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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5.29 17:56

(제24호)문제투성이 간판입찰제를 해부한다

  • 2003-05-29 | 조회수 915 Copy 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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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판 제작업계가 유례없는 불황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다. 97년 IMF 이후 지속적인 매출 하락세를 보이고 있어 업계 전체가 긴장하고 있는 분위기다. 혹자는 \"오히려 IMF때가 지금보다 더 나았다\"고 단언하기도 한다.
간판 제작업계에 닥친 이같은 어려운 상황의 한켠에는 문제투성이인 현행 입찰방식이 단단히 한몫을 하고 있다. 대부분의 현행 간판 입찰이 최저가 방식을 취하다 보니 불황을 겪는 업체들이 죽기살기로 덤핑가격으로 공사를 수주, 업계 전체의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간판업계 시장 상황
간판업, 일명 사인물을 제작하는 기술은 나름대로 난이도를 지니고 있지만 일반인들은 3D 업종의 하나로 인식해온 측면이 높다. 간판업의 요건에 관한 규정도 거의 없다. 따라서 누구나 쉽게 창업을 할 수 있다. 현재 옥외광고업은 업종 특성상 사업장 시설 기준 등이 필요하지만 옥외광고물등 관리법 제11조, 제41조 등 관련법규에 규정이 없어 신고만 하면 영업이 가능하다. 쉽게 말해 시장 진입장벽이 타 업종에 비해 거의 없다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다.
그러다 보니 경제불황인 요즘같은 상황이 닥치면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 쉽게 무너져 버린다. 따라서 덤핑을 하면서까지 우선은 제작일을 따내고 보자는 것이 업계의 현실이다. 이러다 보니 간판업계 전체가 빈곤의 악순환에 처하게 되었다.
또 업체가 난립하다 보니 업계 전체의 공감대도 매우 부족한 편이다. 공사 원가가 95원이라고 치자. A업체가 100원에 수주받으려고 하면 B업체는 적정 마진 이하인 90원, C업체는 80원에도 경쟁을 마다하지 않는다.
때문에 업계에서도 98년을 전후로 많은 업체가 문을 닫을 것으로 예상했었다. 즉 능력있는 업체만 살아남고 자연적으로 도태되는 기업이 생기면서 시장 질서가 안정화될 것으로 전망한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업체들은 이런 예상을 깨고 끊임없는 출혈경쟁을 거듭하며 죽기 살기로 버티고 있는 상황이다.

간판 입찰 방식
○최저가 입찰 방식 : 간판 입찰현장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일반적인 방식으로 대부분 업체들이 선호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하지만 최근의 경향은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대부분의 업체들이 기본제작단가 이하로 낙찰을 받아 문제가 커지고 있다.
이 방식은 발주처(광고주) 입장에서 볼때도 장기적으로는 바람직하지 않다. 원가에 맞추려고 제작업자들이 날림공사를 많이 하는데다 완벽한 A/S 또한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요즘은 날림공사를 방지하기 위해 기업들이 검수를 강화하는 추세다. 원래 1년 정도인 하자보증기간이 최근에는 2~3년으로 갈수록 늘어나고 있는 것. 하지만 이는 곧 제작업체의 부담 가중으로 이어지고 때문에 업자들의 불만도 고조되고 있다.
결국 업자들 입장에서 보면 최저가 입찰은 이윤이 제로에 가깝고 손해를 보면서도 울며겨자먹기식으로 공사를 떠맡아야 하는 불합리한 방식이다.

○내정가 방식: 은행 등 공기업 형태를 띠고 있는 광고주들이 취하는 방식. 기업에서 미리 예가를 제시하고 그 기준에 가장 근접한 업체를 선정한다. 이것은 최저가 입찰이 지닌 단점을 상쇄할 수 있어 조금은 합리적이다. 예를들어 정해진 예가의 85% 이하는 배제를 시킨다든지 하는 방식이다. 때문에 85%에 가장 가까운 쪽이 1등에 선정된다. S은행, K생명 같은 기업들이 이런 방식을 취하고 있다. S은행은 내정가격을 비밀리에 산정, 응찰가 가운데 85% 이하는 탈락시키고 남은 업체중 저가 순으로 5개 업체를 선정한다. 금액은 이 가운데 최저가 업체의 것을 적용하고 물량은 저가 순으로 많이 배정한다. 최저가 수용 거부시는 후순위 업체에 기회가 돌아간다.
이 방식은 가장 효과적으로 덤핑을 방지하면서 싸게 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즉 예가에 가장 가까운 업체가 1등이 되므로 훨씬 단가가 좋다. 일신작업(一新作業 : 한꺼번에 간판을 대규모로 교체하는 일)일 경우는 금액이 훨씬 줄어든다.

