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판이라 하면 금속·목재·플라스틱 등 경질소재의 제품이 건물이나 매장 외벽에 부착돼 있는 것이라는 인식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때로는 물감과 붓, 스프레이 페인트만으로도 멋진 간판이 완성되기도 한다. 이 소재들이 만들어 내는 벽화에 의해서다. 벽화를 간판처럼 사용하는 것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예전부터 간판 대신 벽에 그림을 채워 넣은 매장들은 줄곧 존재했다. 어려운 살림에 간판 설치에 들어가는 비용이라도 줄이고자 한 영세 매장들의 사연이나 점포주의 특이한 취향 등 여러 가지 이유에서다.
그러나 이런 벽화 간판은 극히 일부 공간에서 나타나는 이색 사례였을 뿐, 벽화 자체가 하나의 간판 기법이 되지는 않았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간판에 벽화를 활용하는 다양한 시도가 진작되고 있다. 낡은 공장가의 점포들을 대상으로 아마추어 예술가들이 그린 벽화들이 멋들어진 간판이 되어 세간의 관심을 모으는가 하면, 재래시장 등 영세 업소들의 활성화를 위해 정부의 지원을 받은 전문 미술가들이 벽화를 통해 매장을 리뉴얼하는 사업도 이뤄지고 있다.
▲거리의 예술 ‘벽화’, 새 간판 기법이 되다 최근 들어 벽화를 다양한 장소에서 볼 수 있는 데는 몇 가지 이유를 들 수 있다. 먼저 저렴한 비용으로 매장의 분위기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다. 벽화는 고가의 소재 및 장비없이 작가들의 순수한 노동력으로 완성되는 작품이기 때문에 동일 면적에서 발생되는 비용은 상대적으로 훨씬 적다. 또한 일반적인 간판과 달리 벽화는 아주 서정적이고 아날로그적 분위기를 연출하기 때문에 타 매장과 차별화되고 색다른 홍보효과를 누릴 수 있는 것도 특징이다.
아울러 이런 벽화 작업은 젊은 예술가들의 일거리를 제공하기 때문에 지역상권 발전 및 예술계 일자리 창출이라는 일석이조의 성과를 얻어 낼 수 있다. 실제 미국에서 벽화가 성행하기 시작한 이유도 지난 1930년대 미국의 경제대공황기 상황에서 이를 타개하기 위한 정부의 정책적 대안으로 추진된 뉴딜정책에 포함된 예술지원프로그램에 의해서다. 이 시기에 미국의 공공건물의 벽면에서는 수많은 벽화들이 탄생됐다. 국내에서 진행된 대표적인 벽화사업인 마을미술프로젝트나 전통시장의 문전성시프로젝트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추진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공간의 형태 구애받지 않고 자유로운 표현 가능 벽화가 장소의 제약을 받지 않고 어디에나 쉽게 그릴 수 있다는 것도 일반 간판 대비 장점이다. 평면의 벽은 물론 울룩불룩한 벽이나 계단, 기둥 등 일반 광고물의 부착이 어려운 곳에도 벽화를 그리는 것은 어렵지 않다. 따라서 안내 및 유도사인물을 벽화로 대체하는 공간들도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실제로 최근 젊은층을 중심으로 한 벽화 간판 전문 업체들이 다수 등장하고 있는 것도 이를 방증하는 지표로 볼 수 있다.
한편, 이런 간판 벽화의 난립에 따른 반작용도 우려되고 있다. 국내의 벽화는 아직 다양한 재료 사용이 이뤄지지 않고 대부분 재료비가 싼 수성, 유성 페인트로 작화되고 있다. 이런 페인트 벽화의 경우 수명이 1~2년에 불과하다. 따라서 벽화가 노후화되기 시작하면 심각한 시각 공해를 야기할 수도 있다. 따라서 간판의 용도로 벽화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장소의 특성에 걸맞는 안료의 선택이 중요하며 완성된 작품의 관리에도 세심한 신경을 기울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