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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7.27 12:54

<제58호> 지상중계 - ‘2004 종로프로젝트 추진 관련 세미나’

  • 2004-07-27 | 조회수 895 Copy 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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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한국도시 간판들의 광고 효과에 대한 질문
발표자: 송도영

지난달 5일 서울시 주최로 열린 ‘2004 종로프로젝트 추진 관련 세미나’에서 세 편의 주제 발표가 있었다. 지난호에 게재된 ‘서울디자인’에 이어 서울시립대학교 송도영 교수가 발제한 ‘한국도시 간판들의 광고효과에 대한 질문’의 내용을 요약 정리해 싣는다. <편집자 주>


“간판을 만드는 힘의 성격을 공략해야”

먹고살기 급급… 거리 미관 뒷전인 간판 문화
정부의 일관성 있고 지속적인 간판 정책 필요


‘아우성 간판’들의 광고 효과

서양 글자인 알파벳을 쓸 때 대문자를 많이 섞어 쓰면 사람들이 좋지 않게 여긴다. 강조하기 위해서 쓰는 글자인 대문자가 많이 들어가면 읽는 이에게 강요하는 느낌이 든다고 해서 그것을 ‘폭력적인 글모양’이라고 평한다. 그렇게 따진다면 한국 대도시의 거리거리를 가득 메운 광고들은 대단히 폭력적인 글씨들이요, 따라서 한국 도시의 거리는 시각적으로 어지러울 뿐만 아니라 폭력적인 거리가 된다.
그래서 우리는 당연하고 자연스런 질문을 해본다. “대체 저런 간판들이 도시를 가득 덮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저런 광고물들이 제대로 읽혀지기나 할까?” “저런 모양의 간판들을 계속 만들어내는 힘은 대체 무엇일까?”그러나 이런 질문에 아랑곳없이 아우성 간판들은 오늘도 변함없이 한국 대도시의 거리를 뒤덮고 있다. 해서 더더욱 질문을 해보지 않을 수 없다. “사람들은 저런 간판들을 보고 좋아하는 것일까?”

간판은 미관상의 문제가 아니라
먹고사는 문제다?

사람들과 이야기를 좀 나눠보면 거리의 간판이 만들어내는 경관에 만족해하는 사람은 만나보지 못했다. 모두가 문제 있다고 대답한다.
외벽을 덕지덕지 덮고 있는 간판들이 광고효과가 좋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도 긍적적인 답은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 말이다. 자기 자신의 업소 간판으로 돌아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주변에 있는 업소들이 모두 붉고 검고 굵은 글씨들로 난리를 치면서 간판을 해달았는데, 자신의 업소만 차분하고 아름답게(?) 간판을 걸어놓을 수는 없다는 얘기다. 그랬다가는 그나마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길을 붙잡기 위한 경쟁에서 더 뒤로 밀려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는 심정이다. 문제는 많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우선 먹고사는 것이 급하다는 말이 튀어나온다.

‘스피드 문화’에 젖어버린
도심 속 간판

그러니까 이 아우성의 간판거리 속에서 나만 홀로 규정도 지키고 차분하면서 우아한 간판을 걸어봤자 알아주는 사람도 없고, 목청껏 행인들을 불러대는 커다란 소리도 저 번쩍거리는 요란한 간판들 틈새에서 흔적도 없이 묻히고 말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결국, 소비자들도 읽기 힘들어하고 간판을 내건 업주 스스로도 별로 인정하지 않는 보기 싫고 요란한 간판들이 오늘도 서울을 비롯한 한국의 대도시들을 버젓이 뒤덮고 있다.
현대 한국의 도시문화 논리를 구성하는 요소 중 하나는 스피드, 즉 속도성이다.
도시에 심겨져있는 그 건물들이 그렇게 멋대가리 없는 사각형 회색 콘크리트들인데는 물론 이유가 있다. 특별한 기능과 내용을 짐작케하는 외양으로 건물을 지으면 문제가 발생한다. 바로 ‘스피드’ 문제다.

