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련되고 멋진 간판은 절로 사람들의 발길을 이끈다. 최신의 기술과 디자인이 적용된 것일수록 더 시선을 끌기에, 많은 업소들은 시시때때로 간판을 리뉴얼하기도 한다. 그러나 때로는 간판에 담긴 역사 그 자체가 멋이 되고 가치가 되어 사람들을 이끌기도 한다.
인천 동구에 소재한 배다리 헌책방 거리는 이런 오래된 간판들이 끈끈하게 지역의 문화와 정서를 이어가고 있는 장소다.
배다리는 과거 작은 배들이 정박하면서 많은 물자가 교류되던 시장이었다. 한국전쟁 이후 먹고살기 위한 수단으로, 한편으로는 삶과 학구열이 만들어 낸 곳이 배다리 헌책방 골목이다. 이후 헌책방이 번성하면서 인천의 대표적인 헌책방 골목으로 자리를 잡았다. 1970년대에는 40여개가 넘는 중고서점들이 들어 서면서 학생들은 물론 시민들의 발길도 끊이질 않았다고 한다. 서울 청계천, 부산 보수동과 함께 전국 3대 헌책방 거리라는 명성을 얻기도 했다. 지금까지 남아있는 ‘집현전’은 1959년도에 문을 연 후 지금까지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책방이다. 하지만 시대의 흐름과 함께 헌책 장사가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 사업이 되면서 하나둘 문을 닫았다. 현재 문을 열고 있는 서점을 보면 전자에 언급한 집현전, 한미, 서점조합을 두고 있는 대창, 그리고 국제, 삼성, 창영, 우리서점, 아벨서점 등 10여곳이다. 이들이 아직까지 오래된 간판을 걸고 끈끈하게 헌책방 거리의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
재미있는 점은 낡은 거리로 치부되면서 소멸해 가는 과정을 겪기도 했지만, 레트로 문화가 부상하면서 다시 활력을 얻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이곳에는 저렴한 책 또는 절판된 책을 찾으려는 중년들의 모습과 함께 옛 문화 감성을 느끼고자 거리를 방문하는 젊은이들의 모습도 많이 목격된다.
또한 드라마 도깨비(2016), 무법변호사(2018), 영화 극한직업(2019) 등의 촬영지로도 소개되면서 유명세를 얻자 카페와 소품점, 공방 등 젊은 사업가들이 운영하는 가게들도 하나둘씩 늘어나고 있다.
이곳 책방과 상점들의 간판은 꽤나 낡았다. 레트로풍이 아닌, 수십년의 역사가 그대로 남아 골동품이라 할 만한 간판들도 많다. 하지만 지금은 이 간판들이 사람들을 끌어 당기는 힘이 되고 있다. 새롭게 오픈하는 상점들도 이런 분위기에 발맞추어 간판을 달다 보니, 낡음 자체가 하나의 테마로 작동하고 있다.
“자본주의는 백만장자와 권력자, 두 가지 목표를 이루려는 젊은 사람에게 어울리는 체제다. 헌책 마을은 젊은 자본주의가 아니라, 고향을 걱정하고 일을 하며 보람을 느끼는 중년을 위한 공간이다”
영국 웨일스의 한 시골마을을 세계적인 헌책방 거리 ‘헤이온와이’로 발전시킨 사업가 ‘리처드 부스’는 이런 말로 헌책방 거리를 정의한 바 있다. 세계적인 관광명소인 헤이온와이와 비교하기는 어렵겠지만, 우리에게도 배다리와 같은 공간들이 아직 남아있다는 것은 퍽 즐거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