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에서는 현대차의 파란 사인을 찾아 볼 수 없다. 대신 입구에만 영문으로 적힌 백색 아크릴면발광사인을 부착했다.
스튜디오 들어서면 전기아연도금강판으로 만들어진 은색강관이 마치 건물의 혈관처럼 복잡하게 이어져 있다.
1층에 세워진 미디어캔버스. 런던의 예술가그룹 UVA의 ‘The Rhythm of a journey(여행의 리듬)’가 상영되고 있다.
강철 건물 속에서 오롯이 아날로그적 감성을 뿌리는 네온 층간 안내사인.
실제 차량을 기중기로 들어 윈도에 전시했다. 밖에서 보면 차체의 지붕이 보이는 독특하면서도 세련된 전시 기법이다.
2층에 위치한 ‘오토라이브러리’, 자그마한 도서관이 있다. 쉽게 접할 수 없는 자동차 관련 전문서적 2,500권이 준비돼 있다. 더 재미있는 것은 세계적인 축구선수 카카와 카시야스가 쓰던 축구화와 장갑도 전시돼 있다는 점. 뭐지...?
‘마케팅의 기어를 올려라’… 진화된 플래그십스토어
‘쇠에서 자동차, 다시 쇠로’ 산업의 순환을 디자인으로 풀어 네온과 쇠파이프, 이질적 소재 활용한 ‘사인’의 색다른 변주
서울의 도산대로 사거리. 유명 수입차 매장들이 저마다 커다란 엠블렘을 과시하고 있는 이곳에 현대자동차의 플래그십스토어 ‘현대모터스튜디오 서울’이 문을 열었다. 원래 이곳은 일본 자동차 브랜드 인피니티 매장이 있던 곳으로, 현대차는 6층 건물을 완전히 리모델링해 새 마케팅 거점을 세웠다. 현대차에 따르면 현대모터스튜디오는 자동차 기업의 정체성을 담은 ‘모터(Motor)’와 창조· 실험의 공간의 상징인 ‘스튜디오(Studio)’를 합해 ‘새로운 자동차 문화를 창조하고 경험하는 공간’이라는 의미를 담았다. 특히 이곳은 판매가 아닌 ‘소통의 공간’을 표방한다. 영업적 매장이 아니라, 브랜드 방향성이 반영된 예술작품, 현대차만의 콘텐츠, 자동차 전문 도서관, 새로운 고객 응대 서비스 등 브랜드에 대한 ‘직관적 경험’을 할 수 있는 공간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현대모터스튜디오는 새로운 개념의 플래그십 스토어”라며 “현대차가 소비자와 어떤 공감대를 이뤄야 하는가 묻고 대답하는 공간, 자신만의 답을 제시하는 게 아니라 서로에게 ‘왜?’ 라고 묻는 공간을 만들어 내는 게 목표였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이 스튜디오 내외부에는 현대차 하면 생각나는 파란색 로고사인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그저 영문으로 깔끔하게 쓴 ‘현대모터스튜디오’ 사인만이 출입구에 달려있을 뿐. 들어서면서부터 계약서를 써야 할 것 같은 기존 매장에 대한 선입견 없이, 누구나 마음 편하게 방문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란다. 주위에 커다란 엠블럼을 내걸고 영업에만 몰두하고 있는 수입차 매장들과는 사뭇 다른 풍경. 현대차가 마케팅 전략의 기어를 하나 윗단계로 올렸음을 이 스튜디오를 통해 보여준다.
