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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10 13:25

"간판입찰 마른행주서 물짜내는 형국"

  • 이승희 기자 | 156호 | 2008-09-10 | 조회수 3,376 Copy Link 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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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무줄 예산-5회 반복투찰-기형적인 단가산정… ‘물짜내기 압권’ E은행
낙찰사들 울며겨자먹기로 제작 진행… 일부 낙찰사들은 아예 포기하기도

업계의 과당경쟁으로 마진율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는 대기업 간판 입찰이 결국은 마른 행주에서 물짜내는 지경에까지 왔다.
얼마 전 CI 교체를 발표한 바 있는 E은행은 요즘 그에 따른 간판 교체작업을 한창 진행중이다.
그런데 입찰을 통해 물량을 확보한 제작업체들이 상상을 초월하는 불리한 조건으로 낙찰을 받아 커다란 고통을 감내하고 있고 일부 업체는 아예 제작을 포기하기조차 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대기업들의 잘못된 간판입찰 행태에 대한 업계의 비난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물론 입찰이 최저가 방식으로 진행되는 바람에 업체들이 무리를 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당초 발표한 예산과 집행 예산에 배 이상의 차이가 난다는 데서 업체들로서는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업계에 따르면 간판 입찰의 경우 당초의 예산은 진행과정에서 물량조정 등의 이유로 실제 공사비와 차이가 나게 마련이다. 그러나 기업들은 발주 전에 물량과 단가 등을 조사, 예산을 잡기 때문에 그 차이는 그리 크지 않다.
그런데 이번 E은행 건은 입찰시 발표예산의 절반 이상이 날아간 것이어서 업계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더욱이 낙찰자 결정과 단가 산정도 기상천외한 기형적 방식으로 이뤄진 것으로 알려져 업계의 원성이 높다.           
    
◆165억원에서 70억원대로 쪼그라든 사업예산
E은행이 당초 현장설명회때 발표한 간판교체 사업비 규모는 165억원, 입찰을 통해 선정할 제작업체 수는 5개였다.  그런데 낙찰업체가 결정된 후 이 금액은 70억원대로 절반 이하로 축소됐다. 교체대상 간판의 물량이 당초 예상보다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낙찰 후에 간판의 크기가 줄어들고, 돌출이나 365일코너 등의 간판 설치계획 변경으로 물량이 크게 줄었다”면서 “결과적으로는 입찰 당시 물량 규모가 터무니없게 부풀려져 있었던 셈”이라고 말했다.
업계에 따르면 간판 제작업체들이 입찰때 사업성을 평가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중의 하나가 물량, 즉 사업의 예산이다.

때문에 입찰 전에 정확한 물량이 나오지 않을 경우에는 점포수로 대략적인 물량과 예산규모를 어림하고 마진을 계산한다.
업계 한 관계자는 “이번 모은행의 경우 전국에 점포가 대략 400개여서 165억원을 기준으로 하면 점포당 약 4,000만원의 간판비가 산정된다는 계산이 나온다”면서 “그러나 실제로는 그 예산이 70억원대로 줄어들어 점포당 2,000만원의 제작비도 안나오는 셈이 돼버렸다”고 말했다.
이 금액은 인건비, 자재비 등 제작비용을 따져봤을 때 이익은커녕 손해가 나는 일이라는 게 업계의 지배적인 의견이다.
업계에는 낙찰된 5개 업체 가운데 1개는 제작을 포기했고, 그 차순위 업체들 중 일부도 사업 의사를 밝히지 않아 8등을 한 업체가 5위가 되어 새로 참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포기업체는 향후 3년간 E은행의 입찰에 참가자격이 박탈되는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

