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중 기자 | 243호 | 2012-05-02 | 조회수 2,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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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D와 채널사인 능숙하게 도시를 포장하고 있는 지금처럼, 한때는 휘황한 빛으로 어두운 거리를 밝히던 네온사인에 익숙했던 시절이 있었다. 당시를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네온사인에 대한 추억 한 자락쯤은 가지고 있을 만큼, 촌스러운 이미지로 가득한 도시의 풍경 속에서 네온사인만큼은 꽃처럼 빛났다. 그 광채에 취해서였을까? 어두운 밤 네온의 강물 속으로 걸어가는 청춘들의 모습은 까까머리 소년에게는 막연한 동경의 대상이었다. 카페와 주점의 입구마다 환하게 불 켜진 네온사인은 마치 어른이 되는 통과점처럼 비춰졌다. 그러나 훌쩍 시간이 지나 술잔을 들어도 어색함이 없는 나이가 됐을 때, 네온사인은 이미 그 불이 사그라지고 있었다. 네온의 광채로 불야성을 이루던 명동거리의 간판들이 단단한 채널사인으로 바뀌더니, 언젠가부터는 동네 어귀 카페에서조차 네온의 모습을 찾아 볼 수 없게 됐다. 정책적으로 외면당하고, 사람들의 관심으로부터도 멀어진 네온이 결국 거리를 떠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이제 네온 속으로 노을이 지던 화려했던 풍경은 사라지고, 노을 속으로 사라져가는 네온의 모습만이 남았다. 결국 주류(主流)에서 밀려나 황혼기를 맞이한 네온이지만, 아직도 독특한 울림이 있는 네온의 감성을 잊지 못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에 본지에서는 희미해진 네온의 불씨를 어렵게 이어가고 있는 이들의 모습부터, 힘겨운 현실에 부딪혀 네온관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던 이들의 안타까운 사연까지, 네온업계의 현주소를 2회에 거쳐 지면에 담아본다.
네온이 사라지는 시대, 마지막 네온장인들을 만나다 사그라지는 네온 불빛, 그 뒤편의 이야기들
네온사인이 만들어 지고 있는 모습.
▲업계 90%가 사업 접어… 추락하는 네온산업 관련업계에 따르면 현재 네온업계는 90% 이상의 업체가 사업을 접거나 새로운 분야로 업종을 변경하고 있다. 현재 네온을 현업으로 하는 업체는 전국적으로도 50곳이 채 되지 않는다. 그나마 네온사업을 존속하고 있는 업체들도 엄청나게 추락한 매출로 인해 하루하루 유지해 나가는 것도 버거운 상황이다. 지난 시절 네온시장의 선두에서 명성을 날렸던 한 업체의 경우 1990년대말 6,000만원을 호가하는 금액을 주고 구입했던 네온자동화제작설비를 지난 2009년 고작 30만원이라는 돈을 받고 고철상에 넘겨 버렸다고 한다. “한 때는 사람 손이 수요에 대응할 수가 없어 구입했던 장비인데, 단 하나의 간판을 만드는 일도 들어오지 않는 지금은 단지 공간을 차지하는 고철덩어리일 뿐”이라는 이 업체 사장의 자조 섞인 말은 네온업계의 고단한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현재 네온 시장의 매출 규모는 전성기를 한참 지난 2000년대 초반과 비교해도 그 10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신규 설치사업은 거의 발생하지 않고 앞서 설치한 공간의 보수작업을 통해 그나마 조금씩 매출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업체들이 대폭 정리돼 시장 경쟁이 축소됐음에도 불구하고 네온업체들의 어려움은 날로 더해가고 있다.
