것은 이익이 아닌 손해다. 대다수의 기업이 ‘마른행주서 물짜내기’ 위한 간판 입찰을 실시하기 때문이다.

마른행주서 물을 짜내는 기업간판 입찰의 천태만상, 비단 어제 오늘 문제는 아니다. 오래전부터 있어왔던 고질병인데, 이제는 난치병 수준에 이르고 있다. 정부가 대기업-중소기업간 동반성장을 거론하는 시점인데도 불구하고, 제작업체를 불리하게 만드는 입찰구조가 조금도 개선되지 않은 채 되레 퇴행하는 모습이다. 올해 치러진 몇몇 간판입찰서 이같은 문제점이 불거지면서 또한번 업계의 비난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K사… 고가 자재 스펙 및 비전문적 총액 입찰 두고 논란 

올 상반기 대량 물량을 예고하며 실시됐던 이동통신사 K의 간판 입찰 때문에 업계가 한번  들썩거렸다. 전국의 약 3,000개 대리점의 간판을 리뉴얼하는 K사의 당초 간판 교체 예상 물량은 약 100억원대. 기업이 CI를 바꾼다고 해도 나오는 물량의 규모가 보통 3억원~10억원 대에 이르는 것을 감안하면, 상당한 물량으로 업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런가운데 K사의 MRO업체인 C사는 지난 6월께 K사 간판 리뉴얼에 대한 입찰을 실시했다. 그런데 실제 입찰 결과, 당초 예상했던 100억원대의 사업예산은 약 65%인 65억원대로 쪼그라들었다.

65억원을 써낸 업체가 입찰에서 1등을 했기 때문이다. 65억원으로 쪼그라든 낙찰가도 낙찰가지만, 당시 이 입찰에 대한 문제가 불거졌던 것은 간판에 소요되는 자재비용 때문이었다. 그 자체로도 워낙 고가의 자재들이 스펙으로 지정된데다, 특정업체에 독점적인 공급권을 부여했던 것.

한 제작업계 관계자는 “소재 공급자가 독점적이다 보니 해당 공급자가 책정하는 판매가를 따를 수 밖에 없는데, 문제는 일부 업체들이 시중가보다 비싼 가격에 소재 판매가를 책정했다는 데 있다”며 “예를들어 K사 간판에는 40T 통아크릴이 들어가는데, 해당 소재의 공급권을 가지고 있던 업체가 시중가의 2배에 가까운 가격을 책정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전체 물량 대비 소재 소요량을 두고 계산해 봤을 때 소재에 들어가는 총비용만 65억원의 절반 이상이었다”며 “자재비를 제외한 30억원에 3,000개 물량을 처리해야 하는 셈인데, 그밖에 인건비 들어가고 하면 남는 게 손해 뿐인  사업”이라고 혀를 내둘렀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일부 낙찰사들은 낙찰이 되고도 사업진행여부를 바로 결정짓지 못했고, 발주처에 적정한 단가 조율을 요구하며 한달간 팽팽한 줄다리기를 했다. 그결과 당초 터무니없던 간판 단가, 소재가 등은 어느정도 저절이 됐다.

한 낙찰사 관계자는 “현재 리뉴얼 공정률은 90% 정도”라며 “사업 초반에는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중간에 소재 공급가도 적절히 조정됐고, KT 측이 당초 예상 대비 추가 물량에 대한 비용 지급을 약속해 비교적 원만히 진행되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이번 K사 간판 리뉴얼 입찰에 대한 입찰 방식에 대한 지적도 이어지고 있다. 바로 총액 입찰로 진행됐다는 부분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회배당 계산해야 하는 간판을 총액으로 계산해서 사업을 진행하다보니 현장의 현실과 동떨어진 부분이 많았다”며 “이번에 간판 구매를 진행한 구매대행사가 너무 간판을 일반 물품의 개념으로 보고 접근한 것 같다”고 전했다. 또 그는 “전국의 간판이 한 개의 사이즈로 통일돼 있는 기성품이 아니기 때문에 규격별 단가가 책정이 돼야 하는데 그런 부분이 모자랐다”며 MRO업체의 비전문성을 꼬집었다.

L사… 간판 단가 낮추려는 지능적 입찰에 업계 ‘황당’

K사에 연이어 간판 리뉴얼을 진행했던 이동통신사 L사의 간판 입찰도 업계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있다.

전국의 약 2,000여개 대리점의 간판을 리뉴얼 중인 L사는 예가 방식으로 간판 입찰을 진행했다. 업계에 따르면 L사의 당초 사업예상물량은 40억원대로, 입찰 전 현장설명회를 통해 “적정한 단가에 간판을 리뉴얼할 계획이니 입찰에서 단가를 너무 낮춰 쓰지말라”며 “예가의 85% 미만은 입찰에서 탈락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입찰 결과 뚜껑을 열어놓고 보니 예가가 터무니없었다는 것. 업계에 따르면 최종 낙찰 단가로 예가를 추정해보니 원래 예상했던 예가보다 10~15억원이나 아래로 예가가 정해져 있었다.

입찰에 참가했던 한 업체 관계자는 “예가가 45~50억원 정도가 돼야 정상인데, 도대체 예가를 어떻게 잡아놓은 건지 말도 안되는 예가가 나왔다”며 “적정 마진을 보장하겠다던 현설에서의 설명은 온데간데 없었다”고 회상했다.

그런가하면 간판에 들어가는 각각의 파트를 세분화해 진행한 입찰방식도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채널사인, 어닝사인, SMPS, 프레임 등 간판에 들어가는 모든 부분을 세분화해 분리 입찰을 실시한 것. 보통의 기업 간판 리뉴얼에서는 제작사가 선정되면 해당 제작사가 소재를 구매하고, 채널사인이나 프레임 등 간판에 들어가는 각각의 부분을 하도급을 통해 대응한다. 하지만 이번 경우에는 제작사가 아닌 발주처가 직접 해당 업체들을 선정한 것. 즉, 채널사인 업체들끼리 경쟁 입찰을 해 정식 공급업체가 되는 방식이다.

부분별 세분화를 통해 분리 발주를 진행하는 이같은 방식은 발주처의 입장에서는 구매단가를 낮출 수 있는 최상의 방법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우리 업계에서는 유례없는 독특한 입찰이 진행됐다”며 “간판 단가를 낮추는 방법이 점점 지능화되고 있다”고 표현했다.  또 그는 “대기업, 중소기업 간의 상생이 아니라, 기업 홀로서기를 할 셈이냐”며 “이런 입찰에 터무니없는 단가로 투찰하는 업계의 논개 정신도 문제”라고 꼬집었다. 


 

 


이승희 기자[ⓒ SP투데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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