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사업과 옥외광고 사업을 겸업하던 M사는 규모는 작지만 실속있던 회사였다. 여행쪽은 공공기관 등 거래처들이 탄탄했고 옥상 빌보드와 전광판 등을 운영하는 옥외광고도 꽤 짭짤해서 재무구조가 아주 건실했다. M사는 1차 사업때 야립광고의 노른자중의 노른자로 불리는 올림픽대로가 포함된 2권역에 응찰, 낙찰을 받았다. 지난 7년간 M사가 끊임없는 고통에 시달려야 했던 불행의 시작이었다. 당시 2권역은 야립 경험이 있던 메이저 업체들이 모두 피해간 권역. 탐은 나지만 입찰내용을 보고 도저히 광고물을 세울 수 없다는 판단에서 포기한 곳이다. M사는 야립광고 경험이 없었다. M사는 계약체결 바로 다음날 공제회에 설치승인 신청서를 냈다. 하지만 설치가 가능해지는데까지는 부지하세월이 걸렸다. 올림픽대로의 경우 특례가 없어 설치 자체가 불가능했다. 특례 제정을 요청했지만 옥외광고정책위원회 심의는 계약일로부터 거의 5개월이 지나서야 열렸다. 그런데 M사가 계획한 장소의 상당수는 특례로도 설치가 불가능했다. 이전 특별법때 광고물을 세웠던 장소들도 설치가 불가능했다. M사는 다시 특례를 요구했고 이 2차 특례가 나오고 나서야 광고물을 설치할 수 있었다. 사정은 지방도 비슷했다. 설치승인 절차에 한 세월이 걸렸다. 설치와 상관없이 수억원의 기금은 매월 꼬박꼬박 납부해야 했다. 광고수입은 한 푼도 없이 계약금에 이행보증증권 담보, 기금, 광고물 설치비, 관리운영비 등등…. 탄탄하던 회사는 순식간에 어려움에 봉착했다. 전혀 예상못한 복병들도 속출했다. 설치 과정상의 애로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광고가 게첨되자 이번에는 민원이 봇물처럼 터졌다. 몇 개 아파트 단지에 막대한 보상금을 지불하고 민원을 해소했다. 하지만 한 아파트단지쪽에 3억5천만원을 들여 설치한 광고물은 끝내 철거를 해야 했다. M사는 2차때 고가투찰 경쟁을 펼칠 형편이 못됐고 결국 낙찰을 받지 못했다. 양수도 과정에서 신규 사업자와 타협을 보고 공제회의 승인하에 컨소시엄을 구성, 사업자 지위를 유지하고 있지만 현재 극도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때 ‘옥외광고의 꽃’으로 선망의 대상이었던 야립광고는 지금 ‘옥외광고의 무덤’으로 추락하고 있다. M사는 이를 보여주는 한 사례일 뿐 M사 외에도 여러 사업자가 야립 때문에 망가지거나 고통을 받고 있다. 방송 외주제작 사업으로 잘 나갔던 H사. H사는 1차때 5권역에 들어와 6기의 광고물을 세우면서 야립광고 사업자 반열에 올랐다. 야립은 물론이고 옥외광고 경험 자체가 없었기에 업계 많은 사람들이 이를 경이롭게 바라봤다. 하지만 H사는 2차 사업때 낙찰에 실패했다. 이후 낙찰자와의 양도 양수가 차질을 빚게 되면서 공제회와 송사 등 온갖 분쟁을 치렀다. 이 과정에서 5권역의 광고물은 몽땅 뽑혔고 이 권역 야립광고 사업은 결국 H사에 회복 불능의 치명타가 되었다. H사를 누르고 5권역을 낙찰받은 C사. 역시 야립 경험이 전혀 없던 C사는 무덤으로 이어지는 늪에 빠졌다가 운이 좋아 빠져나간 케이스로 업계에서 회자되고 있다. C사는 H사로부터 광고물을 양수받는데 실패했고 H사가 광고물을 철거하지 않아 새로 세우기도 여의치 않았다. 하지만 기금 납부는 면해지지 않아 뻘속에 갇히는 신세가 됐다. 공제회와 H사, C사간에는 여러 복잡한 송사가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됐고 이 상황이 전개되는 바람에 C사는 공제회와의 불항소협약 등을 통해 조기에 계약금과 이자를 환급받고 뻘에서 간신히 빠져나왔다. 또다른 H사는 특별법 시절의 야립 경험은 없지만 1차때 3권역을 낙찰받았고 이후 사업과정에서 비교적 성공적 진입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래서인지 H사는 2차때 신규 물량으로 나온 8권역 27기를 낙찰받았다. 하지만 8권역은 늪이었다. 그동안 총 15기를 세웠는데 세우는데 1~2년이 걸려 실제 영업기간은 반도 안됐다. 평균 게첨율 20% 정도. 현재 9기에 광고가 붙어 있는데 사업 말기의 저가 광고가 대부분으로 이 권역 사업으로 입은 손실이 막대하다. I사는 2차때 무리한 금액이라는 판단이 들었지만 신규 진입을 위한 투자라 여기고 고가투찰을 해서 낙찰을 받았다. 