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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13 14:09

2008 지자체 간판정비사업 현장을 가다 ⑧ 강원도 영월군

  • <영월=이승희 기자> | 158호 | 2008-10-13 | 조회수 3,211 Copy Link 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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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5년 종로와 청계천이 시발점이 된 간판개선사업의 열풍이 다른 지자체로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이에따라 간판은 더 이상 개인의 영역이 아닌 공공의 영역에서 재해석되고 있으며, 바뀌어야 한다는 인식도 한층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지자체가 종로나 청계천을 사업 모델로 여과없이 받아들이면서 그 한계점까지 고스란히 답습해 사업의 부작용도 적잖이 지적돼 왔던 터.
최근 간판개선사업이 ‘진정한 시범사업’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변화에 대한 요구와 자성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기존 사업과 차별화된 방식으로 간판 개선을 시도, 간판개선사업의 일대 전환의 계기로까지 평가받고 있는 사례가 있어 주목된다. 한때 석탄산업으로 경제적 부흥기를 맞이했으나 관련 산업의 쇠퇴로 경기 침체라는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강원도 영월. 영월의 중앙로와 중앙로 뒤편 요리골목에서 조용한 혁명이 일어나고 있다. 
 
간판개선사업의 새로운 방법론을 제시하다
관주도의 일방적 정비 지양… 주민 참여형 사업 유도
천편일률적인 간판 디자인 탈피… 다양한 소재 응용 시도 
 
◆오로지 건물 2동 정비로 시작= 영월군 중앙로의 간판개선사업은 오로지 2개의 건물을 대상으로 시작한 사업이었다. 기존 사업들이 대부분 사업 구간을 폭넓게 설정하고, 해당 구간에 속한 수십개에서 수백개에 달하는 점포의 간판을 일괄적으로 정비했던 것과 비교해 볼 때, 그 양적인 차이가 두드러진다.
그러나 겉으로 드러나는 양적인 차이보다 본질적인 차이는 사업 접근 방식에 있다. 관이 주도적으로 사업을 진행하는 것이 아닌 주민의 자율적인 참여를 유도하는 방식을 택한 것. 바로 2개라는 소수의 건물을 사업의 대상지로 선택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번 사업의 컨설팅을 담당한 송주철공공디자인연구소 송주철 소장은 “건물 2동을 선택한 것은 주민들에게 단지 간판 개선의 최소한의 모델을 제공하기위한 것”이라며 “모델을 통해 자발적인 개선 의지를 유도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이며, 모델 자체가 정답이 아니기 때문에 개선·보완의 여지를 남겨 둔 것”이라고 설명했다.

영월군 도시개발과 최창규 계장은 “관이 주도해서 수십, 수백개의 간판을 정비해버리면 그 사업 모델이 잘못된 것이라 할지라도 나중에 다시 뜯어 고치긴 어렵다”며 “최소한의 모델을 제시하고 개선의 방향을 제시하는 게 관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이같은 취지에서 시작된 이번 사업은 사업 대상지 선정에서부터 주민의 참여를 유도하고자 했다. 사업설명회를 통해 주민들에게 해당 사업을 소개하고, 간판 개선의 모델이 될 2동의 건물을 공모를 통해 결정한 것. 그러나 결과적으로 2개의 모델은 3개로 늘었다.
최창규 계장은 “건물 2동을 정비하는 과정에 1개 건물 입주자들이 자발적인 정비 의지를 피력했다”며 사업대상 건물이 3개로 늘어난 배경을 설명했다. 총사업비는 4,000만원으로 문화체육관광부가 지원했으며, 지난해 11월말부터 사업을 시작해 지난 8월말 완료했다.
 
