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끄럽지 못한 행자부의 여론수렴 과정이 업계 불신과 불만 키워 10여년간 수천억원 들여 추진해온 간판정비 사업과의 모순점도 문제
디지털광고 허용은 원래 옥외광고 업계의 오랜 요구사항이었다. 그런데 막상 정부가 디지털광고를 허용하겠다고 하자 업계가 생존권을 위협하는 산업말살 정책이라며 정색을 하고 반대하는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 연출됐다. 업계는 왜 자신들이 원했던 디지털광고를 반대하나. 우선 가장 큰 이유로 디지털광고를 허용하는 방식, 즉 허용의 시기가 너무 전격적이고 범위도 너무 방대하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업계 뿐 아니라 연관 산업계 및 학계 등이 그동안 디지털광고의 허용을 요구했지만 그 기저에는 대상 광고물의 종류와 지역, 규격 등에 대한 엄격한 제한이 묵시적으로 깔려 있었다. 옥외광고의 특성상 난립은 산업에만 문제가 아니라 도시경관과 생태환경, 시민 생활 등에 전반적인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상업용 광고의 크리에이티브 확장 차원에 국한시켜야 한다는 묵시적 공감대가 있었던 것. 때문에 과거 학계에서는 자유표시구역에 한해 디지털광고를 허용해 주자는 방안을 공론으로 제기하기도 했다. 그런데 꿈쩍도 않던 행자부가 이번에 갑자기 전면 허용을 들고 나오자 업계는 업종 구분없이 대부분 경악하는 분위기다. 여기에는 수요와 공급간의 균형이 일시에 무너져 기존 옥외광고 시장 자체가 붕괴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깔려 있다. 게다가 생활형 간판에도 디지털을 허용하고 자사광고 표출도 허용하는 것까지 거론되자 전문 광고업체들은 단순한 시행령상의 내용변경 차원이 아닌 생존권 차원의 문제로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행자부 간담회때 한 대행분야 관계자는 특정 편의점 프랜차이즈의 사례를 들어 행자부의 방안대로 디지털광고가 실행되면 옥외광고대행업이 설 자리는 전혀 없다고 단언했다. 다음으로 행자부의 개정안 마련을 위한 여론수렴 과정이 매끄럽지 못했던 것도 업계의 불신과 불만을 키운 측면이 강하다. 업계는 행자부가 겉으로는 옥외광고 산업을 진흥할 목적으로 디지털광고를 허용하는 것처럼 하지만 실상은 옥외광고 산업계가 아닌 전자와 전광, 디스플레이 관련 산업을 진흥시킬 목적으로 옥외광고 업계를 희생시키려는 것 아닌가 의심하기도 한다. 업계가 이렇게 의심하는 데에는 사실 여러 가지 단초와 빌미, 개연성들이 있다. 우선 디지털광고 전면허용 방침이 행자부와 미래창조과학부의 타협의 소산일 개연성이다. 국가 디지털산업 업무를 관장하는 미래창조과학부는 지난해 디지털사이니지 산업 진흥을 명분으로 디지털사이니지 특별법 제정을 강력하게 추진했고 때문에 행자부와 날카로운 대립각을 세웠다. 이 특별법이 제정됐다면 옥외광고물등관리법은 신식 알맹이는 모두 빠진 구식 껍데기뿐의 광고물법이 될 수밖에 없었다. 특별법은 결국 행자부의 제동으로 무산됐지만 이때 행자부가 미래부의 의견과 요구를 반영해준다고 약속했을 수는 있다. 과거 행자부는 문화관광부와 기금조성용 옥외광고물의 주무 권한을 놓고 줄다리기를 했을 때 매년 500억원 이상의 기금을 문화관광부쪽에 할애해준다고 약속하고는 문광부의 특별법 제정 추진을 무산시킨 바 있다. 행자부는 지난번 시행령 여론수렴을 위한 간담회때 미래부 공무원과 옥외광고 업계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스마트사이니포럼이라는 단체를 참석시켰다. 이 단체는 옥외광고물등관리법상의 옥외광고정책위원회에 미래부를 참석시켜줄 것, 디지털광고물 조항에 “미래창조과학부장관이 지정하는 새로운 기술 및 유형의 디지털 디스플레이를 이용하는 광고물”을 포함시켜줄 것, 디지털광고물의 표시방법에 최소 금지사항만을 규정할 것 등을 반영해 달라고 건의했다. 이 포럼은 정부가 허가해준 법정단체(사단법인)의 지위가 없다. 미래부 소속 법정단체인 한국스마트미디어산업진흥협회가 운영하는 5개의 분야별 포럼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반면 행자부는 실사출력 사업자단체인 디지털프린팅협회를 비롯해 행자부가 허가해준 옥외광고 분야의 법정단체 여러 곳을 참석시키지 않았다. 디지털프린팅협회는 디지털간판이 전면 허용될 경우 최대의 피해를 입을 업종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업계는 행자부가 오랫동안 틀어막아 왔던 디지털광고물을 갑자기 한꺼번에 확 푸는 것이 상식선에서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다. 그 근거로 전국 도처에서 10여년간 진행해 왔고 지금도 하고 있는 간판개선사업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지난 10여년간 크고, 많고, 현란하고, 단조로운 간판 문화를 작고, 적고, 소박하고, 다양한 간판 문화로 개선한다면서 이미 수천억원을 투입한 바 있다. 이와 관련, 행자부 관계자는 “행자부 등록 법정단체들을 간담회에 참석시키지 않은 것은 의도하 바가 아니라 실수로 그렇게 된 것으로 그 단체들과 간담회를 할 것이며 스마트사이니지포럼은 디지털광고를 다루다 보니 참석하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 행자부 관계자는 또 “법에 표현의 자유가 있다고 해서 마음대로 다 할 수 없듯이 법에 디지털광고물이 있다고 해도 여러 가지 제약이 만들어질 것”이라면서 “간판개선 사업도 유지될 것이다. 그렇게 확 달라지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