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희 기자 | 240호 | 2012-03-27 | 조회수 4,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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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수원시 화성행궁길
간판, 보도, 가로등 교체 사업으로 전통의 미를 되찾고 있는 화성행궁길.
‘행궁을 닮은 간판, 행궁을 담은 간판’ ‘아트기와’ 파사드에 핀 ‘캘리그라피’ 꽃 주민의 감성으로 다시 태어난 전통의 거리
서체의 다양화로 개별 업소의 간판에 개성을 더했다.
간판 뿐 아니라 파사드를 함께 정리해 간판 개선의 효과를 높였다.
1층 파사드 소재로는 아트기와를 사용했다. 아트기와는 진흙이 주소재이며, 색을 입히고 유약을 발라 고온에서 굽는 도자기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아트기와의 문양이 한국 전통의 미를 느끼게 해준다.
개성있는 서체의 간판과 파사드가 조화를 이루고 있다.
아트기와 대신 갈바 간판으로 건물의 노후화된 부분을 보완하기도 했다.
독특한 간판의 서체가 눈에 띈다.
공방이 밀집해 있는 것도 이 거리의 특징이다.
전통을 강조하기 보다 전통과 현대적 디자인을 적절하게 조화시킨 간판도 있다.
점포의 정체성이 잘 디자인된 갈바 간판 사례.
“감히 내 앞에서 멀어지지 마라. 어명이다” 인기드라마 ‘해를 품은 달’ 속에서 왕 ‘이훤’이 무녀 ‘월’에게 던진 이 대사는 뭇 여성들의 가슴을 떨리게 만들었다. 부드러우면서도 카리스마있는 훈남왕 이훤의 역할을 완벽하게 소화해내고 있는 김수현에 대한 가슴앓이까지 생겨날 정도로 인기가 날로 치솟고 있는 드라마 해를 품은 달. 이같은 드라마나 히로인의 인기에 힘입어 다시금 회자되고 있는 명소도 있다. 바로 수원의 화성행궁이다. 드라마의 인기와 더불어 촬영장소 문의가 이어지면서 공개된 주촬영지 중 한 곳인 화성행궁. 이 곳은 해품달 뿐 아니라 종영드라마 ‘이산’, ‘대장금’ 등 쟁쟁한 명품 사극의 촬영지로 이미 유명한 곳이다. 하지만 행궁은 드라마 촬영 명소이기 이전에 깊은 역사성을 지닌 공간이다. 조선시대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소를 현륭원으로 이장하면서 수원을 건설하고 성곽을 축조했으며 1795년 서울에서 수원에 이르는 중요 경유지에 여러 곳의 행궁을 설치했는데, 그중 규모나 기능면에서 으뜸으로 꼽히는 곳이 화성행궁이다. 또 단순한 건축 조형물을 뛰어넘어 개혁적인 계몽군주 정조가 지향하던 왕권강화정책의 상징물로 정치적, 군사적으로 큰 의미를 지니고 있는 곳이다. 이렇게 의미 있는 역사의 유물은 200년 이상 자리를 지켰지만, 도시가 현대화되는 과정에서 그 주변 지역은 고유의 색깔을 잃어버린 채 낙후와 퇴보의 어두운 터널을 지나야했다. 그렇지만 최근 행궁 일대가 행궁이라는 장소성과 역사성을 닮은 거리로 조금씩 탈바꿈되고 있다. 특히 그 변화의 시작이 다름아닌 간판으로부터 일어나고 있다.
▲행궁길 간판거리 조성 배경=행궁의 우측에 위치한 행궁길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화성이 있는 지리적 여건으로 국내외의 많은 관광객이 찾아오는 문화관광의 요충지이다. 이와 동시에 공예품점의 입점이 두드러진 거리로, 작품활동를 위한 작가들이 모여 공동체 문화활동과 마을 르네상스를 위한 여러가지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는 특색을 지닌 공간이기도 하다. 수원시는 지역의 이같은 특색을 살려 인사동과 같은 명물거리를 조성하기 위해 간판개선에 나섰다. 간판으로부터 시작된 작은 변화로 거리가 역사성과 특색을 되찾고 나아가 관광객을 끌어들일 수 있는 컨텐츠까지 생긴다면, 향후 이 거리는 행궁과 팔달문 시장을 연결해 화성 관광의 동선 확대에 기여할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사업은 시작됐다.
