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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19 14:00

무너져 가는 전통 시장 ‘공공미술’이 살린다

  • 신한중 기자 | 254호 | 2012-10-19 | 조회수 4,432 Copy Link 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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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냄비 등 이색적인 소재를 활용한 대구 방천시장의 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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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스쳐 지나갔던 차가운 콘크리트가 김광석의 삶과 음악으로 인해 다시 생명을 얻었다. 대구 방천시장에 조성된 ‘김광석 다시 그리 길’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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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못골시장의 재미있는 간판들. 독특한 간판의 모습이 입소문을 타며, 여러 차례 방송에 소개될 정도로 시민들에게 많은 인기를 모으고 있다.




가난한 예술가들과 시장통 상인들의 색다른 콜라보레이션
복고풍 간판·추억 담긴 벽화 등 향수 부르는 문화 마케팅으로 관광명소 부상

인터넷 쇼핑몰과 대형마트에 밀려 고사 일로에 놓인 전통시장이 되살아나고 있다. 낡고 지친 시장에 ‘문화의 바람’이 불면서다.
칙칙하기 그지없었던 상가 벽면에는 아릿한 감성의 벽화가 피어나고, 이름을 알리는데만 급급했던 간판들도 재미와 멋을 담아내기 시작했다. 이제 우리의 전통시장은 낡은 상업 공간이 아니라, 문화의 장으로서 새로운 꽃을 피워내기 시작했다.

▲공공미술이 만들어 내는 디지털 시대의 시장통 문화
가파른 침체일로를 걷고 있던 전통시장이 이 같은 극적 변화를 맞이한 데는 ‘공공미술’의 힘이다.
시장과 미술, 언뜻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 궁합이지만, 창작을 위한 마땅한 장소를 모색하지 못한 공공미술과 기업주도형 상권에 밀려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는 전통시장은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다.
둘 다 대중을 타깃으로 하면서도 화려한 이종 문화들에 밀려 시민들의 관심과 주도권을 이끌어내는데 실패했다는 점이다. 이에 서로는 각자의 취약점을 보완하고 장점을 공유하는 공생관계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안양 석수시장, 광주 대인시장, 강릉 주문진시장, 서울 수유시장, 대구 방천시장 등 여러 전통시장에서 공공미술이 접목되는 프로젝트가 진행됐고, 그 결과 수시로 매스컴까지 방문할 만큼 새로운 문화장소로 떠올랐다.  이제 공공미술은 전통시장의 활성화에 결정적 역할을 하는 필수요소로 부각되고 있으며, 전통시장은 공공미술이 기지개를 펼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대안 공간으로 떠올랐다.

▲지역 특색과 시장의 정취 살리는데 주력 
전통시장의 공공미술 프로젝트는 문화관광부의 전통시장 지원 사업을 통해 이뤄졌다.
문화부는 1994년부터 공공시설 증진 명목으로 주차장, 아케이드, 화장실 등 시설 개선 중심의 프로젝트에 연간 1조원에 달하는 막대한 예산을 투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다 할 성과를 도출해 내지 못하자 기존에 주력했던 시설 개선 사업에서 벗어나, 시장과 문화콘텐츠의 접목이라는 새 방향을 모색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공공미술 프로젝트는 지난 2008년 2개 시장을 시작으로 2009년 4개 시장, 2010년 10개 시장, 2011년 3개 시장 등 총 20여개 시장에서 진행됐다. 이른바 ‘문전성시 프로젝트(문화를 통해 전통시장 활성화 사업)’다.
공공미술을 통해 되살아난 시장들은 저마다 자신만의 표정을 지니고 있다. 시설개선을 통한 깨끗함, 단정함을 추구했던 이전의 시장 현대화 사업의 결과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지역과 시장 본연의 정취를 부각시키는데 역점을 둔 까닭이다.
좁은 거리, 지저분하고 남루한 건물 자체를 변화시키기 보다는 그 자체를 하나의 문화상품이자 미술도구로 이용했다.
한우 시장에서는 한우를 모티브로 한 다양한 설치미술이 구축됐으며, 작고한 가객 김광석의 고향인 대구 방천시장은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이라는 이름으로 시장길 가득히 다양한 벽화를 그려냈다. 또한 수원의 못골시장은 상점마다의 이야기를 다룬 독특한 간판을 내걸음으로써 이색적이고 차별화된 분위기를 구축했다.
시장들은 저마다 좁은 시장길을 효과적으로 활용해 이뤄진 미술작품으로 시장을 찾은 이들에게 한층 풍성한 추억을 안겨준다.

▲전통시장 개선사업과 간판정비사업, 그 근본적 차이
전통시장의 공공미술 프로젝트는 비슷한 시기에 시작된 간판정비사업과도 비교된다.
아직 전통시장의 변화는 갈 길이 멀다.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통해 새 바람이 불기는 했으나 어쩌면 그저 눈요기 거리로만 남을 수도 있고, 또 나무 간판과 벽화는 관리가 쉽지 않기 때문에 언젠가는 더 큰 흉물로 전락할 수도 있다.
반대로 간판정비사업은 대로변 상가들의 모습을 자로 잰 듯 깔끔하게 정비해 냈다.
사용된 소재도 오랫동안 사용할 수 있는 채널사인과 LED광원이기에 이 모습은 꽤나 길게 유지될 것이다.
이 두 사업은 거리 환경을 새롭게 정비한다는 점에서 일견 맥을 같이하지만, 그 형태와 방법은 아주 다르고, 그만큼 장단점도 극명하다. 그래서 어느 쪽이 더 낫다를 가늠할 수는 없다.
하지만 개인적인 소견을 묻는다면 시장의 공공미술 사업에 손을 들어 주고 싶다.
이유는 간단하다. ‘거리’가 중심이 된 간판정비사업과 달리, 공공미술 사업은 ‘사람’을 우선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간판정비사업의 목적은 깨끗한 거리를 만든다는데 있다. 하지만 그것이 누구를, 무엇을 위한 깨끗한 거리인지는 주체가 불분명하다. 더 편리해진 이도 있지만 불편해진 사람도 있으며, 이득을 취한 곳도 있지만 이 사업으로 인해 쓴 눈물을 흘린 이들도 많다.  
그러나 공공미술 사업은 모든 가치가 사람으로 귀결된다. 작업에 참여한 가난한 미술가들과 그 거리의 상인들, 또 이를 찾는 관광객들까지 모든 사람들의 행복이 우선순위다.
비록 언젠가는 이 미술들이 흉물로 전락할 지라도, 그 과정과 결과는 모두 사람을 향해 있다.
취할 것은 취하고 버릴 건 버리겠다는 경제적 논리보다, 다 함께 만들어 가자는 생각이 만든 풍요로운 성장. 포기하지 않고 천천히 하나하나 만들어갈 마음만 있다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한 축이 될 수 있을 것은 분명해 보인다.


신한중 기자 [ⓒ SP투데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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