▲간판정비사업에서 네온이 설 자리는 없어 지난 88올림픽을 전후로 시장이 활짝 개화하며 찬란한 시대를 맞이했던 네온사인이 이렇게까지 사그라지게 된 데는 정부의 과도한 규제와 더불어 LED등 신광원의 등장에 따른 소비자들 외면이 이어지면서 안팎으로 이중고를 겪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정부는 지난 2004년 무렵 도시의 야경을 해친다는 이유로 점멸형 광고물의 설치에 대한 규제를 강화했다. 각각의 램프가 다양한 방식으로 점멸하며 나타나는 화려한 연출효과가 가장 큰 장점이었던 네온사인에게 있어 점멸방식이라는 날개를 꺾어 버린 것은 당시로선 시장 입지가 크게 좁아질 수밖에 없게 만든 요인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후, 전개된 LED채널사인 일변도의 간판정비사업은 네온산업이 땅바닥까지 추락하게 된 결정타가 됐다. 수많은 간판 교체 물량이 나왔음에도, 네온이 설 곳은 단 한곳도 없었기 때문이다. 도시미관과 전력 절감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까닭에서였다. 예빛애드의 박희환 대표는 “당시에는 네온의 단점만이 부각됐을 뿐, LED만큼이나 전기소모가 적은 저전력 네온등에 대한 비교 검증 과정조차 없이 속수무책으로 밀려나 버렸다”며 “업계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협의체를 만들고 좀 더 체계적으로 대응했다면 결과는 달라졌을지도 모른다”라고 안타까움을 전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아트네온이라 불리며 네온사인의 큰 시장을 형성했던 네온POP마저도 소형전광판과 LED라이트패널·디지털사이니지 등 새로운 광고물과의 경쟁에서 밀려나며 수요처가 줄고 있어, 네온업계는 더욱 가파른 벼랑길로 몰리고 있다.
▲꺼져버린 네온, 갈 길 잃은 네온장인들 유독 기술에 대한 대접을 받지 못하는 간판산업에서 유일하게 장인이라는 소릴 듣는 것이 네온이다. 그만큼 배우는 과정이 길고 어렵기 때문이다. 실제로 대부분의 네온업자들이 1~2년 정도의 도제 과정을 거치면서 일을 배웠다고 한다. 네온 전문가들에 따르면 네온은 최소한 4년, 제대로 된 제품을 만들고 원하는 디자인을 자유롭게 제작하는데 까지는 10년이 넘게 걸린다. 지난날 20여년간 네온을 만들었다는 한성채널의 정진규 대표는 “네온관을 구워 모양을 만들고 가스를 넣어 색을 내는 과정 하나하나가 수작업으로 이뤄진다”며 “특히 유리마다 성질이 달라서 조금만 잘못하면 깨지기 때문에 그 미묘한 차이를 알아가기 까지 오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런 까닭에 언젠가 네온사인은 ‘부르는 게 값이 될 날이 올 것’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네온 기술을 이어갈 수 있는 고리가 현재로서는 전무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훗날 네온은 간판을 사는 것이 아니라, 장인에게 작품을 구입하는 것처럼 귀한 상품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오케이네온의 채형병 대표는 “현재 네온업자들 중 가장 젊은 축에 속하는 사람들도 40대 중반인데, 이들이 은퇴하거나 전업을 하면 사실상 국내 광고업계에서 네온장인들은 사라지는 것이나 다름없다”며 “시장이 사라지는 것도 아쉽지만, 그보다 기술이 사장되는 것이 더 안타깝다”고 말했다.
▲기획 1부의 취재를 끝마치며... 이번 기획을 위해 네온사인을 취재하며, 알게 된 사실 중 하나는 이제 네온을 보게 되는 거리가 압구정과 한남동, 신사동과 같은 고급의 패션거리라는 점이다. 구닥다리 취급을 받는 네온간판이 시대의 흐름을 앞서간다는 트렌드세터들이 모이는 장소에서 왜 새로이 나타나는 걸까? 문득 다시 네온의 유행이 돌아오게 되지는 않을지 생각해 보기도 한다. 그러나 네온의 시대가 다시 돌아올 것이라는 기대는 할 수 없을 것 같다. 네온의 전성기는 이미 스쳐간 시절과 함께 떠나간 까닭이다. 하지만 그 ‘불씨’만큼은 이어질 수 있도록 이 시대 마지막 남은 장인들을 응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