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C
날씨 불러오는 중...
Echo

Weekly Updates

뉴스레터 신청하기

매주 보내는 뉴스레터로 편하게 받아보세요.

(제16호) 홍성광고 홍이선 사장 - 43년 간판인생

l 호 l 2003-03-27 l
Copy Link


... 이 시대의 진정한 ‘장이’


“간판이 그저 내 천직이려니 하고 살아왔습니다.”

올해로 43년째 간판인생을 걸어온 홍이선(72) 사장. 서울 은평구 응암4동에 자리 잡은‘홍성광고’를 운영하며 항상 정열적으로 일하는 모습을 보면 일흔을 넘긴 나이가 믿기지 않는다. 요즘도 직접 간판을 제작하고 현장에 나가 직접 시공한다. 몇 년째 은평구지회 월례회의에 거의 빠지지 않고 참석할 정도로 협회 활동에도 적극적이다.

매사에 열정적이고 활기가 넘쳐 또래의 노인들 뿐 아니라 젊은이들에게 ‘대단하다’는 말을 듣는 그는 “일을 하니 인생이 즐겁고 항상 행복하다”며 웃어 보인다.
홍사장이 처음 간판장이의 길을 택한 것은 60년대의 일.

30년 전북 군산에서 태어난 그는 50년대 후반 서울로 상경, POP광고회사인 영림실업에 취직하게 된다. 이곳에서 배운 것이 그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성형간판. 글자가 입체적으로 찍혀 나오니 많은 이들이 신기해했다. 60년도에 일본인 사장이 회사 문을 닫고 일본으로 건너가면서 그에게 성형간판 기술을 전수해줬고 그는 이 기술을 바탕으로 본격적으로 간판장이의 길에 들어서게 된다.

“그 당시만 해도 간판을 해서 다는 집은 고작해야 한의원이나 큰 병원 정도였습니다. 또 간판이라고 해봐야 페인트로 글씨를 쓴 목간판이나 함석간판 정도였고요. 그때 아크릴 판에 찍어낸 입체적인 성형간판을 보고 신기하다는 사람들이 많았죠. 전국을 돌며 간판을 달았는데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바람이 많은 제주도에서 작업한 일입니다. 그 당시 제주도의 약국이란 약국에는 거의 다 제가 성형간판을 제작해 달았습니다.”

그러나 원하는 글자를 자유자재로 찍을 수 없는 한계를 극복하지 못해 시작한지 3년만에 성형간판에서 손을 뗄 수밖에 없었다. 사업의 쓰디쓴 실패를 맛본 후 그는 은평구 응암동에 ‘삼성광고’라는 작은 간판가게를 열게 된다.
학창시절부터 미술계통에 소질을 발휘했던 그는 그 예술적인 끼와 손재주를 간판에 쏟아 부었다. 지금과 달리 그 당시의 모든 간판작업 공정은 수작업이었다.

“하나하나 일일이 쓰고 만들고 붙여 제작한 간판이 저에게는 하나하나 소중한 ‘작품’이었습니다. 며칠에 걸쳐 혼신을 다해 하나의 간판을 완성해 냈을 때의 성취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죠.”
그의 손재주는 거의 신기에 가까울 만큼 좋기로 소문이 났었다. 그는 말 그대로 진짜 ‘장이’였다.
“한번은 손님이 찾아와 일본에서는 불빛이 반짝반짝하는 간판이 있더라며 그걸 만들어 줄 수 없겠느냐고 하더군요. 지금의 네온간판을 말하는 거였습니다. 나무를 깎아 구리철사를 댄 후 그걸 모터와 연결해서 구리철사에 반짝반짝 빛이 들어오게 만들어줬죠.”

지금처럼 기성제품을 사다 조립하는 것과는 견줄 바가 못됐다.
그런데 이제 그의 그런 솜씨는 빛이 바래져 버렸다. 60?70년대를 지나 급격한 현대화를 거치면서 간판제작 공정도 기계화?단순화됐기 때문이다.
똑같은 기계에서 꺼낸 몇 가지 글씨체로 똑같이 요란하게 만든 간판은 서울 한복판에서부터 시골 변두리까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흔하디 흔한 풍경이 돼 버렸다.

“지금이야 간판이 모두 똑같아서 특색이 없지만 예전에는 간판의 글씨체나 만든 스타일을 보면 어느 집에서 만든 간판이구나 하고 대번에 알 수 있었습니다. 그 때만 해도 내가 만든 간판을 보고 솜씨가 좋다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꽤 많았어요.”
정말 그랬다. 그 옛날 붓으로 ‘뼁끼’칠 해서 썼던 간판은 요즘의 그것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장인정신이 묻어나는 진짜 ‘작품’이었던 것이다.

“예전에야 솜씨 하나만 봤지만 요즘에는 워낙 간판작업도 대형화·조직화되다 보니 우리처럼 영세한 간판업자들이 설 자리가 더 없어지는 것같아 아쉬울 따름입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나를 찾아주는 고객이 있는 것만으로도 만족합니다.”
그의 앞으로의 소망은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계속 간판장이의 길을 걷는 것. “하늘에서 내려줬다고 해서 천직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건강이 허락하는 한 죽는 날까지 간판과 함께 하고 싶습니다.”

이정은 기자 coolwater@sptoda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