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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3.30 13:11

(한국옥외광고센터 공동기획 시리즈) ‘간판,명작을품다’ - 9 한국문학과 간판

  • 이승희 기자 | 241호 | 2012-03-30 | 조회수 2,281 Copy Link 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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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의 시인’ 천상병 시인의 흔적을 만날 수 있는 인사동 ‘귀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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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 구읍의 가게 간판에서 정지용 시인의 싯구를 발견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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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평의 가을은 이효석 작가의 ‘메밀꽃 필 무렵’을 떠오르게 한다.


간판에 피어난 문학의 향기
맘 속 고이 접어든 향수 자극

우연히 마주치게 되는 기억 저편의 한줄 시, 유년시절 밑줄 그으며 되뇌었던 소설의 흔적들은 바쁜 일상에 동화된 활발한 두뇌활동을 서서히 둔화시키고 가슴으로부터 아련한 향수를 끄집어낸다. 그러는 동안 일상 속에서 잠시 차가워졌던 가슴에는 잠시라도 따스한 온기가 돈다.  
‘언젠가 꼭 다시 읽어보리라’, ‘한번쯤은 외워보리라’ 가슴 속에 아로새겼던 ‘주홍글씨’가 된 소설, 시... 바쁘다는 핑계로 수없이 반복한 다짐과 약속을 종종 미루지만, 그래도 괜찮다. 우리는 인사동에 있는 ‘귀천’에서 차를 마시고, 봉평에 있는 막국수집 ‘메밀꽃 필 무렵’에서 메밀막국수 한그릇 먹을수 있으니까. 

인사동에서 ‘천상병’을 만나다
“나 하늘로 돌아 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불현 듯 엄습해오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지긋이 눌러주고 평화와 안도감을 주는 시다. 실제로 인사동에 가면 천상병의 시 ‘귀천’이라는 상호를 쓰는 전통찻집이 있다. 천상병 시인의 부인인 목순옥 여사가 운영하기 시작했고, 목 여사가 별세한 뒤 원조 귀천은 문을 닫았지만 그녀의 조카가 2호점을 운영하며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그곳에 가면 천 선생의 학창시절, 책 등 그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콧바람 쐬러 인사동에 나가 구석구석 다니다보면 어느 골목 어귀서 천상의 시인과 만남을 안내해줄 하얀 여백 위 한자로 그려진 간판이 기다리고 있다. 

봉평에 소금 뿌리듯 핀 ‘메밀꽃’
인사동에서 천상병 시인을 만날 수 있는 것처럼, 굳이 활자를 통하지 않고도 아련한 기억 속의 문학을 추억하고 작가의 영혼과 마주하고 싶을 때 작품 속 배경이 된 ‘그곳’을 찾아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작품 속 배경이 인기 명소가 된 대표적인 지역으로 봉평을 꼽을 수 있다. 봉평은 현대소설의 대표적인 단편작가 이효석의 대표작 ‘메밀꽃 필 무렵’의 무대가 된 곳이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그는 소설 속에서 봉평에서 대화까지 칠십리 길을 만개한 가을 메밀꽃과 함께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섬세한 붓 터치로 그림 그리듯 한 묘사는 작품을 읽은 독자들을 금새라도 봉평으로 데려다 놓을 기세다. 많은 사람들이 봉평을 찾고, 메밀꽃이 피기를 기다리는 이유다.    

옥천에 서린 정지용의 ‘향수’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즐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음절 하나하나에 콩나물대가리가 달려 어느 유명 테너의 낮고 굵은 목소리로 더욱 많이 기억되고 있는 정지용의 ‘향수’. 작가의 고향인 옥천은 온통 그를 추억하는 ‘향수’로 가득하다.  ‘향수 아파트’, ‘향수식당’, ‘향수호프’ 등 그의 작품 향수를 차용한 상호들이 많다. 그 상호만으로 정지용 작가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 충분하다.
정지용 생가가 있는 구읍리 작은 마을은 아예 그의 싯구로 간판을 꾸며놓았다. 정육점 간판은 ‘얼룩백이 황소가~’라는 싯구와 함께 황소 조형물이 걸려있다.
정지뜰이라는 한식당에는 ‘불피어 오르는 듯하는 술 한숨에 키여도 아아 배고파라’라는 정지용의 저녁햇살 싯구가 적혀있다. ‘피식’하고 실소를 자아내는 재치있는 간판들이다.
시공을 초월해 회자되는 훌륭한 세계 문학도 많지만, 한국인의 정서에는 한국 문학만이 전해줄 수 있는 긴 여운과 감동이 있다. 그리고 문학을 매개로 우리는 당대의 문인들과 시공을 뛰어넘는 교감을 한다. 문학적 향취가 있는 간판들에 한번더 눈길이 가는 까닭이다.   

이승희 기자[ⓒ SP투데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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