◆석탄산업 부흥기의 ‘요리 골목’, ‘걷고싶은 거리’로 재탄생= 중앙로 뒷 편에 위치한 작은 골목. 그곳은 1960~1970년대 영월이 석탄사업으로 부흥기를 맞이했을 당시 요정 골목으로 통하던 지역으로 늘 수많은 인파로 북적이던 곳이었다.
당시에는 영월의 최대 상권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을 정도. 그러나 석탄 산업이 쇠퇴를 맞은 지금 그곳의 경기는 침체일로를 겪고 있다. 군은 전성기 때 요리 골목의 부활을 위해 공공미술과 간판개선사업을 병행해 ‘이야기가 있는 요리 골목’으로 변신을 시도했다.
골목 곳곳에는 실제 주민의 모습이 담겨져 있는 벽화가 도입되고, 기존 간판들은 감성이 묻어나는 간판으로 변신했다. 공공미술과 간판이 동시에 개선되면서 어둡던 골목이 환하게 바뀌는 하나의 계기가 된 것.
이 거리의 간판개선사업은 앞서 시작된 중앙로 간판개선사업을 모델로 삼았다는데 의의가 있다. ‘걷고싶은 거리’ 프로젝트를 담당한 영월군 도시개발과 안성자 주임은 “사업 시작 전에 여러 지자체들의 선례를 보고 간판은 으레껏 획일적으로 정비하면 되겠다고 생각했다”며 “그러나 지난해 진안군 백운면의 간판개선 사례를 보면서 간판으로도 이야기가 있는 거리를 꾸밀 수 있겠다는 발상의 전환을 하게 됐다”고 전했다.
 
또 그는 “마침 영월에도 중앙로라는 좋은 선례가 있어 이를 모델로 삼게 됐다”며 “요리 골목의 주민들 역시 간판을 정비하려면 중앙로 정도는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덧붙였다.
중앙로라는 모델이 있었기 때문에 요리골목의 간판개선사업은 타 지자체에 비해서 수월하게 진행됐던 편. 주민들이 대체로 협조적이어서 사업이 큰 무리없이 이어졌다. 그러나 간판의 크기에 직면해서는 일부 주민과의 마찰이 빚어졌던 것도 사실. 안성자 주임은 “사이즈를 일률적으로 지정하는데 있어 주민들의 불만이 일부 제기됐다”고 토로했다. 군의 해당 실무담당자들과 디자인사는 끈질기게 주민들을 회유하고 설득했으며, 1980년대 이후 지금껏 어두웠던 요리 골목의 표정은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사업 그 후, 자발적 간판 개선 움직임= 사업의 결과, 영월의 중앙로 및 요리 골목의 간판은 각자의 정체성을 담은 개성있는 간판으로 탈바꿈됐다. 개별 점포의 정체성이 돌이나 나무, 동물이나 사물의 조형물 등 다양한 소재의 응용·접목으로 표현됐다. 간판 크기 역시 기존에 비해 작아졌다.
송주철 소장은 “간판의 크기는 줄이되 가시거리를 최대한 확보할 수 있도록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간판 뿐 아니라 건물도 변했다. 간판을 개선하는 데 있어 건물의 리모델링을 병행한 것. 해당 지역 대부분의 건물들이 20, 30년씩된 노후된 건물들이었기 때문에 간판만 바꿔서 될 문제가 아니었다.
건물과 간판이 함께 바뀌자 개선의 효과가 배가 됐다. 이같은 거리의 변화를 주민들이 주목하기 시작했다. 해당 지역의 간판업 종사자들이 타지에서 유입된 사업자들을 배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기도 했으며, 정비된 간판이 허술하다는 비판도 서슴치 않았지만 대다수 주민들의 반응은 호의적이었다. 이번 사업을 통해 간판을 개선하게 된 청록다방 김경애씨는 “영월같은 시골에서 감히 이런 간판을 볼수나 있겠냐”며 “간판이 세련되고 가게 컨셉과도 잘 맞는다”고 전했다.
역시 간판을 개선한 누네띠네 화장품 엄순근씨는 “가게를 찾는 손님들이 간판 예쁘다는 얘기부터 한다”며 “전액 지원이 아닌 자비 부담이 있었지만 하나도 아깝지 않다”고 말했다.  
   
