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시장경제 원리에 반하고 간판 업계에도 피해 많아 민간은 간판질서 인식 키우고 관은 인허가 관리 집중을옥상
2000년대 들어 간판 업계에 불어닥친 가장 큰 변화 가운데 하나를 꼽으라면 단연 관 주도의 간판정비 사업일 것이다. 가로경관 개선사업, 도시미관 개선사업 등으로도 불리는 간판정비 사업은 지난 2004년 이명박 서울시장이 청계천을 복원하면서 이른바 종로 업그레이드 및 청계천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추진한 것이 첫 사례로 꼽힌다. 청계천을 덮었던 고가도로를 뜯어내고 난 후 천변 양쪽 건물들의 흉물스런 외관과 간판들을 일제히 정비한 것이 효시였던 것. 이후 도심의 일정 대로변 구간을 두부모 자르듯 구획을 정해서 그 안의 간판들을 일제히 교체하는 간판 정비 사업은 중앙정부의 독려와 지원 아래 전국 각 지자체로 급속 확산됐다. 일선 시군구에서는 관내 중심도로변을 대상으로 간판 일제정비 사업을 경쟁적으로 펼쳤고, 중앙정부와 광역 시도는 지원금과 인센티브를 내걸고 누가누가 잘하나 경쟁을 독려했다. 전국의 도심 수십 수백군데에서 동시다발적으로 간판을 일제히 교체하는 작업이 관의 주도로 진행됐다. 관의 주도로 진행이 되다보니 국민의 세금이 개별 점포주들의 간판에 녹아 들었다. 지난 10여년간 전개돼온 전국 일원의 간판정비 사업에는 행자부 지원금과 광역시도 지원금, 시군구 자체 예산 수천억원이 투입됐다. 간판 정비 사업은 도심의 면모를 크게 바꿨다. 무질서하게 난립한 간판, 노후화돼 안전에 문제가 있는 간판, 광고만을 의식한 과대 간판들이 말끔하게 정리되는 효과를 거뒀다. 점포주와 시민들의 간판에 대한 의식과 인식을 고양시키는 효과도 거뒀다. 그러나 막대한 세금을 투입해서 거둔 긍정적 효과가 그리 크지 않은데 반해 부정적 역효과가 컸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사업의 시행 초기부터 우려와 문제점 지적도 많았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특정 개인이나 업소의 광고수단인 간판에 국민 세금을 쏟아붓는 것은 옳지 않다는 주장이었다. 같은 동네의 같은 업종 점포인데 어떤 건물은 세금으로 간판을 달아주고 어떤 건물은 달아주지 않는 것은 자유경쟁을 전제로 한 시장경제 원리에 반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관 주도로 사업이 진행된다는 점에서 간판의 획일화와 사업과정의 부정‧비리가 걱정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실제로 이같은 우려와 걱정은 실제화된 경우가 많았다. 관은 작고, 적고, 소박한 입체형의 엘이디 문자간판만을 허용했고, 그 결과 사업이 진행된 지역의 간판들은 가로형의 채널사인 일변도로 바뀌었다. 국화빵 간판이라는 비판이 나올 정도로 닮은꼴 간판이다보니 간판의 기본 기능인 시인성이 약화돼 점포주들 뿐 아니라 일반 시민들의 불만을 사기도 했다. 가장 큰 문제는 막대한 공공 예산이 투입되는 사업임에도 수혜 대상인 간판업계의 반대와 반발이 큰 점을 꼽을 수 있다. 간판 업계는 간판정비 사업이 간판 시장의 수요와 공급을 어지럽힌다며 반대하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간판 정비사업이 도입된지 13년. 이제는 이 사업의 지난 발자취를 냉정하게 되짚어 보고 이대로 계속 진행을 해야 할지 아니면 근본적인 변화를 줘야 할지를 따져볼 때가 된 것같다. 특히 올해 행자부가 역점을 두어 법령을 전면 개정하면서 불법 광고물 정비 문제가 공공기관과 민간 산업계의 주요 현안으로 등장하면서 간판정비 사업에 대한 근본적인 정책 변화를 주문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간판정비 사업에 투입하는 비용과 행정력을 불법 광고물의 원천적인 방지 및 단속과 정비에 투입하는 방향으로 정책의 근본적인 전환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서울의 한 구청 공무원은 “관리의 한계상황에 있던 간판들을 정리하고 정돈하기 위해 관 주도로 일제 정비사업을 해야 할 필요성이 있었고, 실제 그런 효과를 거둔 것도 사실”이라면서 “하지만 관 주도에서 오는 부작용도 어쩔 수 없었다. 이제는 사업 자체에 대해 냉정한 재검토를 통해 기존 간판에 대한 일제정비보다는 신규 인허가를 통한 불법간판 방지에 행정력을 쏟아야 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간판업계 한 관계자는 “간판정비 사업이 활성화된 이후 간판업계의 침체가 뚜렷해졌다”면서 “간판정비 사업을 한 곳에서는 간판 수요 자체가 일시에 소멸하고 다른 지역에서도 공짜간판에 대한 기대감 때문에 점포주들이 간판 교체를 꺼린다”면서 “누구를 위한 간판 정비사업인지가 불분명한 관 주도 일제 정비사업은 그만하고 이제는 민간 중심의 개별 정비 방향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관련기사 12면, 13면, 14면, 15면, 16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