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사가 ‘외관 개선’ 내세워 변경 요구하자 내부검토도 안하고 변경해줘 알루미늄이 더 싸고 시공도 쉬운데 계약변경으로 금액 140%나 인상 N사가 시범설치할 때는 “알루미늄은 답답하니 유리로 바꿔라” 요구
서울 지하철 역사 비상문은 서울교통공사(이하 공사)의 필요나 의지에 의해 자발적으로 추진된 것이 아니다. 2021년 감사원이 전동차가 비상시 정위치에 정차하지 못할 경우 장애인이나 노약자가 안전하게 탈출하기 위해서는 비승차구역도 개폐되어야 한다는 지적을 내놓으면서 비상문 설치가 의무화됐다.
설치 비용도 공사 돈이 아니다. 전액 서울시 예산에서 지원받는다. 시민들이 ‘비상시’ 안전을 위해 혈세를 바쳐 비상문 설치를 위탁한 셈이다. 그런데 ‘비상시’가 발생할 확률은 거의 희박하다. 그래서인지 공사가 지금까지 진행해온 비상문 설치 과정을 보면 엉터리도 이런 엉터리가 없다. 공공기관으로서 무능과 무책임, 무사안일을 넘어 모럴 해저드까지 드러나고 있다.
서울시 시민감사옴부즈만위원회(이하 위원회) 감사는 공사에 면죄부만 준 엉터리 감사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그런데 이런 감사에서도 무능, 무책임, 모럴 해저드를 잘 보여주는 사례가 지적됐다. 강화유리 재질을 알루미늄으로 변경해준 부분이다.
비상문은 낙찰사 H사가 제작업체로 Q사를 선정했을 때 이미 열림폭 축소와 재질 변경이 예정된 것이라는 시각이 있다. 2022년 시범설치를 한 N사가 관련 특허를 보유하고 있어 Q사가 이를 피해 1,400㎜ 열림폭에 강화유리로 된 제품을 만들어내기가 불가능할 것이라는 분석이 근거다. 2023년 8월 Q사가 N사를 상대로 특허심판원에 특허취소 심판을 신청하면서 이 분석은 힘을 얻었다.
N사는 특허의 핵심이 가로형 패닉바와 비상문의 하중을 지탱해주는 상부 레일구조 두 가지인데 이를 피해 강화유리를 써서 1,400㎜가 열리는 비상문을 만드는 것은 물리적으로 어렵다며 공사에 특허 제공 의사를 전했다. 그런데 Q사가 특허취소 심판 신청을 취하하고 독자 개발로 방향을 틀면서 Q사가 과연 어떤 제품을 내놓을 것인가에 초미의 관심이 쏠렸다. 하지만 Q사는 사업기간 종료때까지 제품을 내놓지 못했고 공사는 종료 하루 전에 계약을 변경, 납품기한을 184일 늘려줬다.
이 변경된 계약중 재질 변경에 관한 내용이 위원회 감사 결과 보고서에 적시돼 있다. 그에 따르면 H사는 계약 종료 10일 전인 2023년 12월 19일 공사에 재질 변경과 증액 요구가 담긴 문서를 보냈다. 공사 업무담당자는 12월 21일 H사가 제시한 ‘외관 개선’ 사유 외에 변경시 효과 등 별도의 구체적인 검토나 문서도 없이 공사비 2억358만원을 증액시키는 내용이 포함된 문서를 작성했고, 이는 12월 27일 기술본부장 전결을 거쳐 변경계약서로 확정됐다.
알루미늄은 강화유리보다 저렴하고 공법도 훨씬 쉽다. 강화유리는 광고판 부분과 여백 부분을 구분하는 별도 프레임을 설치하고 유리를 끼워넣어야 하지만 알루미늄은 전체를 커버하는 알루미늄판을 한 장만 부착하면 되기 때문이다. 재질 변경으로 공사비 대폭 인하의 요인이 생긴 것. 그런데 공사는 거꾸로 대폭 인상을 해줬다. 원계약 금액이 1억4,524만원인데 변경계약은 3억4,882만원이다. 2억358만원이 늘어난 것으로 인상률 140%다.
시범설치때 N사는 가격과 공법을 염두에 두고 알루미늄을 쓰려고 했다. 그런데 공사가 내부가 안보여 답답하다는 이유로 바꾸라고 해서 강화유리로 변경했다. 금액 인상은 없었다.
공사는 이 재질 변경을 업체의 납품기한을 늘려주는 근거로도 활용했다.
■ 패닉바 추가 이유로 3억8,000만원 증액도
한편, 보고서 38페이지 하단에는 ‘패닉바 추가(3.8억)’ 표현이 들어가 있다. 공사가 계약을 변경하면서 패닉바 추가를 이유로 공사비 3억8,000만원을 증액해줬음을 뜻하는 표현이다.
공사 입찰서에는 패닉바의 수량이 일체 명시돼 있지 않다. ‘중앙에 비상(수동) 열림레버(패닉바)를 설치하여야 한다’고만 명시돼 있다. 기설치된 모든 비상문의 경우 중앙에 가로형 패닉바가 일열로 설치돼 있다. 공사가 가로형 패닉바 일열 설치를 기준으로 입찰을 진행했음을 알게 해주는 부분이다.
그런데 설치중인 비상문은 세로형 패닉바가 중앙이 아닌 양쪽으로 치우쳐서 A형(3,430㎜)에는 4개가, B형(2,620㎜)에는 2개가 설치돼 있다. 세로형으로 설치한 결과는 안전장치로서의 기능 약화다. 전동차의 정차 위치에 따라 패닉바를 터치할 수 없는 사각 공간이 발생하는 치명적 약점이 드러났다. 그런데 공사는 패닉바 추가를 이유로 3억8,000만원을 올려줬다.
보고서에는 추가된 수량이 얼마인지, 증액이 적정한지 여부 등에 대해서는 일체 언급이 없다. 서울시 시민감사옴부즈만위원회의 엉터리 감사에서조차 새로운 의혹이 또 제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