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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23 17:17

간판마다 똑같은 색상에 글꼴 중식당 체인점?

  • 269호 | 2013-05-23 | 조회수 1,598 Copy Link 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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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31일 축제를 앞두고 부산 동구 초량동 차이나타운 특구가 막바지 준비로 분주하다. 보도 800m가 새롭게 포장됐고 업소마다 낡은 간판 교체 작업이 한창이다. 간판 교체에 동의만 하면 동구청이 무상으로 새 간판을 설치해주고 있다.

하지만 구청 주도로 도입된 '중국풍 간판'이 업소명만 다를 뿐 세부 디자인까지 똑같아 시각적으로 강한 거부감을 주고 있다. 한 거리에 위치한 수십 개 업소가 사실상 같은 간판을 달고 있어, 거리의 활기를 떨어뜨리고 있다.

동구 관할 차이나타운 특구에서 영업 중인 업소는 110곳. 23일 현재 간판 교체에 동의한 88개 업소 중 60개 업소에 '중국풍 간판'이 내걸렸다. 업주가 고를 수 있는 선택지는 붉은색과 검은색, 간판 색상 단 2가지뿐이다. 디자인이야 중국풍을 살렸다지만 공장에서 찍어 나온 듯 똑같은 간판 때문에 업소별 개성이 사라졌다.

동구 초량동 차이나타운
구청, 새 간판 무상 설치
중국풍 살렸다고 하지만
획일적이어서 개성 죽어

벌써부터 '간판 바탕이나 디자인은 통일하더라도 개성 넘치던 옛 간판의 글꼴은 살렸어야 하지 않았느냐'는 불만들이 새어 나오고 있다. 차이나타운에서 필방을 운영 중인 김태완 대표는 "붓글씨에 저작권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업주와 간단한 상담만 거쳤어도 이처럼 획일화된 간판의 거리가 조성되는 않았을 것"이라며 "간판이라는 게 한 번 설치되면 못해도 10년은 갈 텐데 첫 단추를 잘못 끼웠다"고 말했다. 당장 자비 부담 없이 새 간판을 설치하게 된 업주들의 반응은 일단은 호의적이다. 이번 주 간판을 교체했다는 한 중식당 업주는 "이전 간판은 낡아서 보기가 흉했는데 공짜로 깔끔하고 조명까지 들어오는 새 간판을 얻어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동구청도 지난 1년간 주민과 건축가, 교수 등으로 자문단을 구성해 고심 끝에 내린 결론이라고 주장했다. 동구청 관계자는 "전문가 그룹에서 '중식당마다 따로 노는 글꼴이 천박해 거리가 죽어 보인다'는 의견이 많았다"며 "개별 업소만 볼 게 아니라 차이나타운 특구 전체를 봤을 때 통일성을 갖추면 손님을 더 끌어들일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하지만 하나같이 프린터로 찍어낸 듯 딱딱한 해서체 일색의 간판 때문에 흡사 프랜차이즈 체인점의 거리로 변한 듯한 차이나타운의 풍경은 낯설기 그지없다. 오히려 자비로 간판을 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교체를 사양한 몇몇 업소만 도드라져 보일 지경.

동의대 국제관광경영학과 김현지 교수는 "낡은 간판이나 건물도 그 거리의 문화를 창조하는 요소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에 구청이 디자인 철학을 갖고 피해야 하는 색상이나 도안 등 큰 틀의 가이드라인만 제시하는 식으로 간판교체 작업을 진행했어야 하는 데 아쉽다"며 "가게의 얼굴을 다 똑같이 만들어놓고 국제적인 축제를 지향한다면서 한자를 모르는 외국인 손님은 어떤 식으로 맞으려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부산일보 <2013.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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