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기사

2011.09.16 10:02

┃한국옥외광고센터 공동기획 시리즈┃- '간판,명작을 품다' -3 클림트 '키스'

  • 이정은 기자 | 228호 | 2011-09-16 | 조회수 2,790 Copy Link 인기
  • 2,790
    0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는 히포크라테스의 명언처럼 예술작품들은 무한한 생명력을 가지고 우리의 생활 곳곳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리스 로마 신화를 통해 나이키라는 브랜드가 등장했으며, 몬드리안의 그림이 20세기 제품 디자인의 모티브가 된 것처럼 말이다. 간판 또한 마찬가지다. 거리의 곳곳에는 명작의 향취을 담고 있는 간판들이 숨어 있다. 한 눈에 작품을 알아 볼 수도 있고,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요소요소에 명작의 모티브를 숨겨놓은 재미있는 간판도 있다. 본지는 이처럼 간판 속에 담겨진 예술작품의 모습을 살펴보는 ‘간판, 명작을 품다’ 코너를 한국옥외광고센터와 공동으로 기획, 연재한다.


황금빛 에로티시즘, 우리네 일상을 매혹시키다

간판-인테리어-생활소품으로 다양하게 변주

 10-클림트의%20키스는.jpg
 클림트의 ‘키스’는 카페나 레스토랑의 벽면에 무심한 듯 걸려있기도 하고, 그 화려하고 장식적인 요소 때문인지 간판의 모티브가 되거나, 건물이나 매장의 외벽을 장식하는 익스테리어의 요소로 활용되는 사례도 적지 않다. 벽지, 블라인드, 쿠션, 우산 등 인테리어 생활소품으로도 우리 곁에 바짝 다가와 있다.



여자는 눈을 감고 기다린다.
꽃이 가득한 들판에 무릎을 꿇고 남자의 목에 팔을 둘러 매달린 채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언제부터 그 자세로 기다려 왔는지, 도대체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지,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다. 오랜 기다림의 자세를 풀지 않은 여자가 기다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여자는 무엇을 기다리는가.
남자의 두 손이 여자의 고개를 붙잡고 비스듬히 돌려도, 남자의 마른 입술이 뺨에 닿아도, 여자의 기다림은 끝나지 않는다. 기다림이 키워낸 황금빛 덩굴이 여자의 발목을, 종아리를, 무릎 안쪽을 휘감으며 들판 전체로 펴져나가 마침내 그녀 자신이 들판에 솟아오른 커다란 꽃나무로 변해가도, 여자는 눈을 감고 온몸을 내던져 기다리기만 한다. 기대감의 표현인 듯 반짝이는 꽃과 별, 그 속에서 여자의 마음이 기다림의 탑을 만들어 나간다. 모든 것을 잊고, 사랑의 상념도 잊고, 매달려 있는 남자도 잊고, 그러다 기다림을 시작한 자신의 욕망은 물론이고 자신의 존재마저 잊어버린다.

오직 기다림만이 남은 그 여자의 세계.
그 세계를 둘러싼 황금빛 안개는 여자가 시간과 공간을 잊고 낯선 꿈에 잠긴 채 몇십년을 보낼 수 있도록 도와준다.

‘키스’는 가장 인간적인 행위라 할 수 있는 남녀의 포옹과 입맞춤을 그리고 있지만, 그 몽환적인 분위기와 신비로운 에로티시즘은 낯선 어딘가를 헤매는 느낌을 준다. 이 세상이 아닌 어딘가, 끝없이 펼쳐진 우주 한 귀퉁이, 지금도 아니고 옛날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미래의 어느 때라고도 말할 수 없는 시간. 아니 그 시간조차 멈추어진 곳에서 평온한 합일감에 도취된 연인이 있다. 누구나 사랑에 빠지면 손을 잡고 포옹하고 입맞춤도 하지만 누가 그들처럼 별이 반짝이는 하늘 아래 오직 둘만 남는 ‘우주적 합일’의 경지에 도달하게 될까. 그들은 한 몸이다. 황금빛 안개가 꼭 부둥켜안은 그들을 더욱더 한 덩어리로 엮어준다.황금가루처럼 반짝이는 별들이 하늘 가득 펼쳐진 광경은 연인이 느끼는 황홀경의 시각적 표현이다. 헐렁한 옷 때문에 몸의 굴곡조차 불분명한 남자와 여자는 옷의 무늬로 구분할 수 있다. 여자의 옷은 연인이 자리 잡은 풀밭을 옮겨놓은 듯 둥글고 다채로운 색의 꽃들로 장식되어 있고, 남자의 옷은 황금빛 바탕에 회색과 검은색 등 무채색의 직사각형 도형 무늬이다.
-클림트, 황금빛 유혹 中<신성림 저>

 10-홍대에%20위치한%20한%20카페의%20외관.jpg
 홍대에 위치한 한 카페의 외관. ‘키스’의 일부분을 차용한 화려한 황금빛 이미지가 다소 드라이해 보이는 카페의 이미지에 로맨틱한 감성을 더한다.   


