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희 기자 | 250호 | 2012-08-14 | 조회수 5,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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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판정비사업의 새로운 지평을 열다
주민 공감대 형성에 최우선 주력한 행정 간판 재질까지 고려한 현실적 실시설계 단계적 사업 추진과 사업자 선정 방식의 차별화
개별 점포의 간판을 교체하고 합성목재 파사드로 기존의 노후화된 벽면을 깔끔하게 마무리했다. 사업에 동의하지 않아 아직 정비 전인 곳도 있다.
보는 것만으로 가슴 속까지 시원하게 느껴지는 상호에 걸맞는 간판 디자인이 눈에 띈다.
파사드와 개별 간판의 전체적인 색상, 디자인 조화도 고려했다.
나무 재질의 파사드에 걸린 파란색 간판이 시선을 확 끈다.
‘어쿠스틱’이라는 상호 옆에 나열된 픽토그램들이 점포의 정체성을 잘 보여주고 있는 간판이다.
'스마일’이라는 상호와 웃는 사람의 얼굴, 녹색과 노랑, 하얀색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 간판.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서체로 표현된 간판이 하늘과 묘하게 조화를 이룬다.
돌출간판의 형태는 이렇게 통일되게 정리했다.
간판과 파사드가 모두 정돈돼 깔끔한 인상을 주고 있다.
프랜차이즈의 경우 고유의 디자인을 반영해 간판을 설계했다.
남단의 작은 도시로부터 간판정비사업의 조용한 혁신이 시작됐다. 그동안 간판정비사업에서 야기됐던 부작용들을 최소화하고 나름의 대안과 해법으로 접근한 지자체가 있어 주목된다. 밀어붙이기식 행정보다 주민이 스스로 인식을 바꾸도록 유도하고, 이를 위해 공감대를 가질 수 있는 합리적인 사업 방식을 찾은 경남 남해군의 이야기다. 남해군은 올초부터 남해의 중심시가지인 남해대학 앞 400m 구간에 입점된 점포의 간판들을 바꾸고 있다. 새 간판의 모습은 최근에 많이 사용되고 있는 LED 내장형 채널사인과 프레임을 결합한 형태로 외관상 기존의 방식과 크게 다를 바 없지만, 사업을 진행한 방식과 과정은 다른 지자체와 사뭇 다르다.
군이 사업을 추진하는데 있어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주민의 동의와 공감을 이끌어내고 나아가 주민 스스로 간판 개선 의지를 갖도록 하는데 있었다. 이를 위해 사업기간을 제한적이고 짧은 기간으로 설정하지 않고 2년에 걸쳐 2차로 나눠 진행키로 했다. 단기간내 목표량을 채우기 위해 불도저식 행정을 펼치기보다 주민들의 간판에 대한 관심을 유도하고 또 스스로 개선의 의지를 갖도록 하기 위해 충분한 시간을 부여한 셈이다.
그래서 현재 해당 사업구간에는 간판을 교체한 곳도 있고 하지 않은 곳도 있다. 올초부터 전개한 1차 사업의 경우 사업에 동의한 곳 위주로 간판을 바꿔 달았기 때문이다. 간판을 교체하지 않은 곳들은 사업에 불응했거나 교체 여건이 되지 않아 보류한 곳들이다. 남해군 생태도시과 황진찬 도시디자인 팀장은 “2차에 걸쳐 사업을 함으로써 사업에 공감하지 못한 보조사업자들이 간판 정비 전, 후를 비교해보고 고민할 시간을 갖도록 하고 있다”며 “이번 사업에서 빠진 점포들이 이미 정비된 곳을 보고 스스로 사업 참여를 희망하는 등 효과로 이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행정 편의주의적 발상보다 주민의 입장에서 사업을 추진한 결과다.
