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전역이 광고물 특정구역? 조만간 수도 서울 전체가 광고물 특정구역으로 고시될 전망이다. 지난 3월 서울시가 빼든 ‘규제의 칼’인 ‘서울시 광고물 가이드라인’은 이미 서울의 80% 정도에서 위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5월 9일 현재 서울시 산하 25개 구 가운데 20개 구에 고시가 완료된 상태다. 서울시 관계자는 “중구와 광진, 성북, 양천, 강서구를 제외한 20개 구가 가이드라인을 반영한 고시를 마무리했다”고 밝혔다. 광고물 제작업자와 소비자인 광고주(점포주)들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이를 직접 집행해야 하는 일선 공무원들에 이르기까지 가이드라인에 대한 전방위적인 반대 기류가 형성됐음에도 불구, 가이드라인은 ‘안’이 아닌 ‘고시’를 통해 법적 제도 즉 현실이 되고 있다.
당초 서울시는 각 구에 4월 1일까지 가이드라인을 따른 고시를 완료하라고 시달했지만 개별 구마다 사정과 상황이 달라 지정기간 안에 고시한 곳은 일부에 불과했다.
게다가 가이드라인 자체가 워낙 타이트한 규제 일변도라 섣불리 고시를 단행하지 못하고 인근 구의 진행상황 등 눈치를 봐가며 일정을 늦추는 구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서울시는 지속적으로 고시 미제정 자치구들에 대해 진행상황을 중간보고하도록 채근하는 한편, 빠른 시일 내에 고시를 하라고 다그쳤다. 그 결과 현재 20개구의 고시가 완료됐으며, 나머지 5개 구 역시 서둘러 고시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늦어도 5월 안에 모든 구의 고시가 마무리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한 구청 관계자는 “문제점 투성이인 가이드라인이 전면 시행을 코앞에 두고 있지만 아직도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자치구 관계자 역시 “고시된 이후에 수정·보완을 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면서 “어떻게 해서든 막았어야 했던 가이드라인이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일선 구청 관계자들은 대부분 난립된 광고물의 정비나 디자인이 개선돼야 한다는데는 동의하지만 가이드라인의 내용이나 시행 방법에는 문제점이 많다는데 대해서는 거의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는 것은 ‘시행령 개정 전 가이드라인 고시’라는 점이다. 행정안전부의 옥외광고물등관리법 시행령 개정은 아직 입법예고 상태에 있다. 따라서 만약 고시가 상위법인 현행 시행령 내용을 초월할 경우 마찰이나 충돌이 예상되며 가이드라인이 유명무실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K구 관계자는 “광고주들이 당장 상위법인 법령이 허용하는데 왜 일선 구청에서 제한을 하느냐고 따지면 할 말이 없게 된다”고 전했다. 그는 또 “포괄적인 고시로 전지역을 그렇게 마음대로 제한을 가할 거면 법과 시행령이 도대체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반문했다. 규제 일변도 정책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간판의 수량이나 규격을 똑같이 제한하면 디자인의 획일화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 D구 관계자는 “규격이 최소화된 만큼 점포주들이 대부분 규제의 틀 속에서 최대한 크게 간판을 제작하려 할 것”이라며 “이렇게 되면 결국 간판이 모두 비슷비슷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또한 까다로운 규제로 인해 불법광고물이 오히려 양산될 것이라는 지적도 잇따르는가 하면 가이드라인의 현실성에 대한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A구 관계자는 “권역별로 뭉뚱그려 지정한 간판의 총수량을 보면 어이가 없다”면서 “20m 미만 도로변의 주거생활로 규정된 일반권역의 경우 설치허용 간판 수량이 2개까지 돼있는데 그런 곳은 주택가라 실질적으로 광고물이 필요치 않은 곳”이라고 전했다. 그는 이어 “반면에 20m 이상 도로변으로 규정돼 있는 중점권역에는 상가가 많이 밀집해 있어 수량을 1개로 제한한다는 것은 생존권을 침해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그런가 하면 일선 구청 공무원들은 행정 업무의 어려움을 토로하며 크게 걱정하는 분위기다. B구 관계자는 “행정 업무 가운데 가장 어려운 게 광고물 업무”라며 “전문성이 요구되는 분야인데다 정비·허가를 비롯해 할일은 많은데 인원은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가이드라인대로 맞춘 고시 이후 행정수요의 증가가 뻔히 예상되는데도 인력보강과 같은 실질적인 대안은 마련해주지 않고 있다”며 “눈가리고 아옹하는 격”이라고 비난했다. 이밖에도 ‘실무자들의 의견 수렴 과정이 없었다’, ‘최소한 시범 적용이라도 거쳤어야 하지 않았느냐’는 등 일선 공무원들의 문제제기 목소리는 이미 고시가 시행단계에 들어갔어도 여전히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처럼 가이드라인에 대한 불만과 문제 제기에도 불구하고 자치구들은 어쩔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로 인정하는 분위기다. 한 구 관계자는 “구청들이 현실성이 없는 규제책이라는 지적과 함께 고시를 유예해 달라고 건의하면 시는 가이드라인은 그저 방향성을 제시한 것일 뿐 따르고 말고는 구에서 알아서 판단할 일이라고 애매하게 답변한다”면서 “공식적으로는 가이드라인이 강제성이 없다고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시는 개별 자치구의 직속 상위기관인데다 각종 인센티브 평가의 주체이기 때문이라는 것. 자치구별 평가를 통해 교부금이라든가 인센티브 장려금을 늘리거나 줄일 수 있기 때문에 가이드라인을 따르지 않았을 때의 불이익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설명이다. 한편에서는 가이드라인의 부작용으로 나타나는 불법적인 행위도 벌써부터 감지되고 있다. 가이드라인을 반영한 고시가 확산되면서 제작업자들이 광고물 허가를 못받는 사례가 부쩍 늘었다.
업계 관계자들은 퇴짜를 맞는 일이 반복되자 허가절차를 무시하고 아예 불법 광고물을 설치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전한다. 아름광고 김명호 대표는 “규제가 심하니까 오히려 불법이 성행하고 있다”며 “새벽이나 공휴일 등 단속이 허술한 틈을 타 부착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동부크레인 김성학 대표는 “점포주에게 불법 간판이라서 못달아 준다고 하면 다른 간판집을 찾아가서 처리해 버린다”며 “법을 지키려 하면 오히려 손해를 보아야 하는 것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행정의 일관성과 형평성에도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크게 어긋나지 않는 부분은 융통성있게 봐주는 구가 있는가 하면, 색상 채도·명도 등을 일일이 문제삼아가며 허가를 잘 안내주는 구도 있다. 이러다 보니 제작업자들은 하루 전에 통과됐던 것이라 오늘도 되려니 했다가 퇴짜를 맞고 낭패를 보는 경우가 생겨 담당 공무원과 갈등을 겪기도 한다.
한 구 관계자는 “가이드라인을 이제 막 현장에 접목시키는데 문제점은 곳곳에서 노출되고 있다”며 “시간이 지나면 얼마나 더 심해질지 불보듯 뻔하다”고 잘라 말했다. 또 다른 구 관계자는 “일단 밀어붙이고 보는 지금의 가이드라인 정책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고 본다”면서 “제작업자들의 디자인 역량 강화 등 보다 근본적인 해결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