 10-클림트의%20키스를%20컨셉으로%201.jpg
  
 10-클림트의%20키스를%20컨셉으로%202.jpg

 클림트의 ‘키스’를 컨셉으로 한 여성의류 매장의 모습. 그림 속의 기하학적인 문양을 간판의 모티브로 활용하면서, 전면부에 ‘키스’의 한 부분을 페인트로 그려 넣었다.


단 한번의 잊지 못할 입맞춤의 순간을 황금빛 찬란한 몽환적인 느낌으로 표현한 ‘키스’는 구스타프 클림트의 작품 중에서 가장 유명하고 가장 사람들의 사랑을 많이 받고 있는 작품이다.

황금빛 가운을 입은 곱슬머리의 남자가 역시 금빛 원피스를 입은 여자를 꼭 안고 이제 막 키스를 하려는 순간의 모습인데, 남자의 숨결에 상기된 얼굴의 여자는 눈을 지그시 감고 숨이 멎는 듯 황홀감에 빠져 있다.
혹자는 이를 두고 황금빛 에로티시즘의 극치라고 표현하기도 했는데, 클림트의 ‘키스’를 접하는 이들은 그 화려함에 먼저 매혹 당하고 압도 당한다.

인간의 행동 중 가장 로맨틱한 행위인 ‘키스’는 그 자체만으로 매혹적인 주제인데다 온통 황금빛으로 물든 화면과 섬세한 구성은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묘한 매력과 끌림으로 다가온다.

필자는 몇 년 전 오스트리아 여행을 하면서 벨베데레 궁전을 찾아 실제로 ‘키스’를 마주한 적이 있었다. 실제로 마주한 ‘키스’는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컸고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매혹적이었다. 내 키를 훌쩍 넘는 사이즈의 화폭을 한 가득 채운 찬란한 황금빛, 그 가운데 하나인지 둘인지 모를 남녀가 황홀경에 빠진 모습을 마주한 순간, 내 몸과 눈도 황홀경에 빠져들었다. ‘감동적’이라는 표현으로는 부족한, 형용할 수 없는 강력한 매력이 주변을 압도하는 느낌이었다.

눈부시게 빛나는 그 유혹은 거부할 수 없는 매력으로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것이리라.
클림트의 ‘키스’는 이제 우리 일상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는 하나의 이미지가 됐다. 카페나 레스토랑의 벽면에 무심한 듯 걸려있기도 하고, 그 화려하고 장식적인 요소 때문인지 간판의 모티브가 되거나, 건물이나 매장의 외벽을 장식하는 익스테리어의 요소로 활용되는 사례도 적지 않다. 벽지, 블라인드, 쿠션, 우산 등 인테리어 생활소품으로도 우리 곁에 바짝 다가와 있다. 반짝이는 금빛과 기하학적인 형태를 복잡하게 조합해 몽환적이고 황홀한 세계를 만들어낸 탁월한 디자인 감각은 100년이 지난 지금에서 봐도 지극히 현대적이고 세련되어 보인다. 그 자체만으로 하나의 훌륭한 디자인 요소가 되기에 충분하다.

황금빛 남녀의 몽환적인 이미지는 메마른 도시인들에게 잊고 있던 촉촉한 감성을 찾아주고, 또 한번의 순수하고 달콤한 사랑을 꿈꾸게 한다.

클림트를 중심으로 젊은 예술가들이 1897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결성했던 빈 분리파가 지향했던 가장 큰 목표는 바로 대중의 감성을 일깨우고 삶과 예술을 통합하는 일이었다. 그들이 생각한 ‘토탈아트’ 개념은 순수예술과 응용예술, 예술과 삶, 예술가와 장인, 건물과 장식, 순수형식과 장식의 경계를 허무는 것이었다. 그들은 실용성과 미학을 결합하고 예술을 실생활 속으로 끌어들이는 시도를 계속했고, 그런 가운데 탄생한 명작이 바로 ‘키스’다.

한 세기를 지나 지구 반바퀴 떨어진 이 곳 한국에서 클림트의 ‘키스’라는 명화 한 편이 그와 같은 맥락에서 대중의 감성을 자극하고, 다양한 변주를 통해 삶과 예술의 문턱을 낮게 만드는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인데, 참으로 재밌고 아이러니한 일이다.

만일 클림트가 자신의 그림이 우리네 일상 속에서 다양하게 변주되면서 사랑받고 있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자신의 추구했던 ‘토탈아트’의 개념이 비로소 실현됐다고 기뻐할지도 모를 일이다.

 

 

 

이정은 기자[ⓒ SP투데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공유링크 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