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중 기자 | 170호 | 2009-04-15 | 조회수 4,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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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식철사인, 그 낡음의 미학 속으로 낡은 듯 새롭게… 새로운 듯 익숙하게
오래될수록 더욱 깊어져 가는 아련한 그리움. 문명이 발달하고 새로운 것들이 쏟아져 나올수록 사람들은 점점 더 낡음이 가지고 있는 매력을 그리워한다. 너무도 빠르게 변해가는 세상에 대한 반작용일까. 앤틱(Antique), 빈티지(Vintage)라는 말로 낡음의 미를 새롭게 재창조하고 있다. 간판의 세계에서도 낡음이라는 테마는 언제나 사랑받을 수밖에 없는 주제다. 특히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것처럼 잔뜩 녹이 슨 철제 간판은 화려하기 그지없는 요즘의 간판들 속에서 오히려 새로운 멋으로 다가온다. 숨 가쁘게 변해가고 있는 세상의 속도와 관계없이 자신만의 스피드를 고수하고 있는 듯 여유로우면서 독특한 느낌을 선사하는 것. 낡은 듯 새로운, 새로우면서 익숙한 모습으로 시선을 이끄는 부식철사인의 세계로 독자들을 안내한다.
▲과하지 않은 멋스러움 ‘눈길’ 잔뜩 녹이 슨 철제 간판은 매장과 함께 지내온 시간을 보여주는 듯해 낯선 기분이 들지 않는다. 낡음이 전하는 푸근함, 세월의 흔적이 보여주는 여유로움으로 감성을 자극한다. 길을 마주칠 때면 언제고 한 번쯤 들렸던 적이 있었지 싶은 익숙한 모습으로, 깔끔하고 세련되게 단장된 간판들에게 지칠 때면 오히려 신선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부식철사인의 경우 ‘삐까번쩍’하게 빛나는 도시의 대로변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저마다의 화려한 자태를 뽐내며 재촉하듯 사람들의 발길을 이끄는 매장의 간판들 틈새에서는 그 미학이 온전하게 살아나지 못하고 되레 이질적인 느낌을 전하기 때문이다. 또한 부식철사인은 아크릴이나 폴리카보네이트 간판처럼 빛이 투과되지 않기 때문에 내부조명을 적용하는 것이 어렵다. 외부조명을 사용해야 하는 것이 대다수이고 철판에 구멍을 뚫어 내부조명을 적용한다 해도 은은하게 자신의 모습을 드러낼 뿐 다른 간판처럼 화려한 야경을 선사하진 않는다. 때문에 부식철사인이 어울리는 곳은 누군가와 경쟁해야 하는 자리가 아닌 도심의 한 구석, 고즈넉이 자신의 모습을 지킬 수 있는 바로 그런 장소이다. 낮에도 밤에도 과하지 않은 멋스러움. 바로 부식철사인의 매력이다.
▲코르텐강, 부식처리 갤브 활용해 제작 부식철사인에 있어 철로 제작된 사인이 시간의 경과와 함께 어쩔 수 없이 부식된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부식철의 느낌을 살리기 위한 소재를 사용하거나 부식처리를 하게 된다. 녹이 슨 듯한 연출을 하기 위해 사용되는 소재는 다양하지만 가장 대표적으로 사용되는 것은 흔히 코르텐강(鋼)이라 불리는 내후성강이다. 내후성강은 소량의 구리·인(燐)·크롬 등을 첨가한 강철합금으로 최초 강판단계서부터 녹이 슨 모습을 보이지만 밀착력이 강한 녹이 산화막을 형성시켜 일정기간 후에는 녹 자체가 부식을 방지하는 코팅제 역할을 해 더 이상의 부식이 발생하는 것을 차단하는 독특한 소재이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도장처리 없이 사용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안정적인 산화과정에서 파생되는 미적효과도 올릴 수 있다. 내후성강은 산화에 강하고 도장이 필요 없는 자연친화적인 특성을 강점으로 교각, 고급 건축물의 외장재로 사용되는 편이지만 최근 사인물에도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하지만 코르텐강의 경우 가격이 상당히 높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사용하기에는 비용부담이 크다. 이 때문에 일반적인 간판의 경우 가격대가 낮은 갤브에 부식도료를 사용해 유사한 느낌을 표현하는 방식이 많이 활용되고 있다. 갤브에 부식도료로 도장을 하면 산화를 증진시키게 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녹이 슨 효과를 낼 수 있다. 하지만 이 경우 시간의 경과와 함께 부식이 지속적으로 진행되게 된다는 단점이 있다. 이 때문에 표면에 에폭시 코팅을 해 더 이상의 부식을 방지하도록 하는 방법을 함께 적용하기도 한다.
삼청동의 레스토랑 ‘푸른별 귀큰 여우’의 사인. 독특한 형태로 디자인된 부식된 철소재의 간판에 로고와 상호를 새겨 넣은 점이 멋스럽다. 플렉서블 바 타입의 LED조명을 사인 뒤쪽으로 감아 사인의 바깥쪽으로 은은하게 빛이 피어나게 해 조명 적용이 어려운 부식철사인의 단점을 효과적으로 해결한 것도 눈길을 끈다.
인사동의 이탈리안 레스토랑 ‘안다미로’. 대형 음표 형태의 간판에 상호를 새겨 넣었다. 음표라는 특이한 디자인과 부식처리된 소재가 어우러져 앤틱한 멋을 한층 강조한다.
홍대 커피 전문점 ‘18그램’. 매장 상단의 파사드를 부식처리한 갤브강판으로 구성하고 같은 소재로 구성된 사인을 조그맣게 달았다. 사인에는 외부조명을 장착했는데 외부조명에 사용된 등기구에도 부식처리가 돼 간판과 조화로운 모습을 이룬다.
와인을 숙성시키는 빈티지(드럼통)와 같은 느낌을 전하는 나무판에 철근으로 사인물을 장착한 센스가 돋보이는 홍대의 와인전문점 ‘코르크’. 공사장에서 집어온 듯 녹이 슨 철근으로 이뤄진 사인이 독특하다.
코르텐강을 외장재로 사용한 건축물들. 고풍스러우면서 중후한 멋이 흘러나온다. 인천의 ‘나리병원’(왼쪽)과 서울 장충동의 ‘웰콤시티’(오른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