▲사업 추진 과정=이번 사업의 중심에는 ‘관’보다는 ‘주민’이 있었다. 시는 주민의 적극적인 참여를 위해 사업추진 단계에서부터 주민협의체를 통해 사업을 전개했다. 해당지역의 공방을 직접 운영하는 작가들의 레지던스 모임에 수차례 사업 제안을 했고 그들을 통해 ‘아름다운 행궁길’이란 주민협의체를 구성, 사업을 추진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주민협의체는 사업 계획을 세우는 것부터 간판디자인에 대한 동의를 얻기까지 전과정을 맡았다. 이번 사업의 간판 디자인을 맡았던 온니원의 박동훈 대표는 “이 곳 사업은 다른 곳에 비해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됐는데, 그 원동력이 주민협의체에 있었다”며 “주민협의체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코자 한 수원시의 남다른 마인드도 큰 역할을 했다”고 설명했다. 역시 디자인에 참여했던 모던디자인 박형순 대표는 “행궁길 주민들은 기본적으로 이 지역에 애정을 갖고 모인 사람들인 만큼, 사업 참여에도 적극적이었다”며 “간판 글씨 하나하나에 주민의 디자인 의식과 의지가 담겨져 있다”고 덧붙였다. 주민이 주체가 되어 추진된 이번 사업을 통해 화성행궁 우측 전시관 골목에서 화성관람 매표소에 이르는 200m 거리는 특색있는 거리의 면모를 갖추게 됐다.
▲사업 이후, 간판의 모습=‘전통 기와 무늬의 타일’과 그 위에 어우러진 ‘캘리그라피’로 거리의 간판은 탈바꿈했다. 간판의 디자인을 접근하는데 있어 주안점은 지역색의 반영에 있었다. 화성행궁이라는 문화재와 어울리면서 공방 밀집 지역이라는 특색을 반영하는 디자인을 마련하는데 최우선 주력한 것. 간판만 바꾸면 노후화된 건물이 훤히 드러나기 때문에 건물의 1층 파사드도 함께 정비했는데, 여기에 사용한 소재가 전통 기와식 ‘아트 타일’이다. 다양한 전통문양이 반영돼 만들어진 이 타일은 거리를 클래식한 분위기로 조성하는데 일몫했다. 뿐만아니라 간판의 서체도 다양화했다. 획일적인 채널문자의 부작용을 방지하기 위해 다양한 캘리그라피를 사용한 것. 수원시청 도시디자인과 김재섭 광고물 팀장은 “점포별로 다양한 서체 디자인을 개발했으며, 서체를 디자인하는데 있어 주민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했다”며 “어떤 점포는 붓글씨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지인들을 직접 섭외해 자신만의 서체를 만들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개성있는 간판이 나오고, 이를 통해 거리가 변모하면서 사업 추진당시 반대했던 주민들의 태도도 달라지고 있다. 초반에 사업을 반대했다던 한 점포주는 “가게가 거리의 초입에 있어 자연스럽게 방문객의 숫자를 세게 됐는데, 사업 이후 방문객이 분당 평균 5명일 정도로 기존에 비해 방문빈도가 3배 이상 늘었다”며 반색했다. 또한 시에 따르면 끝까지 동의를 하지 않아 간판을 바꾸지 않은 일부 점포들도 뒤늦게 간판을 교체해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김재섭 광고물 팀장은 “사업을 추진하면서 주민들의 인식이 전환되고 있다는 게 무엇보다 큰 성과”라고 전했다. 또 그는 “사업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보존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며 “지역단체인 아름다운 행궁길과 지속적인 교류를 통해 사후관리를 이어나갈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수원시는 이같은 사업의 결과 지난해 행안부의 옥외광고업무 평가에서 대통령상으로 선정되는 쾌거도 달성했다. 수원시 도시디자인과 최군식 과장은 “다소 늦게 시작하긴 했지만 시장의 강한 의지와 조직력을 바탕으로 지난해 행궁길 뿐 아니라 수원 도심 곳곳의 간판을 개선했다”며 “올해도 간판문화의 개선에 총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