사업추진방식 요소요소도 남다르다. 우선 디자인과 제작·설치를 턴키로 발주하던 기존의 방식에서 탈피해, 디자인과 제작·설치를 분리 발주했다는 점이 눈에 띈다. 디자인의 경우 디자인 전문업체에 용역을 맡겨 구체적인 실시설계까지 마련했다. 이렇게 디자인 용역을 별도로 실시한 것은 보다 전문화된 디자인으로 컨셉을 구체화하기 위해서였다. 또한 용역 단계에서 주민과 디자인을 조율하는 과정을 갖고 1차적인 공감대 형성을 유도했다.
이렇게 정해진 컨셉을 현장에서 최대한 살리기 위해 간판의 재질과 제작방식까지 구체적으로 정했다. 디자인과 제작이 분리될 경우 자칫 제작 단계에서 디자인 원안을 훼손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재질도 해안지방이라는 특성을 고려해 정했다. 공기 중의 염분으로 간판의 표면이 자칫 빨리 부식될 염려가 있어 주소재로 합성목재를 채택했으며, 금속을 사용하는 경우 칠의 내구성을 고려해 우레탄 소부도장을 처리토록 했다. 기존의 간판을 떼어냈을 때 드러나는 노후화된 벽면도 파사드 처리로 대응했다. 특히 새로 붙는 파사드가 건물과 조화를 이루도록 색상과 재질을 선택하는 데 있어서도 많은 신경을 썼다.
군은 이렇게 만들어진 용역보고서를 상위 지자체인 경상남도청에 보내 검토 및 자문을 요청했다. 황진찬 팀장은 “자체적인 판단을 떠나 도의 디자인 자문위원회를 거쳐 미흡한 점을 찾아보고 보완할 수 있었다”며 “보다 객관적인 검증을 거치기 위한 과정이었다”고 전했다. 특히 제작·설치 업체를 선정한 방식이 타 지자체와 크게 차별화돼있다. 사업을 추진하는 지자체가 공모나 수의계약 등 입찰의 형태로 사업자를 선정하는 기존의 방식을 버리고 주민 스스로가 업체를 선정하도록 했다. 1개나 소수의 업체가 많은 점포를 맡는 것보다 업체와 주민 간의 커뮤니케이션이나 일의 진행이 원활하고 간판 설치에 대한 보다 충분한 협의를 거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물론 간판의 획일성도 자연스럽게 방지할 수 있다.
군은 이밖에도 프랜차이즈형 간판에 대해서 고유의 디자인을 존중하는 등 다방면에서 합리적인 방식으로 사업에 접근했다. 남해군의 한 주민은 “이번 사업을 계기로 간판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됐다”며 “간판으로 거리의 미관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처음 느끼게 됐다”고 말했다. 사업을 추진하는 전과정에서 주민의 입장에 서서 합리적인 대안을 찾아가고 있는 남해군의 간판정비사업. 벌써부터 주민의 공감대로 이어지고 있고 인식의 전환이라는 더 큰 성과를 낳고 있는 가운데 1차 사업의 마무리 단계에 와있다.
“업체 선정은 주민의 자율에 맡겨”
차별화된 사업자 선정방식 ‘눈길’ 사업비는 5단계로 나눠 차등 지원
남해군의 이번 사업에서 가장 주목할만 한 것은 업체 선정 방식에 있다. 군은 간판 제작·설치 업체 선정을 직접 하지 않고 역으로 주민에게 선정의 권한을 이양했다. 업체 선정을 할 때 공모나 입찰을 통하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군은 주민이 스스로 원하는 업체를 결정할 수 있도록 발상을 전환했다.
주민이 스스로 선택한 업체를 통해야 간판을 설치 할 때 최대한 주민의 편의를 반영할 수 있고, 결과적으로 사후 만족도도 높아지기 때문에 취한 사업방식이다. 남해가 지방의 작은 소도시로 하나의 지역사회를 이루고 있다는 특성을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이를 위해 관내 옥외광고 업체 현황을 주민들에게 제공했다. 단, 정식으로 사업 등록을 하지 않은 무등록 업체는 업체선정 범위에서 제외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예산배분방식도 시설비 명목이 아닌 민간자본보조 형식을 취했다. 간판 설치 예산 전액을 지원하지 않고 주민의 자부담을 유도하는 한편, 사후관리도 주민이 스스로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시설비로 예산을 지원할 경우 결과적으로 간판이 지자체 소유가 되는데, 이 경우 군이 사업구간 내 교체된 다량의 간판에 대한 유지보수 등 사후관리를 해야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하지만 중도에 담당공무원이 바뀌거나 예산 지원의 단절 가능성 등이 있어 해당 간판을 지자체가 끝까지 관리할 수 있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부분이다.