▲간판 대신 손님 반기는 미디어 캔버스 스튜디오 안으로 들어 가보자. 근데 주차는 모두 발렛파킹, 게다가 무료다! 현대차가 기어를 두단계... 크흠~. 복색을 통일한 젊은 직원들의 인사를 뒤로, 안으로 들어서자 건물 2층 높이의 커다란 미디어 캔버스가 눈에 들어온다. 55인치 LFD 패널 40개로 이뤄진 이 영상스크린에서는 런던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예술가그룹 ‘유나이티드 비주얼 아티스트(UVA)’의 ‘The Rhythm of a journey(여행의 리듬)’가 상영된다. 차 옆으로 지나가는 풍경들을 팝아트 기법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다들 자동차를 운전할 때는 앞만 보고 가잖아요. UVA는 이 점에 착안해 차창을 열고 옆 모습을 찍었어요. 그냥 지나쳐지는 풍경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되새겨보자는 의도입니다.” 사진을 찍고 있는 동안 다가온 ‘구루’의 설명이다. 이곳에서 큐레이터처럼 안내를 도와주는 이들을 ‘구루(Guru)’라고 부른다. 실버와 블루 코드의 유니폼을 입고 있는 이 선남선녀들은 전직 항공사 승무원, 정비 기사, 카레이서, 리포터 등 다양한 경력을 가진 자동차 문화 전문가들이다. 슬쩍 물어보니 스튜디오 운영에 앞서 넉 달간 응대 요령을 교육받았다고 한다. ▲인테리어부터 사인까지 ‘쇠’로 복색 통일 이 건물의 디자인은 다양한 재미를 숨기고 있지만, 가장 큰 특징은 ‘쇠’다. 건물 안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보이는 하나로 통일된 쇠의 물결이 펼쳐진다. 출입문, 천정, 벽, 진열대부터 사인과 조명에 이르기까지 모든 디자인 코드가 하나의 ‘쇠’로 복색을 통일했다. 특히 천정부터 벽까지 계단까지 건물의 혈관처럼 이어져 흐르는 은색 파이프들의 위용은 대단히 인상적이다. 양철 같아 보이면서도, 부드럽고 단단한 이 소재는 전기 아연도금강판으로 현대제철에서 생산된 철을 현대하이스코에서 가공 처리한 제품이다. 건물을 디자인한 서아키텍스 측에 따르면 이 공간의 디자인의 콘셉트는 ‘0 to 0’. 무에서 왔다가 무로 돌아가는, 철에서 자동차를 만들어지고, 자동차가 다시 고철로 순환되는 세계다. 이를 표현하기 위해 건물 전체를 은색 강관으로 휘감고, 파이프의 흐름이 전시된 자동차로 이어지게 구성했다. 모든 전기선도 강관 속으로 집어넣어 외부에 드러나지 않게 했다. 건물 곳곳에서 관람객들을 안내하는 사인물들도 이 흐름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벽면의 파이프가 툭 튀어나온 듯한 표지판, 이동식 안내판들도 같은 소재를 사용해 이 흐름 속에서 튀지 않도록 표현했다.
▲독특한 조명 시스템과 네온관으로 포인트 메탈로 뒤덮인 이곳. 자칫 차가워 보일 수 있는 이 공간을 살리는 것은 조명들이다. 천정의 파이프에 불규칙적으로 매달린 원통형의 조명들은 스튜디오에 한층 따뜻하고 세련된 공기를 불어 넣는다. 화장실이나 인포메이션의 안내판 등 조명이 필요한 사인물도 천정의 조명과 같은 형태로 제작해 모든 조명기구간의 통일감을 높인 것도 재미있다. 이곳의 또 다른 포인트는 네온. 요즘에는 거의 쓰이지 않는 네온을 포인트로서 적극 활용했다.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는 엘리베이터와 계단의 층간 안내사인을 네온으로 만든 것. 차가운 메탈 건물 속에서 오롯이 빛나는 네온의 모습은, 기계적 느낌이 강조된 스튜디오에 아날로그적 감성을 담뿍 채워 넣는다. 서아키텍스의 서을호 대표는 “새로운 디자인을 시도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는 것, 즉 마인드를 디자인하는 일”이라며 “건물 전체는 물론 계단 표시 같은 사인이나 조명까지 아주 세밀하게 디자인함으로써 진정한 디자인의 가치를 보여주고자 했다”고 밝혔다. ▲‘간판 보다 자동차’… 실제 자동차로 윈도 전시 밖에서 건물을 봤을 때, 3~5층 3개 층 창문에는 아무 그래픽도 없는 윈도 너머로 총 9대의 자동차가 90도(가운데 한 개만 45도)로 번쩍 올려다 붙여져 있다. 모형인 듯 했는데, 실제 자동차다. 이 연출을 위해 3t을 견딜 수 있는 기중기 9대를 윈도 뒤편에 설치했다고. 디자이너가 자동차를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는지, 그 고민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려 했다는 게 서아키텍스 측의 설명. 아무도 신경 안쓰는 자동차 밑바닥까지 보여줌으로써 제품의 완성도를 알리기 위해서였단다. ‘소통’을 콘셉트로 하는 공간으로서 아주 적절한 판단. 실제 스튜디오를 찾은 관람객들도 서있는 차보다 누워있는 자동차에 더 많은 시선을 보냈다. 그리고 또 한가지. 이 자동차들 덕분에 흔한 간판, 윈도 그래픽 하나 달리지 않았음에도, 자동차 전시장임을 자연스럽게 알아볼 수 있다. 한편 이 독특한 공간을 연출한 서아키텍스는 국내의 유명 건축 디자인업체로서, 앞서 현대자동차 인재개발원 마북캠퍼스를 디자인해 ‘2013 레드닷 디자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