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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7.13 10:36

신한중 기자의 일본 간판 기행 - 上 긴자(銀座)

  • 신한중 기자 | 248호 | 2012-07-13 | 조회수 6,786 Copy Link 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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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최고의 명품 거리 ‘긴자’의 간판을 만나다

‘긴자에는 없는 명품은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을 만큼 긴자에서는 수많은 명품매장들을 볼 수 있다. 사진은 불가리 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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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백색 건물에 격자 무늬로 포인트를 준 디올 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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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4대 시계 브랜드로 꼽히는 ‘오데마피게’ 매장. 황동과 같은 느낌의 매장은 컨셉트가 특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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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최대 규모의 ‘애플 스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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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급 브랜드의 성역과 같았던 긴자의 모습을 변화시키고 있는 젊은 브랜드 중 하나인 H&M매장. 실사출력물을 활용한 대형 익스테리어가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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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크롬비&피치의 아시아 1호점. 건물 외벽에 음각으로 새긴 간판이 매우 독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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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년 전통의 팥빵집 ‘기무라야 소혼텐’의 간판. 유리창에 붙인 시트와 이어지는 간판의 디자인이 특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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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넬 긴자 매장은 매장 위층의 유리벽 전체를 미디어파사드로 사용한다. 낮에는 로고 정도만 표시하지만 밤이 되면, 다양한 미디어아트를 송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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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자의 유명한 팥빙수 전문점인데, 세장의 천막으로 만들어진 간판이 재미있다. 현대적 건물과 일본식 간판의 색다른 컨버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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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립 모양의 대형 조형물이 인상적인 문방구 ‘이토야’의 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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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형 플렉스 간판이 걸린 할인매장. 현재의 우리나라에서 상상도 못할 간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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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자의 고층 건물에서 볼 수 있는 연립형 돌출간판.


특유의 간판 문화가 유명한 나라 중 하나로 일본을 꼽는다. 그중에서도 긴자(銀座)는 우리의 청담동과 같이 명품 매장들과 각양각색의 고급점포, 브랜드의 플래그쉽 스토어들이 모여 있는 만큼 일본에서 가장 럭셔리한 간판을 볼 수 있는 거리다. 심지어 어떤 매장은 청바지 차림으로 들어갈 수 없는 곳도 있다고 한다.
원래 긴자라는 지명은 ‘은을 만드는 거리’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실제로 에도시대에 이곳에 은화 주조소가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은화주조소가 사라진 지는 오래지만, 그 명칭만은 아직도 이 거리에 주효한 듯하다. 지금 긴자에서는 은보다도 높은 가치의 소비문화가 양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최신 트렌드와 전통문화가 결합된 색다른 패션 거리
1,600년 유명한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승리하고 일본의 패권을 장악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본거지를 에도, 지금의 도쿄로 옮긴다.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머물렀던 오사카는 새로운 시대의 수도로는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세계 4위의 황금상권을 자랑하는 도쿄의 긴자는 그렇게 출발했다.
은화 주조소를 뜻하는 이름을 얻은 건 메이지유신 다음 해인 1,869년이다. 이곳에 은화주조소가 생기면서 긴자는 본격적으로 풍요의 코드로 자리잡게 된다. (원래 돈이 만들어지는 곳은 번성하기 마련이다).
막부, 즉 군대의 품에서 태어났지만 근대화의 세례를 받고 화려하게 피어난 긴자, 그 거리엔 세월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경제대국 일본의 장인 정신이 숨겨져 있다.
긴자 투어를 함께 했던 가이드에 따르면 긴자백점회(상인회)에 가입한 점포 중에는 창립 100년이 넘는 점포만 147개에 이른다. 외길을 걷는 전통을 높이 사는 특유의 문화 덕이라 생각하면서도 놀랍지 않을 수 없다.
일례로 단팥빵집 ‘기무라야 소혼텐’을 들 수 있다. 빵 하나로 일가를 이룬 소혼텐은 땅값 비싸기로 소문난 긴자, 일본 최고의 백화점인 와코백화점 인근에 8층짜리 건물을 세울 정도라고 한다. 무려 140년간 사랑을 받았다.

▲넘치지 않는 개성… ‘무질서 속의 질서’ 구현
이처럼 전통을 고수하는 노포들이 존재하는 까닭에 긴자에서는 최신의 트렌드와 일본식 전통문화가 하나의 간판에서 공존하는 묘한 풍경이 그려진다. 다양한 소재와 기술이 간판에 사용되기는 하지만, 상호와 서체만큼은 일본어를 쓰는 업소가 많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간판이 외래어 또는 영문으로 상호를 표기하기에 인사동 같은 일부 전통 거리를 제외하면 한국적 분위기를 찾을 수 없는 우리와 사뭇 다른 모습이다.
또 한 가지 긴자 간판의 특징을 꼽자면 ‘다양성’이다. 너무 구태의연한 표현이기에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조화로운 다양성’이라고 하겠다.
긴자의 간판들은 평범한 것이 거의 없다. 모든 매장들은 저마다 독특한 콘셉트의 간판을 내걸어 고객들을 유혹한다. 사용되는 소재와 디자인은 물론 크기도 다양한데, 곳곳에서는 엄청난 크기의 플렉스 간판들도 심심찮게 보인다.
중요한 것은 이렇게 다양한 디자인과 규격의 간판들이 넘쳐나는데도, 거리 전체적으로는 정돈된 느낌을 준다는 점이다. 
‘무질서 속의 질서’라고 할까? 자로 잰 것처럼 딱딱 맞춰진 간판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을 이곳 긴자에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된다.
한편, 긴자의 경우 연립형 돌출 간판의 활용이 아주 많다. 사실 이것은 일본 전체의 특징이기도 한데, 고층 빌딩이 많은 긴자의 특성상 유독 이런 간판이 많이 보였다.
연립형 돌출간판은 건물에 상주한 모든 업소들의 돌출 간판을 세로로 길게 이어 붙인 형태의 대형 연립간판을 말한다.
수많은 업소의 간판을 깔끔하게 정리한다는 점에서 이 연립형 돌출간판은 나름 효율적으로 보이는데, 사실 불편한 점도 많다고 한다. 수십여개의 간판들이 빼곡히 붙어 있다 보니 시인성이 떨어지는데다, 업소의 정체성을 설명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거품 경제의 몰락… 변화하는 긴자의 간판
언급했다시피 긴자는 일본을 대표하는 명품 패션 거리지만, 일본의 거품 경제를 상징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긴자를 ‘어슬렁거리는 모습(부라부라)’에 빗대 ‘긴부라’라는 신조어가 생긴 것도 이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최근 거품경제, 즉 고도성장기가 끝나면서 긴자의 모습도 변하고 있다. 일본 경제의 장기 불황 그림자가 최고 ‘명품거리’였던 도쿄 긴자 일대를 ‘중저가 거리’로 변신시키고 있는 것.
일본 소비자들이 명품 소비를 줄이면서 긴자거리의 명품매장들이 잇달아 철수하고, 대신 유니클로, ZARA, H&M, 포에버21 등 20~30대를 겨냥한 저가패션 브랜드점이 속속 둥지를 틀었다.
이에 따라 부유한 중장년층에 맞춰 중후하게 꾸며졌던 거리의 모습도 한층 젊어졌다. 이제 긴자에서는 보기만 해도 숨이 턱 막히는 명품매장의 간판보다 더 젊고 친근하게 꾸며진 새 간판들이 새로운 소비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긴자=신한중 기자 [ⓒ SP투데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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