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중 기자 | 238호 | 2012-02-17 | 조회수 2,3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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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 속 문학의 숲을 거닐다’ 문학의 정취 담은 시설디자인 ‘눈길’
서대문구 연희동 주택가 언덕배기에 자리잡은 ‘연희문학창작촌’은 서울시창작공간 중 유일한 문학전용 공간이다. 문인들에게는 집필실로, 지역주민에게는 문화쉼터로 사랑받고 있는 이곳은 소나무와 감나무, 밤나무 등 과실수 숲으로 둘러싸여 있어, 마치 한적한 시골 펜션을 연상시킬 만큼 소담한 운치를 자랑한다. 원래는 서울의 역사를 연구•편찬•교육하는 기관인 시사편찬위원회가 198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사용하던 사무실이었는데, 전용주거지역이라 이후 활용도에 어려움을 겪던 차에 2009년 서울시창작공간 운영에 따라 문학에 특화된 창작공간으로 거듭났다. ‘끌림’, ‘홀림’, ‘울림’, ‘들림’이라고 이름이 붙여진 기와집 4개 동의 집필실에는 시인 신달자, 이시영, 김경주, 소설가 은희경, 권지예, 백가흠 등 중진에서 신진까지 다양한 작가들이 짧게는 1개월에서 길게는 6개월까지 머물며 작품 활동을 한다. 입주 작가들은 정기공모를 통해 3개월간 입주할 수 있으며, 4만~8만원 정도의 관리비만 내면 된다. 작가들에게는 목 좋은 작업실이지만, 일반시민들에게는 색다른 쉼터다. 특히 여기서는 그동안 책으로만 만나던 유명 문인들을 직접 만나 소통하고 대화를 할 수 있는 기회도 제공된다. 가을에 펼쳐지는 문학대축제 기간에는 영국사회운동의 하나인 ‘리빙 라이브러리(Living Library)’처럼 만나고 싶은 작가를 홈페이지에 신청하면 1대1로 작가와 만나는 시간이 주어진다. 한편, 이곳에서는 문학촌이라 이름에 걸맞게 문학의 정취가 가득 담긴 이색적인 시설물들을 볼 수 있다. 먼저 입구에 들어서면 커다란 원고지에 적힌 촌장 박범신의 인사말이 보인다. 그야말로 문학적인 간판이다. 그 뒤로 방문객을 맞는 것은 작가들의 ‘손’이다. 고풍스러운 부식철(코르텐강)로 제작된 난간에는 2009년 ‘창작하는 작가의 손 아카이빙 행사’를 통해 만들어진 작가들의 핸드 프린팅이 부착돼 있다. 제목은 ‘그들의 손안에 우주가 있다’다. 특히 이 난간을 가까이서 보면, 표면에 수백가지의 낱말판들이 자석으로 부착돼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방문객들은 이 낱말판들을 조합해 하나의 문장을 남길 수 있다. 그러나 원하는 낱말을 모두 찾아내기란 쉽지 않기 때문에 가까이에 있는 낱말들을 이리저리 조합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시 한귀절이 만들어진다. 기자도 이곳을 방문한 날 ‘사랑 숨죽이다’라는 한 문장을 남기고 돌아왔다. 입구를 지나 쭉 올라가다 보면 여기저기 곳곳에 이와 같은 형태의 작품들이 만들어져 있다.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문학을 지향하는 ‘연희문학창착촌’의 기치를 여기서 느껴 볼 수 있다. 창작촌 안쪽으로 들어가도 재미있는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끌림동 앞에는 휴식을 뜻하는 ‘휴’자가 정말 쉬는 것처럼 편안하게 늘어져 있다. 절로 웃음이 나는 모습이다. 건물의 벽면에 그려진 그림들은 음영을 통한 착시로 마치 거대한 책이 꼽혀져 있는 것 같은 모습을 보여 준다. 이외에도 숨바꼭질하듯 구석구석에 숨겨져 있는 다양한 볼거리를 찾아내는 것은 이곳을 방문해 얻을 수 있는 색다른 재미다. 어느 날 가슴 한구석이 허전해진다면 연희문학창작촌으로 가보자. 문학 속에 담겨진 지성과 감성이 당신의 빈곳을 가득 채워줄 것이다.
관리실 상단에 설치된 연희문학촌의 간판. 코르텐강으로 제작된 이 간판은 철을 글자모양으로 오려내 상호를 새겨 넣었는데, 밤이 되면 안쪽에 설치된 조명을 통해 면발광사인과 같은 연출을 한다.
낱말판을 조합해 자신만의 문구를 남길 수 있는 시설물들이 곳곳에 설치돼 있다.
입구에서 관람객들을 맞이하는 박범신의 인사말과 한국문학을 빛내고 있는 작가 100여명 핸드프린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