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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17 12:42

문래에서 성수까지… 공장 문화거리 간판 탐방

  • 관리자 오래 전 2018.10.17 12:42 디자인 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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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이 떠나간 공간 채워낸 문화의 향기가 간판에 담겨

거칠고 투박한 분위기 살린 인더스트리얼 트렌드 확인

서울의 성수동과 문래동, 부평의 구월동, 강화도의 조양방직 거리. 이 동네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요즘 가장 뜨고 있는 핫플레이스라는 점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이 곳들은 모두 전에 공장단지로 사용됐던 공간이다. 성수동은 신발공장, 문래동은 철공소, 부평 구월동과 십전동은 가구공장, 강화의 조양방직거리는 이름처럼 방직공장들이 모여 있던 자리다.

산업화 시대를 지나고 국내의 제조업이 무너지기 시작할 때 이 곳들은 공장마저 하나 둘 떠나고 이른바 죽은 거리가 돼서 오랜 시간을 보냈다. 주인없는 공장은 먼지 쌓인 채 방치됐고 얼마 남지도 않은 공장 장비가 돌아가면서 나는 소음과 먼지는 사람들이 길을 피해 빙 돌아다닐 정도로 기피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런데 이런 곳들이 어떻게 지금 젊은이들이 모여드는 핫한 거리로 바뀌었을까? 바로 산업이 떠나간 공간을 문화가 다시 메워가면서부터다. 어두운 분위기였던 뉴욕의 브루클린이 화려한 그래피티 아트로 인해 문화공간으로 변화하고, 중국 베이징의 공장지대가 예술가들이 자리잡으면서 ‘다산쯔 798 예술특구’가 된 것처럼, 국내 공장가에도 새로운 문화가 피어나고 있는 것. 버려진 공장 건물들이 카페나 레스토랑, 패션숍 등으로 변신한 이 공간들은 화려하거나 산뜻한 것과는 거리가 멀지만, 빈티지하면서도 아주 독창적인 모습으로 소비자들을 유혹하고 있다.

신한중 기자[ⓒ SP투데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397-30-2.jpg ■낡음을 가리지 않고 장점으로 활용한 간판들

이 거리들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매장의 간판이다. 다른 거리와는 간판부터 다르다. 깔끔한 간판과는 거리가 먼 빈티지한 간판들이 낡은 벽면에 걸려있다. 분명 오픈한지 얼마 되지 않는 카페임에도 마치 수 십년간 공장과 같이 해온 간판인 것처럼 옛스러운 분위기가 물씬 묻어난다. 간판의 분위기는 매장 실내로도 이어진다. 공장에서 쓰던 배관과 철제 탁자들을 그대로 사용하는 인테리어 방식. 바로 최근의 공간 디자인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트렌드 중 하나인 인더스트리얼 무드다. 인더스트리얼은 영어의 인더스트리(industry)에서 온 개념으로서 ‘산업의’, ‘공업용의’ 라는 단어 의미에서 짐작할 수 있듯 기계화와 대량생산이 부흥했던 시기나 그 당시를 연상케 하는 조명 및 소재로 연출한 스타일을 말한다.

1920년대 이후 급격하게 산업이 부흥하고 기계화되기 시작한 시기를 모티브로 하기 때문에 세련되고 깔끔한 느낌보다는 좀 더 투박하고 남성스러우며 빈티지한 느낌이 특징이다. 공장, 공사현장 등 산업적인 분위기를 디자인 모티브로 하고 있는 만큼 인더스트리얼 디자인에서는 정교한 마감이나 깔끔한 느낌보다는 투박하고 빈티지스러운 분위기가 강조되는 게 특징이다. 인더스트리얼 디자인이 반영된 공간은 거친 콘크리트로 이뤄진 공장처럼 무거운 이미지를 보이기도 하고, 때로는 가공되지 않은 소재들로 대충 만들어진 듯한 모습으로 편안함을 강조하기도 한다.

문래동과 성수동, 부평과 같은 장소는 이런 인더스트리얼 무드를 내는 데 제격이다. 공장으로 사용되던 건물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큰 보수를 하지 않고, 가구의 배치만으로도 멋진 인더스트리얼 무드를 연출할 수 있다. 간판도 마찬가지. 낡은 벽면을 억지로 가리고 번쩍이는 간판을 달기보다는 그 낡음에 어울리는 간판을 제작하는 것이 바로 인더스트리얼의 멋이다.

한 간판 제작업체 관계자는 “아무리 세련된 간판도 건물 자체가 낡으면 되레 위화감을 주기 때문에 이전에는 낡은 벽면을 가리기 위해 덧칠을 하고 타일을 바르는 등 간판을 달기 위한 사전 작업이 많았다”며 “하지만 최근에는 낡은 건물 자체의 이미지를 살리는 빈티지풍의 간판이 인기여서 이런 느낌을 내기 위해 일부러 낡은 건물을 택하는 창업자들도 많다”고 설명했다. 인더스트리얼풍 간판의 유행은 어쩌면 기존 간판업체들에게는 부담이 될 수도 있다. 기존의 대량생산형 간판업체에게는 맞지 않는 스타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간판도 분명한 디자인 산업인 만큼 트렌드를 확인하는 것은 중요한 부분이다. 일부의 트렌드로 시작한 것이 대중문화로, 보급형 상품으로 확대 재생산되는 일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강산채널의 장성수 대표는 “공장 앞에 재미삼아 낡은 철판을 대충 잘라 만든 간판을 걸었는데 이걸 보고 유사한 간판을 요청하는 고객들도 많다”며 “낡고 빈티지한 간판을 선호하는 최근의 경향이 시장에도 새로운 흐름을 만드는 추세”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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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강 1번지에서 예술거리로 변신한 문래동

