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규제 샌드박스를 통해 ‘옥외광고물등 관리와 산업진흥을 위한 법률(이하 옥외광고물법)’이 규제하고 있던 디지털 광고를 일제히 허용하면서 업계의 위기감과 불만이 증폭되고 있다.
그동안 법이 허용하지 않았던 디지털 광고를 무분별하게 용인해 줌에 따라 옥외광고 산업의 생태 자체가 무너지고 있다는 진단까지 제기되고 있다.
정부는 최근 수년간 규제 샌드박스 제도를 통해 전방위적인 디지털 광고 활성화에 나서고 있다. 실제로 수많은 디지털 광고 관련 안건들이 규제 샌드박스를 통해 실증특례를 부여받고 실증사업으로 진행되고 있다.
규제 샌드박스는 신사업을 추진하는 기업들에게 기존 규제를 면제하거나 유예해 사업 추진 속도를 앞당기는 제도다. 규제 샌드박스에 신청된 사안은 ‘신기술·서비스심의위’와 ‘규제특례심의위’의 심의·의결 절차를 통해 ‘임시허가’와 ‘실증특례’를 부여하는 형태로 규제를 벗어나 사업을 진행할 수 있게 해 준다.
옥외광고 관련 사업은 특성상 대부분 실증특례를 받게 되는데, 실증특례를 거친 사업은 최대 4년 내 규제를 정비한 뒤에 정식으로 허용되게 된다. 하지만 실증과정에서 사업이 백지화될 수도 있고, 사업성 문제가 불거질 수 있기 때문에 실증특례를 받는다 해도 상용화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규제 샌드박스의 특성상 하나의 안건에 대한 실증특례 허용이 이뤄지면 이와 유사·동일한 형태의 사업에 대해서도 대부분 같은 조치가 이뤄지게 된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특례라고 하지만 관련 안건에 대한 규제 자체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상황이 빚어지고 있다.
대표적 사례로 버스 외부에서 디지털 광고를 송출하는 사업모델의 경우 △디지털사이니지 버스광고(제이지인더스트리) △전기버스 유리창 디지털사이니지 광고(글람) △투명 OLED 디스플레이 활용 버스 유리창 디지털사이니지(성홍티에스) △공항버스 LED사이니지 광고 서비스(티맵모빌리티) 등 유사 안건을 두고 실증특례를 받은 사례만 10건에 가깝다.
이 사업들은 기술과 방식에 있어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교통수단 이용광고물에 대한 규제를 해제한 사례들이라는 점에서는 맥락이 같다. 버스 외에도 오토바이·화물차·택시 등에 대한 외부 디지털 광고도 지속적으로 실증특례 허가가 이뤄지고 있어 옥외광고물법 시행령 19조 6항의 ‘교통수단 이용 광고물에는 전기를 사용하거나 발광방식의 조명을 해서는 안된다’는 규제가 지금 완전히 무력화된 것이나 다름없는 실정이다.
또 다른 사례로 자사광고용 간판과 타사광고를 위한 광고매체의 경계가 사라지고 있는 점을 꼽을 수 있다. 현행 법에서는 무분별한 디지털 광고매체의 난립을 방지하기 위해 1층에 설치되는 벽면 이용 디지털 광고와 창문이용 디지털 광고에 대해서는 자사광고만 가능하도록 규제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법의 취지 자체를 정면으로 위배하는 내용의 안건들도 실증특례를 부여받았다.
두 사례 외에도 여러 범주에서 현행법의 규제 취지 자체가 규제 샌드박스로 인해 왜곡되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어 업계의 우려가 날로 커지고 있다. 급격한 변화가 가져올 부작용이 우려되는데다, 준법에 대한 경각심이 해이해질 수 있다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한 옥외광고 업계 관계자는 “규제 샌드박스는 업계를 옥죄는 규제들이 해소된다는 점에서 필요한 부분도 있지만, 이 제도의 목적 자체는 새롭게 개발된 기술을 가로막는 시대착오적 규제를 개선하자는 것”이라며 “지금은 딱히 새로운 기술이 아님에도 ‘디지털’이란 단어만 붙으면 실증특례가 남발되고 있기 때문에 규제의 개선보다 그로 인한 부작용이 더 걱정된다”고 지적했다.
다른 관계자는 “디지털 산업 진흥을 앞세워 진입을 시도했다가 실패해 도심에 흉물로 방치되거나 사업자들의 한탕주의로 피해자가 발생하는 문제들이 이미 다수 발생했다”며 “행안부가 샌드박스 주무부처는 아니지만 옥외광고 주무부처로서 실태를 면밀히 파악하고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