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이 만인에게 평등해야 한다는 것은 법 자체의 형평성 뿐 아니라 법집행의 형평성을 더 강조하는 말일 것이다. 만약 어떤 법집행자가 정도가 비슷하거나 오히려 심한 다른 범법행위들은 모르쇠로 일관하면서 특정인 또는 특정행위만을 상대로 추상같은 법집행을 하려 든다면 당하는 사람은 억울하다고 느낄 것이고 때문에 잘 승복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요즘 일부 옥외광고업체들과 정부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야립광고물 철거를 둘러싼 분쟁의 경우가 그렇다.
행자부는 법적 시효가 만료돼 불법광고물이 되었다는 것을 이유로 야립에 대한 철거를 강력하게 밀어붙이고 있다. 그런데 그 과정을 보면 이게 과연 공정한 법집행인지, 정상적인 정부의 행정업무인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법원이 본안소송 판결시까지 철거를 중지하라는 가처분 결정을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가처분은 가처분일 뿐 광고물이 합법이라는 판결은 아니라면서 철거의 고삐를 더욱 죄고 있다.
또 철거 주체가 일선 시군구임에도 해당업체에 직접 공문을 보내 형사고발 등을 거론하며 4월 8일까지 시한을 못박아 철거를 요구하면서 기한내 철거를 하지 않을 경우 즉각 이행강제금을 부과하고 형사고발도 하겠다고 통보했다. 광고주인 대기업체들에 대해서는 ‘공동정범’ ‘종범’ 등의 험악한 용어까지 써가며 광고 삭제와 광고비 지불 중단을 종용하고 있다.
시군구에 대해서는 한 술 더 떠 철거에 미온적일 경우 지방교부세 지원을 중단하고 해당 공무원에 대해서는 별도의 특별감사도 실시하겠다고 몰아붙이고 있다. 이들 과정에서는 ‘처벌’, ‘최후통첩’, ‘극약처방’ 등 정부의 품격에 어울리지 않는 용어들까지 거침없이 동원되고 있다. 또 한 가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행자부의 이같은 광고물 철거가 유독 야립광고물만을 정조준하여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다.
같은 도로변 시설광고물이지만 주파수광고, 담장광고, 공공기관 광고, 골프장 안내광고 등 야립과 나란히 서있는 다른 광고물들은 행자부의 강제철거 칼날에서 비켜나 있다. 야립광고가 합법적으로 설치되고 게첨되었다가 시한 만료로 철거의 대상이 된데 반해 이들 광고물은 설치근거 자체가 없는, 따라서 허가와 심의를 받지 않은 오리지널 불법광고물들이다. 개중에는 그 크기가 수백미터에 달하고 도로변이 아니라 고속도로의 노면에 설치된 것까지 있다. 그런데 이들은 모두 강제철거의 칼날을 피한채 오로지 야립광고물만 행자부로부터 철퇴를 맞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철거중지 가처분 결정까지 내려져 있는 상황에서 스스로 ‘극약처방’이라 부르는 수단과 방법까지 동원, 야립광고물만을 겨냥하여 철거에 올인하는 이같은 법집행이 정상적인 것인지, 또 민주국가 정부가 이렇게까지 해도 되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와 관련, 본지는 행자부가 신설을 추진중인 옥외광고진흥원을 주목한다.
행자부는 기존 야립을 모두 철거한뒤 새 기준을 정해 다시 설치하고 이를 새로 신설되는 옥외광고진흥원에 맡겨 운영한다는 방침이다. 부연하자면 기존 문광부가 관장해온 야립을 행자부가 관장하는 야립으로 대체하고, 야립광고 사업의 주도권도 민간으로부터 회수하여 행자부 산하기관으로 넘기겠다는 것이다. 법에 의해 설치된 수백억원대의 멀쩡한 구조물을, 근거법 시한만료를 이유로 수십억원대의 경비와 ‘극약처방’을 동원해 철거하고, 곧바로 새 법을 만들고 수백억원을 들여 다시 되세우는 이 야립광고물 개조 프로젝트가 결국은 행자부 산하기관의 사업권 확보로 귀결되고 있는 것이다.
본지는 이러한 방향은 시대정신에 비춰서도, 업계의 발전을 위해서도 결코 옳지 않다고 본다. 국가 기간산업까지 민영화되는 마당에 광고사업, 그것도 옥외광고사업의 노른자위라 할 수 있는 야립광고물을 떼내 관이 직접 주도하겠다는 발상은 시대적으로도, 시장경제 원리상으로도 옳지 않다. 민간 경제영역인 옥외광고 사업은 옥외광고 업계의 몫으로 남아 있어야 한다. 일부 업체들의 독과점이 문제이면 독과점 해소책을 만들어 보다 많은 업체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하면 되는 것이고, 사업자 선정방식에 문제가 있으면 공정한 룰을 만들어 투명성을 보장해 주면 된다. 광고물에 문제가 있으면 보완하고 개선하도록 하면 된다.
그런데 과거의 일부 문제점들을 이유로 정부가 옥상옥의 산하기관을 만들고 이를 통해 운영까지 주도하겠다는 것은 또다른 독과점 체제를 만들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라고 본다. 야립 광고물은 이미 오래 전에 법적시한 만료가 예정돼 있었다. 그럼에도 행자부는 사전에 이렇다할 준비나 조치를 취하지 않다가 시한이 거의 다 되어서야 완전철거 방침과 동시에 대체입법을 통한 신규 설치 계획을 밝혔다.
하지만 업체들은 다시 세울 거면 수백억원 국가자원을 뭐하러 낭비하느냐며 반발했고 철거중지 가처분 신청을 법원이 받아들이면서 행자부의 계획에는 제동이 걸렸다. 국회에 계류중인 관련 법안들은 어느 것이 언제 통과될지 불투명한 상태다. 이처럼 어정쩡한 야립 공백기가 현실화되면서 업계의 피해 역시 현실화되고 있다. 해당업체들 뿐 아니라 하청관리업체, 실사출력업체, 소재업체, 장비업체 등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광고주들도 매체선택권을 빼앗긴채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야립을 위해 편성된 광고예산중 일부는 이미 온라인 등 다른 매체로 빠져나가고 있다. 특히 광고면이 뜯겨나간 흉한 모습의 야립광고물은 옥외광고에 대한 국민들의 혐오감을 키워 업계에 위기감을 조성하고 있다.
지난 20년간 업계의 간판매체로서 옥외광고산업 발전을 견인하고 옥외광고 업계는 물론이고 광고주들에게도 선망의 대상이 돼온 야립광고물. 그 운명이 과연 이렇게밖에 될 수 없는지, 다른 해법은 없는지 참으로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