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희 기자 | 154호 | 2008-08-11 | 조회수 2,3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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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진 없는 가격 전쟁은 공멸의 지름길 시장상황 어려울수록 정도가 답… 실력으로 승부수 띄워야
‘가격 파괴’가 상거래의 미덕인 양 잘못 이해되고 소통되고 있다. 소비자는 무조건 값싼 물건만을 쫓으며, 제조·유통사들은 가격 경쟁을 마케팅의 핵심 전략으로 내세운다. 바로 우리 업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이다. 소형 부자재에서 주요 자재, 심지어 장비에 이르기까지 업계에 유통되고 있는 대부분의 품목들이 ‘가격 경쟁’을 주요 마케팅 전략의 요소로 삼고 있고 일부는 이것으로 승부를 걸기도 한다. 물론 가격 경쟁 자체가 ‘상거래의 악(惡)’은 아니다. 선의의 가격 경쟁은 품질 경쟁으로 이어져 관련 시장 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할 수 있으며, 소비자에게는 보다 값싸고 질좋은 제품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도 한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 업계에서 벌어지는 가격 경쟁은 이러한 순기능적인 측면이 아니라 역기능적인 측면으로 벌어진다는 데에 있다. 비교우위 차원의 원가 경쟁이 아니라 ‘제살 깎아먹기식’ 출혈경쟁이다.
이같은 출혈경쟁은 경기 상황이 나빠질수록 더욱 기승을 부려 요즘들어 경쟁력있는 제품보다 경쟁력있는 가격을 내세우는데 급급한 모습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러다보니 업계 내 어떤 분야든지 시장에 신규 진입하게 되면 ‘값싼 물건’이 아니고서는 주목을 받지 못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결국 시장의 신규 진입자들은 기존 사업자보다 ‘더 싼’ 가격으로 물건을 내다파는데 매달리게 되고, 이같은 저가 경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악순환을 반복하게 된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요즘의 채널 시장이다. 정부 정책의 영향으로 채널 간판이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이에 따라 관련 장비나 제품들이 발달하면서 다수의 업자들이 이 시장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한꺼번에 과도한 사업자들이 시장에 몰려들면서 과잉경쟁이 불가피해졌으며, 업체들은 생존을 위한 치열한 가격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에 따라 채널사인은 불과 3~4년만에 30%란 가격 하락률을 보이면서 플렉스 간판이 10년에 걸쳐 밟았던 전철을 무려 3배나 빠른 무서운 속도로 따라잡고 있다.
한 기존 채널제작업체 관계자는 요즘의 채널시장 상황에 대해 “신규사업자들일수록 제품의 개발이나 품질의 향상 및 서비스 차별화 등의 노력에 승부를 걸어야 하는데 실제로는 그러한 것은 별로 안중에 없고, 가격으로 승부수를 띄우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한다.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다. 이미 실사출력 시장은 지난해 ㎡당 만원 미만대의 시장이 됐으며, LED 모듈 역시 ‘1000원대’ 시장에 접어들었다. 상대적으로 고가 아이템인 제작장비 역시 예외가 아니다. 고급화되고 차별화된 장비는 시장에서 퇴출되고 저가형 장비만이 살아남는 역설적인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또한 업계에 유통되는 상품 뿐 아니라 여러 가지 크고 작은 입찰이 이뤄지는 제작업계도 저가 경쟁의 덫에 걸렸다. 대부분의 입찰이 최저가 방식으로 진행되다 보니 낙찰을 위해서는 제작 단가를 밑도는 터무니없는 입찰가를 써내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업계 내부에서는 ‘마진 없는’ 치열한 싸움이 계속되고, 이를 견디지 못해 도산하는 업체들도 적잖이 발생하고 있다. 업계 스스로가 시장을 주도하지 못하고 가격에 끌려 다니는 꼴이다.
이같은 ‘수익성없는 전쟁’은 공멸로 가는 지름길이다. 밖으로는 유가가 폭등하고, 안으로는 규제 일변도의 정책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업계의 사업 환경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그야말로 화합과 상생을 통해 이 시장을 함께 키우고 업역을 확대하려는 노력이 절실한 때다. 업계 일각에서는 이럴 때일수록 정도 경영으로 돌파구를 열어가는 것이 해답이라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말이 쉽지 몸소 실천하기가 그리 쉬운 것만도 아니다. 최종 소비자인 광고주 또는 발주처가 상품이나 제품을 선택하지 않고 중간 소비자인 제작업자가 선택하게 돼있는 업종의 특성에 비춰 한 푼이라도 더 남기려고 하는 제작업자의 저가 선호를 쉽게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같은 풍토를 새로운 아이디어와 기술, 특허 등 실력으로 극복하고 단단한 입지를 구축한 업체도 적지 않다. 그러한 업체 가운데 실력 경쟁이 아닌 가격 경쟁으로 성공한 사례가 전혀 없다는 것은 가격경쟁이 난무하는 세태에서 성공하려는 기업이 취해야 할 방향과 자세가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일깨워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