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가고자 하는 목적지를 찾기 위해 흔히 간판을 따라간다. 이렇게 간판은 1차적으로 알림과 표시의 기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런 알림과 표시라는 기능적 측면 이외에도 간판을 통해 더욱 뜻깊은 의미들을 찾아볼 수 있다. 특히 간판은 한 시대를 말해주는 역사적 척도가 되기도 한다. 간판을 통해 드러나는 업종을 통해 그 시대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고, 디자인이나 표현기법 등을 통해서 그 시대의 문화코드도 읽을 수 있다. 간판은 역사의 산증인이자 거울이다. 이같은 간판의 의미를 되새기고, 간판을 통해 근현대사를 들여다보는 간판 전시회가 열렸다. 근현대디자인박물관은 개관 4주년을 맞아 ‘간판 역사 100년 전-간판, 눈뜨다’ 전시회를 열었다. 오랫동안 박물관이 소장해온 실물 간판들이 시대별 사료와 함께 공개됐다. <출처 : 근현대디자인박물관>
한국 간판의 원형과 변천사
한국 간판의 시초는 술과 주막이 등장했던 삼국시대 또는 천하대장군(이정표 기능)이 생겨난 고려시대로 추정된다. 문헌상의 기록으로 고려도경 제 3권 방시(坊市)에 고려개경의 시전(시장)에 대한 기록에서 찾아볼 수 있다. 광화문에서 남쪽 대로를 따라 행랑 건물로 조성되어 있어 이러한 상업용 건물에 상호를 나타내는 방(榜)이 방문에 붙어 있었다는 기록이 그것이다. 방의 사전적 의미는 ‘걸다, 게시하다’는 의미로 오늘날 간판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초기 조선시대에는 일종의 주렴에 해당하는 포렴을 출입문에 드리워 주막을 표시하였고, 또 추녀 끝에 등롱을 매달고 거기에 ‘주(酒)’자를 써넣어 간판을 대신하였다. 즉, 주막이나 객주집 문 앞에 기둥을 세워 그 위에 남포등을 고정시킨 장명등을 설치하여 거기에 <주>자나 옥호를 써넣고, 밤이면 불을 켜서 영업용 간판으로 삼았다. 일제강점기로 접어들면서 일본 간판 문화가 이입되었는데, ‘간판’이라는 용어부터 시작해서 다양한 형태의 간판이 들어왔다. 기관, 단체는 물론 상점, 회사 등이 붓글씨로 된 입간판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큰 간판의 기원 역시 일제시대로부터 시작된다. 조선말기 상점은 주로 간판을 걸지 않았는데, 이것은 자신이 파는 물건이 그대로 간판이 되었고, 또 시장을 통해서 물물교환을 하던 시기의 특성이기도 하다. 그 후 1910년대에 서울 번화가나 각 지역 본전통에서 급격히 늘어난 상점들의 간판은 크기가 상점에 비해 크고 과시적이다. 1920년대부터 일본을 통하여 네온사인이 등장하였으나 규모도 적고 색채도 단조로운 것이었으며 널리 보급되지는 못했다. 입간판은 1930년대부터 널리 보급되었다. 광복 이후 표현양식에 많은 시도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정부정책의 일환으로 한글전용 사용운동을 펼치면서, ‘일본식간판 일소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1960년대 산업화와 도시팽창을 거치면서 1967년에는 네온사인 규제 해제 후 네온탑과 옥상간판이 성행하였고, 1970년대에는 강철 간판들이 플라스틱 재료로 대체되기 시작하였다. 물론 약국, 병원이나 큰 가게들은 이미 아크릴 간판이 걸려 있었지만 작은 구멍가게도 플라스틱 재료를 쓴 것이다. 간판의 틀은 여전히 나무였지만 비닐을 씌우고 그 위에 글씨가 볼록하게 튀어 나오도록 붙여기지도 했다. IT산업의 발달과 함께 간판 발전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 조명 관련 산업의 발전으로 1988년 올림픽 이후 LED조명을 사용한 간판이나 스탠드형 모니터 간판 등이 나타났다. 2000년대에 들어서는 월드컵을 치루며 대형빌보드 간판과 전광판 간판도 새롭게 선보이며 최첨단 간판이 물결을 이루는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근대 간판디자인의 발전과 역사>
초기 간판의 모습
음식점 간판, 1910년경, 엽서
경성은행 앞 거리의 모습, 1920년경, 엽서
광복이전(1900년대 초~1945년)의 간판디자인 개화기에는 간판이라는 용어로부터 시작해서 다양한 형태의 간판이 들어왔다. 기관, 단체는 물론 상점, 회사 등이 붓글씨로 된 입간판을 사용하기 시작하였고, 곳곳에 ‘여인숙’이라는 세로로 된 간판이 달필의 글씨로 걸려있는 것을 흔히 볼 수 있었다. 1910년대에 접어들어 서울 번화가나 부산, 대전 등지의 주요거리에서는 큰 크기의 간판을 볼 수 있으며 입간판으로 사용되던 숲, 담배, 연탄, 석유, 건전지, 우유 등의 귀한 법랑간판도 볼 수 있다. 광복 이전의 법랑간판은 일어와 한자, 한글을 병행(또는 앞뒷면) 표기하고, 눈에 띄기 쉽도록 붉은색, 노란색, 파란색 등의 원색을 사용했던 점이 이색적이다.
일본어와 한글을 병기해 디자인된 나시요나루 건전지 간판, 1920년대, 법랑
1920년대 법랑으로 만들어진 담배간판.
런던표 쉘 석유광고용 간판으로서 조개모양을 한 특이한 간판이다. 영국의 쉘석유회사에서 생산하는 석유를 공급하는 대리점에 배포한 간판으로서 미국의 텍사코 T 회사의 석유제품과 경쟁을 벌였던 회사의 간판이다. 1920년대, 법랑.
미국 텍사코 별표 석유광고용 대리점 간판으로서 한쪽 면을 빼서 벽에 붙일 수 있게 제작되었다. 앞면은 한자와 일어로 되어 있으나 뒷면은 한글을 넣어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게 하였다. 1920년대, 법랑간판.
1920년대, 법랑간판.
광복이후 (1945년~2000년)의 간판디자인
광복 직후에는 간판의 표현양식에 많은 시도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정부정책의 일환으로 한글전용 사용운동을 펼치면서, ‘일본식간판 일소운동’을 펼치기도 했다. 1960년대 이후 산업화와 도시팽창을 거치면서 법랑, 철재, 목재 등의 다양한 재질이 사용되었으며, 1970년대 이후에는 이발소, 약국, 병원 등에서 플라스틱 재질이 등장하였다. 디자인이 발전과 함께 내용면에서 딱딱함을 벗고 자유로운 글씨체와 다양한 모델, 캐릭터, 컬러 등이 등장하였다. 근대의 시대상과 디자인 발전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간판은 이제 단순한 상점 홍보를 벗어나 도시 공공디자인의 중요한 아이콘으로 자리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