한 업계 관계자는 “당초 예산대로라면 제작사들에게 괜찮은 일감이 됐겠지만 현실은 십원 한 장 남지 않고 되레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실정”이라고 토로했다.
낙찰사들은 입찰 때 E은행이 제시한‘간판구매총액(예산)이 은행 사정에 따라 상당부분증감될 수 있으며, 예상총액에 대한 당행 보장책임은 없다’는 조건에 사전 동의했기 때문에 대놓고 불만을 토로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한 제작업체 관계자는 “모은행의 예산이 줄어든 것은 서울시를 비롯한 지자체들의 가이드라인과 같은 강화된 간판 규제책 때문”이라며 “간판에 대한 규제정책이 업계에 얼마만큼의 타격으로 나타나고 있는지가 이번 은행건을 통해 여실히 확인되고 있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30분간 5차례 반복투찰… 짜낼대로 짜낸 최저가
E은행 입찰이 간판업계의 원성을 사고 있는 또 한 가지 이유는 기형적인 최저가 입찰 방식 때문이다.
입찰은 E은행 구매사이트를 통해 전자입찰로 진행됐는데, 한 번의 입찰로 끝나는 일반적인 최저가 입찰 방식과 달리 약 5분 간격으로 30분간에 걸쳐 5차례나 투찰이 반복적으로 진행됐다. 전례가 없는 방식이라 투찰 전에 예행연습도 했다는 후문이다.
이 방식은 첫 번부터 4번째까지 매 입찰때마다 자신의 투찰가격이 전체 참가업체에서 몇 번째로 낮은 금액인지를 투찰자만이 알수 있도록 돼 있다.

예를 들어 ㎡당 350만원이라고 써낸 금액이 7등으로 낮으면 7등이라는 사실만을 알려준다. 해당 업체는 이 등수를 토대로 순위당 투찰가를 추정하고 다음 입찰에 임하게 된다.
결국 5개 업체만 선정되니까 6등 이하로 통보받은 업체는 다음 입찰에서 더 낮은 금액을 쓸 수밖에 없다. 이러니 5차례 반복입찰 과정에서 입찰가는 가파르게 내려갈 수밖에 없었다고 입찰 참가업체들은 입을 모은다.    
한 응찰업체 관계자는 “아무리 최저가 입찰이라고 해도 마지노선은 지키려고 했는데 막상 컴퓨터 화면에 5위권 밖으로 나오면 물불 안가리게 되더라”면서 “이번 입찰은 아이디어를 짜낸 사람이 누구인지 궁금할 정도로 낙찰가격을 최대한으로 낮추기 위해 사람의 심리를 최대한으로 이용한 아주 교묘한 입찰이었다”고 말했다.   
 
◆현실 무시한 단가산정 방식
단가산정 방식 역시 지나치게 현실을 무시했다는 지적이다. 간판은 종류나 소재, 제작방식 등에 따라 그 종류가 백여가지에 이를 정도로 다양하다. 그래서 보통 기업이 입찰에 부칠 때는 대표적인 간판의 유형들을 지정, 유형별 단가입찰을 진행한다.
그러나 이번 E은행 입찰은 이같은 방식이 아닌 일단 총액입찰로 진행한 후 유형별 단가는 1순위 낙찰업체의 투찰가를 기준으로 총액을 계산해서 다시 그에 따라 비율로 배분하는 아주 복잡한 방식으로 진행됐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이는 현실을 무시한 단가산정 방식”이라며 “엄연히 에폭시 수지 채널과 일반 채널의 가격이 다르고, 조명도 채널에 LED를 적용하냐, 콜드캐소드를 적용하냐에 따라 가격이 달라지는데 이같은 비용의 상이함은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기형적인 입찰방식으로 인한 어려움 외에 낙찰업체들은 간판 교체작업 현장에서도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 제작업체 관계자는 “입찰 문제를 떠나 현장 상황은 더욱 피튀기는 전쟁터”라며 “제작상황을 총괄하는 책임자는 없고 구매, 감리, 디자인 등 3개 부서가 각각 독립적으로 일을 관장해 작업의 연계성은 떨어지고 각자 자기 목소리만 내서 제작사들을 압박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또 “지자체마다 다른 기준에 맞춰 허가받으러 다니는 것도 고된 일”이라며 “정부의 간판 규제정책과 대기업의 횡포 때문에 업계가 죽을 지경”이라고 울먹였다.
다른 업계 관계자는 E은행 간판에 들어가는 자재가 고가인 점을 들어 “제작비는 대한민국 최저로 깎아놓고 요구하는 건 하이 퀄리티 간판인데 이런 입찰에 대해서는 업계가 공동의 문제로 인식해서 함께 대처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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