그런가하면 영월군에 주민들의 문의 전화도 쇄도한다. 영월군 도시개발과 김상일 과장은 “우리 간판도 바꿔달라는 요구가 빗발치고 있다”며 “그러나 예산상의 한계로 인해 군내 모든 간판을 정비해 줄수는 없기 때문에 건물 외관 리모델링을 자발적으로 하는 경우에 한해서 간판 개선을 해주는 지원책을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뿐만이 아니다. 군의 지원을 받지 않고 자발적으로 간판을 바꾸는 점포주들도 생겨났다. 이번 프로젝트의 제작을 맡은 태창 코리아애드 전도환 대표는 “거리 곳곳에 제 2, 제 3의 중앙로, 요리골목이 탄생하고 있다”며 “정비 지역의 간판을 모방한 느낌도 없지 않지만 일단 자발적인 개선 의지가 유도됐다는 것은 사업의 큰 효과”라고 평가했다. 문화관광체육부 공간문화과 한민호 과장은 “사업의 결과로 단지 간판 개선 의식만 높아진 것이 아니라 주민들의 생각도 달라지고 있다”며 “자기 돈을 들여 페인트 칠을 하고 거리를 깨끗하게 청소하는 등 지역을 스스로 가꿔나가는 노력들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같은 영월의 변화에 시선이 모아지자 최근 언론이나 학계 등 사회 각 분야에서 영월을 방문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물론 이같은 관심은 반짝할 수 있지만 영월 주민들은 침체일로를 겪고 있는 영월의 경제에 한줄기 희망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현재의 관심이 보다 확산돼 실제 경제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면, ‘문화’도 하나의 관광 상품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계기가 될 것이다.  

미니인터뷰 - 송 주 철 송주철공공디자인연구소 소장
중앙로의 간판 컨설팅 및 요리 골목의 ‘걷고싶은 거리 만들기’ 프로젝트를 동시에 맡아 총괄 감독한 공공디자인연구소의 송주철 소장을 인터뷰했다.

“간판에 대한 체계적 연구 시급… 전문 인력 양성도 중요”
“간판, 문화적·공공적 차원에서 바라보는 인식 개선도 필요”

_copy.jpg-이번 사업에 가장 주안점을 둔 부분은.
▲관의 지휘하에 일률적으로 이뤄지는 간판정비사업을 지양하고자 했다. 앞서 여러번 지적해왔듯이 그같은 사업 결과 간판의 획일화가 초래됐고, 막대한 예산 낭비로 이어졌다. 이제는 시행착오를 멈출 때도 됐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최대한 주민의 참여를 이끌어내고자했다. 실제로 영월에 상주하다시피했는데 이제 그 동네 분들은 나를 인근 주민처럼 대한다(웃음). 이와 더불어 여러 가지 소재를 활용한 다양한 간판을 디자인하는데 주력했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겪은 애로점이 있다면.
▲지난 1년간 사업에 참여하면서 울분을 터뜨리고 싶을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다. 아직까지 간판에 대한 시민의 인식 수준은 거의 바닥이라고 보면 된다.  간판이 무조건 커야 잘 보여야한다는 인식, 반문화적이고 반공공적인 생각이 팽배해 있다.
그런 상태에서 그렇지 않다는 것을 설득하는 과정이 어려웠다. 간판을 붙였다 떼었다 하는 것도 다반사였다. 그러나 지금은 간판에 대한 운동의 시기이고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과정을 수차례 반복하다보면 언젠가는 인식이 바뀔 것이라고 생각된다.  
 
-향후 간판 문화의 질적 향상을 위해 보완 개선돼야 할 점은.
▲이번 작업을 하면서 간판과 관련한 전문화된 연구가 시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몇 m 정도면 간판의 가시거리가 확보된다는 과학화된 데이터가 있었더라면 주민이 간판의 크기를 문제 삼더라도 근거로 제시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게 없으니까 지금은 맨땅에 헤딩할 수 밖에 없다. 같은 맥락이겠지만 전문 인력도 부족하다. 간판 문화를 개선하고자 한다면 관련 전문 인력을 양성하는 한편, 연구할 수 있는 토양이 마련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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