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로그인
sp투데이
맨주먹으로 사옥짓고 토털광고기획사 키운 한일성 일성사인 사장
\"성공은 도전하는 자의 보수\"
89년 무조건 일본행…갖은 고생
기술·신소재 등 선진기술 습득
한 사람의 성공담을 이야기할 때 흔히 등장하는 단어 중 하나가‘맨주먹’이다.‘無’에서 ‘有’를 창조해 낸 이들을 상징하는 가장 적절한 표현이기 때문일 것이다.
경기 구리시 교문동에 위치한 일성사인의 대표 안일성(42)씨도 업계에서 \'맨주먹\'으로 사업을 일군 사람으로 통한다.
단돈 10만원을 밑천으로 차린 조그만 간판가게를 자체 사옥을 가진 토털광고기획사로 키워 온 원동력은 그의 새로움을 향한 강한 열정과 도전정신이었다.
가정형편상 미술학도의 꿈을 접어야 했던 안 사장은 85년 자신의 소질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무작정 간판제작업체의 문을 두드렸고 두 달간의 견습생활 후 곧바로‘믿음광고’를 차렸다. 그 후 3년간 선배 광고인들을 쫓아다니면서 광고제작 기술을 습득한 그는 우리나라의 간판제작 현실에 한계를 느끼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광고제작업자들이 어깨 너머로 배운 기술로 업을 영위하고 있는 우리의 현실에서 체계화되고 전문화된 교육을 기대하기엔 무리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접한 책이 일본의 사인잡지였고 이 잡지가 제 인생에 새로운 길을 열어줬습니다.”
일본잡지를 통해 선진기술에 대한 갈증을 채워가던 그는 89년 말 일본방문을 감행했다. 일본의 사인물들을 직접 보고 배워오겠다는 일념에서였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던가. 일본에 특별한 연고도 없고 일본어도 할 줄 모르는 그의 일본행은 결국 지금의 그를 있게 한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일본의 한 숙소에서 우연치 않게 만난 한국인 바이어가 옥외광고회사 신나(Shilna)그룹의 고리야마 스사 지사장을 만날 수 있게 해 준 것.
그의 열정과 투지를 높이 산 스사 지사장은 그에게 한 달간 함께 일할 것을 승낙했다. 무모한 도전에 그쳤을지 모를 일이 인생의 전환점이 되는 순간이었다.
“뭔가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다는 생각에 공장에서 새우잠을 자며 한달을 버텼습니다. 직접 일본인들과 부딪히며 선진기술을 익혔습니다.”
안 사장은 신나그룹과 우연찮게 맺어진 인연을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89년 첫 방문과 연수 이후 해마다 거르지 않고 일본으로 건너가 그들의 기술을 배워오고 있는 것. 처음엔 그를 그저‘희한한 젊은이’정도로 치부했던 신나그룹 회장과 고리야마 지점의 스사 지점장도 그의 일본방문이 3~4년째 꾸준히 이어진 시점인 90년대 초 그에게 마음을 열었다. 그는 아직까지도 이들과 업무적인 교류뿐 아니라 인간적인 교류를 돈독히 하고 있다.
“한해, 두해 꾸준히 일본을 방문하면서 얻은 것이 한두 가지 아니었습니다. 기술이나 신소재 등 업무적인 부분은 물론이거니와 그들의 일하는 태도나 근면성을 보면서 항상 제 자신을 추스리고 채찍질 했습니다.”
일본교류를 물꼬로 그의 회사도 성장일로에 들어서게 된다. 남다른 그의 노력이 결실을 보기 시작한 것. 일본에서 보고 배운 기술을 우리나라 현실에 맞게 응용했고 항상 새로운 것에 먼저 관심을 갖고 광고제작에 접목시켰다.
상호명을‘믿음’에서‘일성’으로 바꾼 92년에는 컴퓨터 커팅기를, 97년에는 실사출력기 및 일본사인제작 시스템을 도입하는 등 업계를 내다보고 발빠른 행보를 보였다. 그리고 99년에는 자체 사옥 마련의 꿈을 이뤘다.
그는 10년 이상을 꾸준히 일본을 오가며 수많은 사업 아이템을 구상하고 있다. 그의 머릿 속은 흡사 스폰지와도 같다. 새롭고 신선한 것이라면 뭐든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기 때문이다.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뭔가 새로운 것을 찾는 도전정신이 지금의 일성사인을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남들이 가지 않는 길, 남들이 하지 않은 일에 계속적으로 투자할 생각입니다. ”
이정은 기자 coolwater@sptoda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