무슨 소린가 하면, 이 건물에 어떤 회사가, 어떤 활동을 하는 임차인이 들어올지 알 수 없다는 말이다. 경제가 발전하는 속도만큼이나 도시의 주된 산업 내용도 빨리 바뀐다. 각 사업의 흥망성쇠 사이클도 빠르다. 장기계약을 맺는 몇몇 대기업을 제외하고는 대개의 건물 임차인들은 어떤 형태로 업종전환을 하며 들어오고 나갈지 알 수 없다. 반면에 건물은 한 번 지어놓으면 손을 대기 어렵다. 누가 사서 위험을 감수할 것인가.
‘스피드 문화’는 길을 찾아갈 때 사람들이 그려주는 약도에서도 나타난다. 우리는 어떤 모양의 건물을 지나 어떤 모양의 건물에서 꺽어져 어디로 가라는 식으로 약도를 그리지 않는다.
결국은 무슨 예식장 지나서 무슨 수퍼마켓 앞에서 꺽어진 다음 무슨무슨 약국 건너편에 있는 무슨 꽃집을 찾으라고 가르쳐 준다. 그것은 바로 ‘간판’들로 이루어진 약도다. 현재 한국 도시의 거리에서 목적지를 찾아가는 방식, 방향감각을 잡는 방식, 도시의 공간을 인식하는 방식은 우리가 문제시해온 저 아우성쳐대는 간판의 글씨에 절대적으로 의존해서 이루어진다.
가회동 한옥보존지구로 오랫동안 유지되어온 북촌의 경관은 가독성 없는 어지러운 간판들로 도배된 종로거리의 버전이다.

역사성 잃어버린 기억상실의
도시 간판들

유서깊은 조선왕조의 대표적인 주거지로서 양반 명가들이 자리잡았던 두 왕궁 사이의 주택가. 기와와 초가가 어우러져 물결치던 서울의 대표적인 역사경관을 그나마 남겨두고 있었던 도시한옥촌에 대한 30여년의 보존정책은 ‘무늬만 한옥’인 기와지붕의 다세댁 주택과 빌라들이 비죽비죽 어지럽게 솟아 동네 전체를 해체해버린 국정불명의 경치를 남겨놓았다.
그렇게 역사성을 상실한 채, 우리의 기억을 담은 형상들을 뭉개고 갈아엎으면서 새로 건물을 짓고 도로를 내고 다시 리노베이션을 하면서 만들어가는 도시의 건물들 위에는 일순간 동안 최대의 경제적 수익을 추구하며 아우성치는 각자의 간판들만이 살아 팔딱거릴 따름이다. 기억의 공간들을 상실한 도시 거리에는 공유한 기억이 없는 간판들만이 물결치게 되어있다.

현대 한국 간판
디자인이 문제가 아니다

간판문제는 디자인 문제가 이니다. 디자인이 문제였다면, 지금 당장 서울 거리의 간판들을 모두 떼어내고 통일된 색깔과 모양, 크기, 그리고 정해진 수량으로 새로 간판을 해달게 하면 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아시다시피, 현재로서는 ‘불가능’하다.
그런데 신행정수도에서는 도시 전체의 간판 색깔과 모양, 크기, 그리고 수량까지 통일적으로 지정해서 고시하고 시행하겠다니, 사람은 아무도 살지 않는 허허벌판에 건물들을 짓고 그 건물에 간판을 못질해 박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인가?

디자인은 움직이는 것이다. 시대가 바뀌고 기호가 바뀌면 어제 좋아보이던 것도 오늘은 추하게 보인다.
어떤 주기로 그 엄청난 규모의 디자인을 바꾸고, 그때마다 얼마나 막대한 행정력을 동원하여 그 바뀐 디자인을 실행시킬 것이며, 그것을 감시하고 관리하고 통제하고 계도할 것인가.

간단히 말하자면, ‘간판의 모양’ 이면에 있는 ‘그런 모양의 간판을 만드는 힘의 성격’을 공략하자는 말이다. 물론 그것은 시간이 꽤 걸리는 일이 될 것이며, 도시정부 혼자 할 수 있는 일도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 중요성을 깨닫는다면 적어도 그 작업을 부추기고 모두가 토론에 참여할 수 있게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에 관심있는 도시 정부 스스로, 시장이 몇 번 바뀌더라도, 일관성 있고 지속적인 정책과 활동을 통해 도시의 공간을 만들고 가꾸어가야 할 것이다.

<서울시립대 도시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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