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희 기자 | 153호 | 2008-07-22 | 조회수 3,187
Copy Link
인기
3,187
0
종전보다 심의 통과 까다로워져… 오히려 불법 유도 애매모호한 심의 기준… 형평성 논란 야기
지난 수년간 광고물 허가 여부의 중요한 기준이나 잣대로 작용해온 광고물관리 심의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에 대한 비난 여론은 최근 서울시 가이드라인 등 광고물에 대한 강화된 규제책이 쏟아져 나오면서 심의를 통과하기가 종전보다 까다로워지자 더욱 거세지고 있다. 종전보다 심의 대상이 크게 증가한 것은 물론 심의 통과가 보다 어려워지면서 광고물 심의가 입시 치러지듯이 ‘재수’, ‘삼수’에 심지어는 ‘낙방자’들까지 속출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상황이 이렇게되자 이해당사자인 제작업체 및 광고주들의 거센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일선 공무원들 역시 민원 부담 증가에 어려움을 호소하기는 매한가지다.
광고물심의에 대한 비난은 비단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구체적인 심의기준이 없고 이권 개입의 소지도 커 그동안 시행되는 과정에서 수차례 형평성이나 실효성에 대한 문제점들이 지적돼왔던 터다. 그러나 정부나 지자체는 심의를 통과하지 못한 일부 업체에서 제기하는 불만일 뿐 하등의 문제가 없다는 태도로 일관해왔으며 ‘도시미관을 위해서’라는 이유로 이 제도를 존치해왔다. 아니 방치해왔다. 이렇게 사각지대에 방치돼 온 광고물 심의는 최근 규제일변도 광고물 정책이 폭풍우처럼 몰아닥치면서 다시금 비난의 화살을 받고 있다.
◆심의기준은 오로지 ‘도시미관’ 근본적으로 지적되고 있는 문제점은 객관적인 심의 기준이 없다는 것이다. 물론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대다수의 일선 공무원들이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심의 기준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도시미관’이라고 답변했다. 도시미관을 저해하지 않는 광고물은 심의에 통과시키고 그렇지 않은 광고물에 대해서는 수정·보완을 요구한다는 것. 이마저도 따르지 않을 경우 심의를 내주지 않고 있다. 심의시 구체적인 기준은 없으며, 심사위원자간의 논의를 통해서 도출된 결과가 곧 심의의 결과가 된다. 이에 대해 광고물 심의를 담당하고 있는 한 일선 공무원은 “도시미관이 무슨 기준이 될 수 있냐”며 “그것은 기준이 아니라 취지일 뿐”이라고 반박했다. 또 그는 “실질적인 심의 기준이 없는 것과 같다”며 “그저 위촉된 심의위원들의 시각에 의해 결정되는 것 뿐”이라고 지적했다. 즉, 대부분의 심의가 이를 담당하고 있는 심의위원들의 주관적 판단에 의존하고 있다는 결론이다.
◆주관적 판단에 의존… 이권개입 소지 높아 주요 심의 내용은 광고물의 규격이나 부착 위치, 광고 문구, 색채 및 그래픽 등 디자인이나 건물과의 조화 여부 등이다. 규격의 경우 미리 준비돼 있는 법규를 기준으로 판단하기 때문에 비교적 객관성이 담보된 항목에 해당된다. 또한 요즘에는 규제의 강도가 높아지면서 이미 심의 전에 법규에 적합한 규격을 맞춰 놓은 광고물들이 상당수라는 것. 결국 법에서 객관적으로 판단하지 못하는 디자인이나 광고의 세부 내용이 중요한 심사 항목이 된다. 그러나 ‘디자인’이라는 것 자체가 주관성이 다분한 분야인데다, 심의시 객관적인 판단 기준조차 마련돼 있지 않기 때문에 허용 여부가 개개인의 시각에 달려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권 개입의 소지가 농후하다는 지적이다. 한 일선 공무원은 “실제로 광고업자들이 심의위원에게 로비를 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며 “주로 최초 심의 전이나 부결 결정 후에 로비가 들어온다”고 고백했다.
◆현실과 동떨어진 심의가 오히려 불법광고물 양산 또한 심의위원들이 대부분 디자이너나 교수 등으로 구성되기 때문에 현장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태반이다. 더군다나 대부분의 심의가 현장이 아닌 탁자 위에서 사진과 도면을 통해 이뤄지기 때문에 현실과 동떨어진 수정안이 나오기도 한다. 이같은 조건부 가결, 즉 수정·보완을 전제로 가결을 받았다고 해도 문제가 발생한다. 재심의를 받으려면 시간과 금전적 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에 제작업자들이나 광고주들은 결국 심의를 포기하게 되고 불법 광고물 설치를 택하게 되는 것이다. 여러번의 수정·보완 끝에 심의를 통과했을지라도 역시 부작용이 나타나는 것은 마찬가지다. 수차례의 수정·보완을 거친 끝에 통과한 최종심의 결과가 제작업자나 광고주들이 수용하지 못하는 수준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들은 결국 형식적인 서류 심의만 통과 시킨 채, 문서와 상이한 광고물을 설치하는 쪽을 택한다. ‘법은 법대로’, ‘현장은 현장대로’ 가는 격이다. 이와 관련 한 일선 공무원은 “오히려 법이 제작자나 광고주들을 범법자로 내몰고 있다”고 표현했다.
