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중 기자 | 253호 | 2012-09-27 | 조회수 3,3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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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과 자연, 문화가 공존하는 책의 메카 모던한 건축과 절재된 사인이 보여주는 새로운 도시 디자인
독특한 디자인의 북시티 인포메이션 센터
코르텐강으로 만들어진 대형 입구 사인.
모든 건물에 공통적으로 세워져 있는 갈색의 지주사인. 화려하지는 않지만 굵고 단순한 고딕체의 문구가 시인성을 높인다.
책꽂이에 꽂혀 있는 책의 모습을 형상화한 유도 안내사인들.
회색 패널에 아크릴 면발광 채널을 부착한 소형 입구사인. 북시티에 걸맞게 책 모양의 조명을 부착해 재미를 더했다.
각 길을 표시하는 표지사인도 특이하다. 마치 풀이 솟아난 듯 단아한 모습인데, 밤이 되면 색다른 반전을 보여준다.
경기 파주시 교하읍 문발리 일대 47만여평에 건설된 파주출판도시는 책의 생산, 유통, 소비가 한곳에서 이뤄지는 출판문화의 자족도시다. ‘북시티(Book City)’라는 예명으로 불리기도 한다. 출판사를 비롯해 인쇄·제본·지류·유통 회사를 비롯해 디자인사무실·저작권중개업체 등 출판과 관련된 모든 사업체들이 이곳에 모여서 도시를 만들었다. 그런데, 사실 이곳은 출판도시라는 타이틀 보다 오히려 철저한 계획 하에 조성된 미래형 건축도시이자 문화도시라는 점에서 더욱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출판인들의 ‘위대한 계약’이 위대한 도시 만들어 이 도시에 참여하는 출판인들은 지난 2000년 건축가들과 일명 ‘위대한 계약서’라는 이름의 문서에 서명했다. 위대한 계약서에는 입주사와 건축가들이 각자가 갖고 있는 건축에의 주관적 사고를 뒤로하고 이 땅에 건강한 출판문화와 건축문화를 세움으로써, 도시의 성공적인 완성을 향해 최선을 다할 것에 대한 다짐이 담겨 있다. 이 위대한 계약을 기본으로 건축코디네이터 민현식, 승효상 등 5명의 건축가가 북시티 건축지침을 만들었으며, 이후 40여명의 국내외 건축가가 참여해 북시티가 조성됐다. 북시티 건축 지침의 기본은 도시 내 사옥 등 모든 건축은 회사별로 추진하되 도시 전체의 조형미 등을 위해 공동 노력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이에 따라 건축시 다양함을 추구하되 건물의 재질, 형태, 높이, 색깔 등에 관한 엄격한 공통의 기준을 적용키로 했다. 이런 공통의 기준과 도시 디자인을 완성시키기 위해서 건축코디네이터 민현식-승효상의 지휘하래 국내외 유명 건축가 마흔명이 참가했다. 멀리 심학산이 보일 만큼, 많은 건축물은 4층을 넘지 않도록 설계됐다. 그리고 건물의 외벽과 ‘ㄱ’자로 통일된 가로등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주변 환경과 어우러지는 내후성 강판(코르텐강)을 사용했다. 코르텐강은 자연스럽게 슨 녹이 마치 도료처럼 코팅되는 소재로 반영구재이며 페인트칠을 필요로 하지 않는 소재다. 이런 새로운 도시건축의 개념과 참여자들의 의지가 단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도시를 가로지르는 3㎞의 샛강을 보존한 것. 부지감소 등 약 2백억원의 손실을 무릅쓰고 샛강을 살려 강변의 갈대숲을 보존했다. 물론 물속엔 각종 생물들이 숨을 쉬고, 철따라 재두루미 등 철새들이 모여든다. 그 결과 북시티는 출판물의 생산과 유통이라는 산업적 측면 이외에도 책이라는 테마를 기반으로 한 다양한 건축·관광문화를 조성함으로서, 말 그대로 국내 출판문화의 메카로서 자리 잡았다.
▲건축·자연을 배려한 절제되고 통일된 사인 최정상급 건축가들이 저마다의 실력을 발휘한 북시티의 건물들은 저마다 강한 개성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건물들은 서로를 자연스럽게 포용하는데, 여기에는 건물마다 달고 있는 간판들이 큰 몫을 하고 있다. 북시티의 모든 건물들은 공통적으로 갈색의 지주 간판과 입구 상단에 달린 작은 회색 간판, 이 두개의 간판만을 가지고 있다. 간판의 형태와 서체마저 같다. 단지 상호만 다를 뿐이다. 이 간판들은 다양한 개성을 지닌 건물들이 모인 대규모 단지를 유기적으로 연결시키며, 통일성을 부여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또 규격화된 디자인은 제작과 유지 관리의 측면에서 편리성을 줄 뿐 아니라, 가장 많이 쓰는 고딕체를 통해 가독성을 높였다. 이곳의 사인 및 공공시설물의 디자인을 담당한 산업디자인업체 케이디에이는 광고물이 튀지 않고 자연과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절제된 단아함을 부여하는데 주력했다고 한다. 화려함을 배제하고 되도록 작게, 무채색으로 만들어진 간판을 통해 건물과 자연, 그리고 사람이 공존하는 북시티의 디자인 철학을 완성시키는 것이 그들의 목표였다고. 실제 이곳의 간판들은 푸른 나무와 함께, 또는 꽃들의 사이에 서 있는 경우도 잦은데, 그 모습이 매우 자연스럽다. 간판마저 자연의 일부인양 함께 하는 모습은 이 곳 북시티만의 매력이다.
▲산업단지를 넘어 문화와 자연이 공존하는 생태도시로 북시티는 그 본질적 특성만을 비춰볼 때 국내의 수많은 산업단지 중 하나다. 실제 북시티를 개발하는 법적 근거 역시 ‘산업입지 및 그 개발에 관한 법률(약칭 산입법)’과 ‘공업배치 및 공장설립에 관한 법률(약칭 공배법)’에 있다. 하지만 국내의 수많은 산업단지 속에서, 북시티의 지니는 의미는 아주 특별하다. 당초 산업단지가 불러올 수 있는 건조하고 무기력한 모습을 극복하기 위해 대안을 마련코자 이 도시가 출발했기 때문이다. 기계화된 산업단지에서 ‘단지’라는 의미를 떼고 사람들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도시’의 개념을 덧입힌 북시티는 이제 새로운 형태의 산업단지이자 관광도시로서의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