기존 사업자와의 양도·양수가 쉽지 않았지만 사업권을 반분하기로 타협을 하고 공제회가 이를 인정해 공동사업자가 됐다. 과거 야립광고 경험이 있어 자신감이 있었고 기대도 컸다. 하지만 막상 맞닥뜨린 결과는 경험 및 기대와는 정반대였다. 올림픽대로의 경우 과거 빈 야립이 없어 광고주가 대기를 하고 지방 야립을 끼워넣어 팔던 상황을 기대한 것은 아니지만 야립은 이미 한물 간 매체가 되어 있었다. I사는 지금 2차 사업에 뛰어든 것을 후회하고 있다. 중앙언론사 J일보는 2차때 야립광고에 욕심을 냈지만 입찰참여 자격이 안돼 계열 J방송 이름으로 낙찰을 받았다. 이후 공제회의 원칙을 벗어난 특혜로 정식 사업자가 됐지만 기존 사업자와의 양도·양수에 실패해 입찰조건에 맞지 않는 시설물 임차사업자 신세가 되고 최근에는 제소전 화해 문제로 코너에 몰리고 있다. 광고물이 귀속되게 됨으로써 임차가 오히려 득이 되는 상황이 됐지만 그래도 야립광고 사업으로 재미를 보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J일보도 야립광고 경험이 없었다. 야립광고 경험이 풍부한 J사는 1차때 제일 먼저 응찰하여 1권역을 따내는 등 이 사업에 가장 적극적이었다. 1, 2차를 합쳐 3개 권역에 걸쳐 총 66기의 광고물을 세웠고 과거의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비교적 안정적으로 사업을 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재정이 탄탄한 것으로 소문이 나서 업계에 양도·양수를 염두에 두고 J사의 권역에 도전장을 냈다가는 낭패를 볼 수 있다는 분위기가 퍼져 있던 것도 사실이다. 그 만큼 장래 사업의 안정성에 있어 높은 평가를 받아왔다. 그러나 회사의 재정이 탄탄할 뿐 투자비를 회수하지 못한 것은 J사도 마찬가지다. J사는 가장 많은 물량을 확보한 만큼 설치비도 가장 많이 들였다. 광고물 귀속 조건이 현실화되면 가장 적극적으로 사업에 임했던 J사가 가장 큰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
<미니해설> 야립광고사업 왜 이렇게 됐나
원 사업물량 369기중 7년간 151기만 설치… 낙찰가는 상승 발주처의 엉터리 사업 설계와 사업자의 무모한 투찰경쟁 합작품
업계는 일반법체계로 전환된 2008년 이후 야립광고로 망가졌거나 존폐의 기로에 서게 된 업체는 여럿이지만 투자금을 회수하고 이익을 내 재미를 본 업체는 단 한 곳도 없다고 입을 모은다. 그렇다면 한때 옥외광고의 ‘꽃’이었던 매체가 ‘무덤’ 또는 ‘늪’으로 추락한 원인은 무엇일까. 업계는 이구동성으로 사업의 기본 설계가 잘못됐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설계 가운데서도 특히 사업의 성패는 안중에 없이 오로지 경쟁을 부추겨 기금 액수만을 높이는 착취구조적 사업자선정 방식이 문제라고 입을 모은다. 일각에서는 발주처만 탓할 일이 아니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과거의 영화에 대한 미련을 못버리고 시장 상황을 오판한 채 발주처의 의도대로 제살깎기식 고가투찰에 나선 결과라는 것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원래 공제회가 1차때 내놓은 사업물량이 369기다. 사업자들이 이것을 따다가 4년 동안 151개밖에 못세웠다. 2차때 허수를 걷어내 사업물량을 206개로 한꺼번에 44%나 줄였음에도 3년 동안 추가로 세워진 것은 몇 개 안된다”면서 “사업 설계가 얼마나 엉터리였는지를 확인해주는 증거”라고 말했다. 관계자는 또 “더욱 한심한 것은 사업자들이 고가투찰 경쟁을 벌여 스스로 화를 자초했다는 사실이다. 발주처가 물량을 대폭 줄이는데도 낙찰금액은 거꾸로 크게 올라갔다”면서 “현실과 괴리된 착취구조의 설계, 그리고 설계가 잘못됐음에도 거기에 장단을 맞춘 이 사업과 사업자들이 성공했다면 그것이 오히려 이상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석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