◆형평성 문제 지속적으로 노출돼 그런가하면 형평성에 대한 문제점도 지속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동일한 CI를 적용해야 하는 기업 광고물의 경우가 특히 그렇다. 색상의 규제가 심한 자치구에서는 본래 지정된 광고물의 색상을 사용하지 못하고 전혀 다른 색상을 사용해야 하는가 하면, 같은 규격·위치에 부착하는 광고물인데도 불구하고 자치구마다 설치 가능 여부가 달라지기도 한다. CI를 중시하는 기업 광고주 입장에서는 뚜렷한 심의 기준 등 근거없이 발생하는 모순을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또한 간판을 교체할때마다 구마다 다른 조례나 심의 기준으로 인해 CI 교체에 차질이 생기는 등 시간적 손실을 보기도 한다는 의견이다. 생활형 광고물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동일 광고물에 대한 이중 잣대가 적용되는 사례가 빈번하다. 부산시 일선구 관계자는 “규격이나 디자인, 부착 위치 모두 동일한 광고물이 한번은 심의를 통과하고, 한번은 통과하지 못한 적이 있다”며 “제작업자가 도대체 기준이 뭐냐고 따지는데 할말이 없었다”고 실토했다. 심의 기준이 없기 때문에 형평성 문제가 제기되면 심의 결과를 정당화할 근거가 없는것이다.
◆개선·보완 시급… 사라져야 한다는 의견도 이같은 광고물 심의의 한계점이 여실히 드러나면서 개선·보완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심의가 너무 주관적이며, 비현실적”이라며 “구체적인 기준의 정립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다른 업계 관계자는 “요즘은 광고물 규제가 심해지면서 심의나 허가를 통과하기가 어려운 실정”이라며 “이때문에 광고물 설치가 차일피일 미뤄지면서 시간·비용적 손실을 겪는가 하면 아예 광고주를 잃기도 한다”고 전했다. 또 그는 “심의받지 않고 아예 불법광고물을 제작하는 게 훨씬 수월하다”고 덧붙였다. 심의 대상이 늘어나고 심의 번복이 잦아지면서 일선 공무원들의 업무 부담도 가중되고 있다. 한 일선구 관계자는 “광고물 심의가 한 주에 수십 건에 이르며, 이를 일일히 현장 실측하거나 심의위원 개개인의 의견을 모아야 하는 등 부담이 이만저만이 아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또다른 일선구 관계자는 “심의 통과하기가 종전에 비해 까다로워지고 있어 제작업자들이 심의를 회피하는 경우가 허다하다”며 “경직된 심의와 허가가 오히려 불법광고물을 양산해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차라리 실효성없는 심의는 없어져야 마땅하다”고 의견을 피력했다.
그러나 이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도 만만치않다. 광고물 심의는 꼭 필요하며, 지속돼야 한다는 의견이다. 제작업체들의 디자인 능력이 떨어진다는 이유에서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심의를 해보면 기업 광고물들은 크게 수정할 부분이 없다”며 “문제가 되는 것은 대부분 생활형 광고물들”이라고 전했다. 또 그는 “오히려 심의가 미흡한 제작자들의 디자인을 보완해주는 순기능을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런가하면 광고물 심의에 대한 한계점을 스스로 보완·개선해나가는 노력들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한 지자체는 광고물 심의 기준을 정립하고, 이 기준을 자율적으로 지키도록 하고 있다.
이에 대한 강제성은 허가를 통해 부여하고 있으며, 스스로 심의 기준을 지키기가 어려울 것 같으면 심의를 신청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또다른 자치구의 경우 심사위원과 심의를 받는 이해당사자간의 접촉을 금지하기 위해 100명이 넘는 심의위원을 위촉하고 매번 추첨을 통해 당해 심의를 실시할 심의위원을 결정하고 있다. 또 자율적으로 경직된 심의를 피하고 현실성을 감안한 열린 심의를 통해 불법광고물 양산을 미리 차단하고 있는 자치구도 늘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사례들은 아직 극소수에 해당되며,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다. 한 일선 공무원은 “이같은 심의 제도가 유지되고 법규가 강화되는 근본적인 원인이 제작업체의 디자인 능력 부재에 있다”며 “매번 고시를 남발하거나 규제를 강화하는 새로운 제도를 만들어낼 것이 아니라 제작업체의 디자인 능력을 강화하거나 보완할 수 있는 시스템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