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형사인에서 에폭시 채널사인으로 변화한 ‘위드미’ 편의점. 사진은 서울 서초구 반포동 ‘위드미’ 편의점 간판교체 모습.
장기불황·재정긴축에 대량 일괄 교체→소량 단계별 교체로 지역별·거점별 트렌드 맞춰 조금씩… 기업간판 세분화 양상 간판업계, 차별화된 경쟁력 갖추고 유연한 대응자세 필요
기업간판이 변화의 전기를 맞고 있다. 기업의 CI나 상호, 브랜드 아이콘이 교체될 경우 전국적으로 일제히 간판을 바꾸던 교체 양태가 지역별, 거점별, 단계별로 2~3년에 걸쳐 점진적으로 교체하는 방식으로 변하고 있는 것. 또한 3~4년에 한 번 교체됐던 기업들의 CI가 이제는 6~7년에 한 번 교체될까 말까 하는 등 기업의 브랜드나 이미지 교체 소식이 뜸해지면서 간판이 바뀌는 빈도도 현격하게 줄고 있다. 여기에 프랜차이즈나 편의점 간판의 트렌드를 선도해 왔던 성형 채널사인이 지고, 일반 에폭시 및 아크릴 채널사인이 떠오르는 것도 주목할 만한 변화다. 성형 채널사인은 금형을 개발하는 비용이 높기는 하지만 일단 한 번 금형을 개발하면 다량의 사인물을 생산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때문에 대량 수요가 요구되는 간판 제작시에는 개당 단가를 낮출 수 있어 대기업 간판이나 프랜차이즈 간판으로 선호돼 왔다. 그러나 최근의 기업간판 트렌드를 살펴보면 성형 채널사인이 급속하게 줄고 아크릴 채널사인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을 쉽사리 찾아볼 수 있다. 한 간판 제작업체 관계자는 “기업들이 예전처럼 많은 물량을 일괄 교체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별, 시기별로 나눠 소량으로 교체하고 있으며 그에따라 대량생산에 유리한 성형 채널사인이 줄어들고 있다”며 “높은 비용을 들여가며, 일괄적으로 찍어내는 방식보다는 그 때 그 때마다 특성에 맞게 일반 채널사인으로 교체 방식을 바꾸고 있다”고 밝혔다. 이같은 변화의 가장 큰 요인은 바로 장기불황의 여파. 여기에 정부의 정책기조에 따른 눈치보기 영향 등으로 홍보·마케팅 비용을 대폭 줄이면서 기업들이 간판을 비롯한 시설물 개선에 예산을 긴축 집행하고 있다. 또한 이미 금융권, 편의점, 유통, 전자, 정유, 통신, 프랜차이즈 등 대규모 물량이 수반되는 업종의 점포들이 전국적으로 포화상태에 있다는 점도 기업간판의 교체 트렌드를 변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편의점 등 기업 간판을 주로 제작해 왔던 한 업계 관계자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트렌드는 바뀌는 것이고 기업들은 이같은 트렌드에 맞춰 정해진 예산범위에서 거점별로 조금씩 간판을 교체하고 있다”면서 “아직 기업 전체가 그렇지는 않고 하나은행, 우리은행, 국민은행, 엘지전자, 하이마트 등 몇 군데만이 트렌드에 맞게 부분적으로 교체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거점별로 지역특성에 맞춰 사인물을 교체하는 대표적인 곳 가운데 하나가 하나은행이다. 하나은행은 명동점, 무역센터점 등을 대상으로 독특한 소재와 조명기법을 적용해 트렌드에 맞는 간판을 제작했다. 은행권 간판을 주로 제작하는 한 제작사 관계자는 “하나은행의 경우 연간 예산 내에서 거점별로 간판을 교체하고 있다”면서 “그 지역 트렌드에 맞추기 위해 기업 고유의 CI를 훼손하지 않고, 소재를 조금 변화시키거나 건물 전체의 파사드를 활용해 디자인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밝혔다. 경쟁적으로 점포를 늘려왔던 프랜차이즈들의 매장 리뉴얼에 대한 법적인 제동이 걸린 것도 거점별 소량 교체라고 하는 트렌드 변화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일부 대형 프랜차이즈 가맹본부들의 가맹점에 대한 횡포가 사회적 이슈로 부각되면서 올해 관련법이 새롭게 개정돼 프랜차이즈 본사는 각 지점의 점주들에게 리뉴얼을 강요할 수 없게 됐다. 그동안은 대부분의 매장들이 2~3년 주기로 매장 리뉴얼을 시행하며 간판을 개·보수하거나 교체해 왔으나 7년에 한 번씩 리뉴얼 하도록 법이 바뀌었다. 이전에도 매장 리뉴얼시 가맹본부가 전체 비용중 20~40%를 지원해야 한다든지, 기존 가맹점에서 500m 이내 지역에는 신규 출점을 못하도록 하는 등 규제가 강화되면서 업계의 간판 수요가 줄어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여기에 다시 법적인 제약이 가해짐으로써 프랜차이즈 기업들의 간판 교체 수요가 더욱 줄어들 수밖에 없게 됐고 때문에 원하는 매장에만 간판을 교체하고 있다. 기업 간판 교체에 있어 단계별 소량교체 현상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 곳 가운데 하나가 금융권이다. 경기 불황의 여파로 금융권은 최근들어 인수합병이 잦았다. 과거의 경우 인수합병을 진행하면 새로운 사명을 달고 CI, BI를 바꾸는 한편 그에 맞춰 간판을 교체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금융권이 비용절감 차원에서 중심도시 몇 군데만 선정해 교체하거나, 이전 상호를 그대로 이어가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제작업계 한 관계자는 “예전에는 통폐합이나 인수합병이 곧 간판교체 수요로 이어졌는데 이제는 옛말이 됐다”면서 “전량 교체가 아닌 3~4년 정도의 기간을 두고 개·보수 작업이나 부분 교체만을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앞으로는 이런 추세로 기업들의 간판 교체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면서 “한동안 대규모 간판교체 소식은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했다. 기업들의 거점별, 단계별 소량교체로 트렌드가 바뀌면서 제작업계들의 생존을 위한 자구노력 경쟁도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한 제작업계 관계자는 “기업들의 대규모 간판 교체를 기대하기 어려운 만큼 제작업체들은 자신만의 차별화된 방법을 찾아 유연하게 대처해야 한다”면서 “최저가 입찰을 진행하고 있는 기업들도 문제지만 여기에 터무니없는 단가로 투찰해서 가격으로만 승부를 두려고 할게 아니라 다른 방안을 연구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거점별, 지역별 교체인 만큼 그 지역의 환경과 어울리는 소재, 디자인 등을 고안해야 한다”면서 “기업간판의 변화상과 기업의 니즈를 발빠르게 파악해야 어려운 시장을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