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판은 도시의 모습을 만들어내는 구성요소 중 하나이기 때문에, 도시의 간판을 간판 자체만으로 이해해서는 안된다. 아름다운 도시를 건설하기 위한 전제조건은 도시의 정체성을 만드는 일이며, 간판의 정체성은 도시가 추구하는 정체성에 그 기초를 둬야 한다.
그것은 건물과 간판이 가로경관을 형성할 뿐 아니라, 더 나아가 도시의 정체성을 이루는 요소가 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간판은 건물에 포함돼 자신의 정체성을 나타내기 때문에 도시 형성의 주체가 되는 건물의 정체성이 간판보다 우선돼야 한다.
도시에서 표현되는 기업의 CI에서 간판은 무엇보다 경관과 조화를 이뤄야 하고, 건물의 조형적 여건을 따르지 않는 획일적 모습의 간판을 고집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기업의 CI가 ‘기업 이미지’라는 무형의 정보가치를 창조하고 발전시키는 과정이라면, 소규모 점포의 아이덴티티도 다를 바가 없다. 규모가 크던 작던 상행위를 함에 있어 그 기업이나 업소의 아이덴티티가 시나브로 생성되기 때문이다.
기업에서 CI를 마련할 때 그것이 성공이냐 실패냐 하는 것은 바로 이처럼 자연스럽게 생성되는 기업 문화가 일반 소비자에게 얼마나 부담 없이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느냐에 달려 있다. 간판은 그 판단의 척도가 되며 성공적인 아이덴티티를 형상화하는 열쇠가 된다. 간판의 아이덴티티를 구체화하는 것은 새삼 강조할 것도 없이 디자이너의 의무요, 역할이다. 일반적으로 고급한 아이덴티티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간판 자체에 그치는 것이 아닌, 공간 분석 능력과 함께 익스테리어(Exterior) 디자인 능력을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국내 상점 간판의 가장 큰 문제점은 상점의 성격과 간판의 디자인이 관계성을 갖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 말은 곧 간판의 커뮤니케이션 기능이 약화돼 있다는 것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이미지를 시각화하려는 일련의 훈련과정이 필요하다. 간판의 전달력을 높이기 위해서 내용 표현에 급급하기 보다는 간판의 모양과 잘 보이는 위치, 그리고 건물과의 조화를 염두에 둬 주목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근거를 마련해 보는 수고가 필요하다.
또 CI 계획에서는 주변 환경과 사인에 대한 충분한 분석과 연구과정이 필요하며, CI 개발자들은 기업의 문화를 분석하고 경영 방침과 마케팅 전략을 연구하는 것도 좋지만 바람직한 CI 개발을 위해 기업 이미지(또는 기업 아이덴티티)를 최종적으로 표현하는 간판에 대한 개발과 연구에 보다 큰 비중을 할애할 필요가 있다. 기업의 좋은 이미지를 각인시키고 성공적인 CI 활용에 도달하기 위해 이제는 아이덴티피케이션 (Identification) 개념이 선호돼야 한다. 아이덴티티(Idintity, 同一性)가 표현이 변질되지 않는 확고부동한 정체성을 의미한다면, 아이덴티피케이션(Identification, 同一視)은 표현은 약간 변하지만 이미지는 변하지 않는다는 탄력적이고 유연한 정체성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