이런 이유로 민간자본보조로 예산지원 방식으로 결정한 군은 보조 방식도 ‘5단계’ 방식으로 새롭게 신설했다. 간판의 규모가 점포마다 달라 제작·설치비에 차이가 생기기 때문에 차등적인 지원을 해야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이에따라 군은 간판 교체 지원액을 100만원, 150만원, 200만원, 250만원, 300만원 5단계로 나눴다.
간판 비용이 100만원 이상 150만원 미만일 경우 100만원을 군이 지원하고 나머지는 주민이 자부담하는 형식이다. 예를들어 간판 설치비가 230만원일 경우 200만원은 군이 지원하고 30만원은 자부담이 된다. 간판교체비 및 지원액의 최저가와 최고가는 디자인 용역 과정에서 실측 결과를 토대로 산정했다. 지원액을 5단계로 나눈 것은 비용을 간판 규모에 관계없이 동일한 %로 정하는 정률제에 비해 금액 부담에 유동성을 주기 위한 것.
정률제에 비해 주민들의 부담도 경감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군은 사업자 선정에서부터 사업비 지원에 이르기까지 주민의 편에 서서 차별화된 대안을 모색하고 실천해 간판정비사업의 새로운 지표를 제시하고 있다.
(미니인터뷰) 남해군 생태도시과 황진찬 도시디자인 팀장
간판은 사유재산… 주민 입장 최우선 고려 주민 스스로 간판개선 의지 보일 때 보람 느껴
-기존의 사업들과 많은 부분에서 차별화를 시도했는데. ▲기존의 사업들이 분명 문제점을 안고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개선되지 않은 채 답습되고 있다. 그런 문제점들을 최소화하고 최대한 주민들의 공감 속에서 사업을 진행하는데 최우선 주력했다. 결과적으로 관의 입장에서는 민원을 최소화할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사업 추진 과정을 보면 디테일한 부분까지 세심하게 고려한 흔적이 역력한데, 그런 아이디어는 어디로부터 나왔나. ▲나름대로 광고물 관련 업무를 20년 가까이 하다보니 노하우가 생긴 것 같다. 간판정비사업 추진 실적도 가지고 있는데, 시행착오도 겪었다. 결국 고민을 하면 흔적들이 남게 되는 것 같다.
-주민의 공감대를 살 수 있었던 노하우를 공개한다면. ▲주민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된다. 사실 간판을 공공성이라는 잣대로 접근하고 있긴 하지만 엄연히 사유재산이라고 생각한다. 근본적으로 간판이 사유재산의 성격이 강하다는 인식을 가지고 사업을 추진했다. 그러다보니 ‘민간자본이전 5단계’ 라는 예산지원 방식도 나왔고, 또 제작·설치 업체도 주민의 권한으로 이양했다. 주민이 참여할 수 있는 장치들을 요소요소에 넣은 셈이다. 사업설명회도 군청에서 하지 않고 면사무소에서 열었다. 아무래도 주민들이 자주 이용하고 접근성이 용이한 곳이 군청보다는 면사무소이기 때문이다. 주민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어떤 게 참여도를 높일 수 있는지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이 자치단체장이나 담당부서장의 지원없이는 절대로 이뤄질 수 없다.
-이번 사업의 큰 성과라고 생각되는 것은. ▲주민들이 스스로 간판에 대한 애착과 관심을 갖고 자율적으로 사업에 참여하기를 희망하는 등 인식의 변화가 일어난 것이 큰 성과다. 사업에 불응해 이번 사업에 참여하지 않은 점포들의 자발적인 간판 교체 요구가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