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희 기자 | 174호 | 2009-06-17 | 조회수 2,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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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위 옥외광고물등관리법령 무력화시키는 고시 남발·오남용 심각
인근 지역과의 형평성 문제 등 부작용도 속출 “광고주·옥외광고업자의 생존권 위협” 반발 확산
일선 행정기관이 법으로 정해진 옥외광고물의 설치 기준을 제한 또는 완화할 수 있는 법적 근거인 특정구역지정 고시가 남발을 넘어 오남용되고 있어 개선방안이 시급히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상위법인 옥외광고물등관리법 및 시행령이 상당수 지역에서 유명무실해져 버리는 ‘하극상’ 현상이 속출하고 있고, 각종 문제점과 부작용을 양산해 내고 있어 관련 업계의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 특히, 고시의 무게중심이 완화보다는 제한이나 금지 등 규제에 쏠리고 있는데다 규제의 강도가 워낙 강해 광고물 제작업자들은 물론이고 광고주(점포주)들로부터도 생존권을 위협하는 행정편의주의적 발상이라는 날선 비난과 원성을 사고 있다. 특정구역고시와 관련해 가장 근본적인 문제점은 그 내용이 상위법인 옥외광고물등관리법을 크게 상회하는 수준이라는 데 있다. 예를 들어 상위 법령에서는 1개 업소당 광고물을 최대 3개까지 설치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지만, 대부분 지자체들의 고시는 1업소 1간판을 원칙으로 내세우고 있으며, 규격도 법령에서 허용된 범위를 대폭 축소시키고 있다.
물론 제한 고시의 경우 그 성격상 상위법령에서 정하고 있는 수준을 제한하는 규제 내용이 담겨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문제는 상위법을 넘어서는 규제인 만큼 법 규정에서 정하는 ‘꼭 필요한 경우’에 국한하고, ‘매우 신중하게’ 결정돼야 할 고시가 무분별하게 남발됨에 따라 상위법의 기능 자체를 무력화시킨다는 데 있다. 고시를 오·남용해서 상위법을 유명무실하게 만들어버린 극단적인 사례가 바로 서울시의 광고물 가이드라인이었다. 서울시는 지난해 3월 초고강도의 규제를 담은 광고물 가이드라인을 느닷없이 선포하고, 이어 시 산하 25개 자치구에 특정구역고시를 통해 광고물 규제의 ‘핵폭탄’을 투하했다. 핵폭탄의 직접 영향권은 서울시내 전역이다. 그 영향으로 경기, 부산, 인천, 대전, 경남 등 광역 자치단체들이 각자 나름의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특정구역고시를 통해 이를 적용해나가고 있다. 물론 서울시처럼 해당 지역 전역을 대상으로 고시를 하지 않고 지구단위계획지역 또는 간판시범가로사업 대상지를 선정하거나, 신도시부터 시범 적용 후 확대 실시를 시도하는 지자체들도 있지만, 이들 역시 서울시보다 덜 급진적일 뿐 고시가 남발되기는 매한가지다.
무차별적인 고시가 낳고 있는 부작용은 여기저기서 드러나고 있다. 특히, 형평성 문제가 속출하고 있어 일선 담당 공무원들이 애를 먹고 있다. 먼저 인근 지역간의 격차가 큰 말썽이다. 실례로 2차선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돌출간판 허용 여부가 엇갈리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이는 관할 지자체가 달라서 빚어지는 경우도 있지만 동일한 자치구에서도 종종 일어난다. 도로 우측 거리에 속한 건물에는 돌출간판이 버젓이 부착돼 있지만, 그 바로 맞은 편 건물에는 돌출간판이 전면적으로 금지되는 경우가 발생한다. 이러한 불공평의 문제는 건물이 밀집된 지역에서 더 심각해진다. 그런가 하면 불과 며칠 전에 허가받은 광고물이 하루아침에 불법이라는 오명을 쓰기도 한다. 점포주 A씨는 얼마 전 합법적인 절차를 밟아 해당 지자체로부터 당당하게 간판 허가를 받았다. 그런데 1주일도 채 지나지 않은 며칠 후 갑자기 점포가 속한 지역이 특정구역으로 지정돼 새로 설치한 광고물을 철거해야만 하는 날벼락을 맞았다.
제작업계 한 관계자는 “황당한 얘기인 것같지만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라며 “비싼 돈과 아까운 시간 들여 합법적으로 내건 간판이 하루 사이에 불법으로 전락하는 일이 말이 되느냐”고 성토했다. 그는 또 “형평성 문제는 때로는 법정 공방으로까지 비화된다”고 덧붙였다. 고시가 전국적으로 급격히 확산됨에 따라 광고주나 옥외광고 사업자들은 점점 설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가뜩이나 경기도 어려운데, 광고물에 대한 강력한 규제까지 겹치다 보니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제작업계 다른 관계자는 “장사하는 사람들이나 간판업자들에게 간판은 밥줄”이라며 “규제 일변도의 정책이 이들의 생존권을 위협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업계에 따르면 정부의 정책적 규제가 고시를 통해 현실화되면서 실제로 많은 상권이 침체의 위기를 맞고 있으며, 다수의 간판업자들이 이미 도산했거나 도산의 위기에 봉착해 있는 상황이다. 이같은 피해는 비단 광고주나 업자에만 돌아가는 것이 아니다. 일선 지자체 담당 공무원들 역시 고시 남발로 야기되는 잦은 민원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한 일선 지자체 공무원은 “바로 옆 건물에는 대형 플렉스 간판이 2~3층까지 달려 있는데, 내 건물에는 왜 코딱지만한 문자간판만 달아야 하느냐는 항의를 받았다”면서 “당시 논리적이고 합당한 이유를 전혀 댈 수가 없었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이같은 상황에서도 고시의 남발에 대한 개선책이 마련될 조짐이 보이지 않아 업계의 시름과 불만은 더욱 커지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옥외광고 관련 한 법정단체가 옥외광고물등관리법 개정을 앞두고 고시의 조건이나 규정을 강화해 무분별한 남발을 방지해달라고 정부에 촉구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히고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공고된 정부 개정안을 보니 그같은 의견이 전혀 반영되지 않아 정부 차원에서 항상 강조하는 규제완화가 우리 업종에는 남의 나라 이야기인 것같다”고 자조했다. 다른 관계자는 “당초 행안부가 지자체에 대한 위임의 범위를 더 확대하는 쪽에 개정 방향의 큰 틀을 두고 있어 법 개정이 완료되면 오히려 현 가이드라인의 법적인 명분을 더 확고히 해주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