문익점의 목화 전래지라서 ‘문래’라는 지명이 붙은 문래동은 그 이름처럼 1960년대까지 방직공장이 많았다. 개발시대의 아픈 그림자를 품고 살던 젊은이들이 이 곳에서 땀을 흘렸다. 그 뒤 방직업이 쇠퇴하면서는 철공소들이 몰려와 대한민국 철강재 판매 1번지로서 호황을 누렸다. 그러나 도시의 변화는 쉼없이 이어지기 마련. 2000년대 들어서면서는 철재 상가도 내리막을 걸었다. 업장들이 하나 둘씩 떠나고 덩치 큰 철공소 수십여 개만이 덩그러니 남아있는 이 곳은 시대와 어울리지 않는 옛 모습을 간직한 채 섬처럼 고립돼 있었다. 막연히 재개발만을 기다리고 있던 이 곳에 언제부터인가 알음알음 가난한 예술가들이 찾아 들었다. 이유는 저렴한 임차료 때문이다.

그들의 아지트였던 홍대나 대학로 등의 상권이 커지면서 높아진 임차료를 감당하지 못한 예술가들이 서울에서 가장 월세가 싼 이 곳을 찾기 시작하면서 자생적으로 문래창작촌이 탄생한 것이다. 이들이 들어서면서 낡고 때탄 건물과 담벽 곳곳에 각양각색의 벽화들이 그려졌다. 철공소의 양철 문짝과 셔터, 허름한 건물의 계단과 내벽까지도 그림들이 가득 들어찼다. 버려진 공간이 캔버스가 됐고, 설치 작품의 전시대가 됐다. 이 그림들은 작가들이 자신이 입주해 있는 건물에 그려 놓은 일종의 푯말이다. 건물 곳곳에는 작업실의 간판도 달려 있는데, 개성만점의 간판들이 낡은 공장건물에 매달려 있는 풍경은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공장가의 변신은 젊은 창업자들의 발걸음도 이끌었다. 공장을 리모델링한 카페와 레스토랑들이 들어서고, 이 중에서는 SNS에서 꼭 가봐야 할 곳으로 꼽히는 명소가 된 곳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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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성수동, 뉴욕 브루클린과 센트럴파크를 닮다

요즘 가장 뜬다는 거리 서울 성동구 성수동은 흔히 미국 뉴욕의 브루클린과 비교된다. 1960~70년대 가죽·기계·인쇄 공업지역이었던 성수동은 제조업이 쇠퇴하면서 사람이 떠나고 빈 공장만 남았다. 이후 2010년대 들어 젊은 예술가들이 서울의 비싼 임대료를 피해 이곳으로 모여들면서 낡고 오래돼 흉물로 남았던 창고들이 전시공간, 카페, 스튜디오 등으로 탈바꿈하기 시작했다. ‘자그마치’, ‘대림창고’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하는 사람이면 한 번쯤 이름을 들어봤음직한 유명 카페들이 이 곳에 몰려 있다. 하지만 처음 이 거리를 찾은 사람이라면 제대로 찾아온 건지 의문이 든다. 공장 외부는 그대로 둔 채 내부만 리모델링했기 때문에 밖에서 쉽게 분간해내기 어려운 까닭이다. 더 재미있는 것은 간판도 마치 공장의 일부인 양 세월의 흔적이 잔뜩 묻어난다는 점이다. 분명 카페를 오픈하면서 새로 설치한 것일텐데, 공장과 함께 수십년 풍상을 겪어온 듯한 모습이 이채롭다. 흔히 건물의 외관이 지저분할 때 점주들은 여러 방법으로 더러운 외벽을 가리려는 노력을 하게 된다. 하지만 성수동의 점포들은 벽을 가리는 대신, 공장의 낡은 외관에 어울리는 느낌의 간판을 다는데 노력했다. 그 결과 간판마저 사랑받는 색다른 거리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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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방직공장 있던 강화 신문리도 카페거리로 변신

강화도 신문리는 일제 강점기인 1933년에 설립된 우리나라 최초이자 최대의 방직회사 조양방직이 있던 것이다. 조양방직은 국내 섬유산업을 주도하며 1960년대까지 최고 품질의 인조직물을 생산했다. 이후 수십 개의 방직회사들이 들어오면서 강화도는 방직산업공단으로 최전성기를 누렸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방직공장이 대구나 구미 등지로 옮겨가면서 강화도는 급격한 쇠락의 길을 걷게 된다. 최초의 방직공장 조양방직도 20~30년 정도 폐가로 방치되어 있었는데, 최근 이 곳이 대변신을 마치고 새로운 명소로 부상하고 있다. 2,000평 규모의 공장은 인더스트리얼 카페 및 갤러리로 변신했다. 그러나 간판은 그대로 조양방직이다. 수 십년이 된듯한 모습의 간판이지만 사실 이 간판이 새로 달린지는 불과 몇 개월 되지 않았다. 내부에는 빈티지한 가구와 소품들이 채워지면서 가볍고 재미있는 공간이 연출됐고, 세월의 흔적이 가득한 벽에는 영사기를 통해 옛 영화가 상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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