○평균가 방식 : 이는 S그룹 같은 대기업에서 취하고 있는 입찰 방식. 다섯 개 업체가 응찰했다고 가정하자. 그러면 최저가와 촤고가는 일단 탈락시키고 중간에서 평균에 가장 가까운 업체가 1등이 돼서 이를 기준으로 필요한 수의 업체를 선정하는 방식이다. 업계에서는 이를 가장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방식으로 선호한다.

○차등 입찰 방식 : K은행 같은 경우는 매우 독특한 방식을 취하고 있다. 각자 금액을 써내게 해서 낮은 금액 순으로 일정 숫자의 업체를 선정한다. 이는 쉽게 말해 차등 입찰 방식으로 각자 써낸 금액으로 제작해서 납품하는 방식이다. 만약 1등이 20만원, 꼴찌가 35만원을 적어 냈다고 가정할 때 당연히 1등이 가장 불리하고 금액이 높은 꼴찌가 가장 유리하다. D업체의 경우 지난해 이러한 방식의 입찰에 참가, 20위권 밖으로 선정돼 짭짤한 재미를 보았다는 후문이다.

○지역별 입찰 방식 : 얼마전 치러진 H자동차의 경우를 살펴보자. 이 방식은 지역별로 3개 업체를 묶어 진행한다. 예를 들어 충청, 호남, 영남 등 권역별로 각기 3개 업체를 선정한뒤 3위 업체를 탈락시킨다. 그리고 2위 업체는 전체 물량의 40%, 1위 업체는 나머지 60%를 배정한다. 추후 작업 물량은 1위 업체가 독식한다. 가격은 전체 1등 업체가 써낸 금액을 적용한다. 일종의 최저가 입찰 방식. 이 방식은 A/S 방식의 차이 때문에 금액이 지역별로 달라질 수도 있다.

문제점 및 개선방안
입찰 공급량이 태부족이고 경쟁이 너무 치열하다 보니 살아남기 위한 수단으로 대부분의 업체들이 너나할 것 없이 최저가 입찰에 임하고 있다. 즉 일량에 비해 업체가 너무 많아 간판업계의 존폐 위기론까지 대두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따라 적정 이윤이 보장될 수 있도록 점차적으로 내정가 방식이나 평균가 방식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다. 하지만 제도적으로 내정가 방식을 규정하기가 아직은 어려운 상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비교적 합리적인 기업들이 최근들어 내정가 방식을 많이 취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S그룹같은 경우 품질이 당연히 떨어질 수밖에 없는 최저가 입찰 방식을 지양하고 있다.
한편 이제는 대부분의 대형물량 입찰이 공개 형식을 취하지만 영세업체들은 언제 입찰이 진행되는지도 모르고 넘어가는 경우도 많다며 보다 투명한 공개와 홍보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비공개를 제재할 수 있는 방안이 현재로서는 없으므로 표면적으로는 공개를 천명하고 교묘하게 비공개 형태로 진행되어도 어쩔 수 없는 노릇\"이라고 푸념한다.
올 초 치러진 G업체 사레는 이런 측면에서 말들이 많았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형식은 공개입찰을 취하면서 개별적 흥정을 하는 것은 일종의 대기업의 횡포라고 할 수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공정경쟁 속의 적정 이윤을 저해하는 업자들의 양식도 한번쯤 짚고 넘어갈 문제다. 너나 할 것 없이 죽기살기로 덤핑을 치다보면 결국은 공멸할 것이 자명한 일이기 때문이다.
강옥근 기자 kokab@sptod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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