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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8호) 만나봅시다/한국실사 맹 경 수 대표

l 호 l 2004-02-23 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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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없음












<만나봅시다>
  한국실사    맹 경 수  대표
 <연혁>
·46년 10월 서울 종로구 출생
·71년 해병 199기
만기전역
·69∼70년 청룡부대로 월남참전
·74년
국민대학교 행정학과 졸업
·73년 쌍용 입사
·79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지점 주재원(과장대리)
·82년
이집트 카이로 지점장
·84년 사우디아라비아 본부장
·90년
쌍용미국법인 부사장
  (뉴저지, 시카고, 휴스턴 지점담당)
·96년
쌍용 상무이사 승진
·97년 싱가포르 법인 사장
·98년
만고교역 설립
·01년 대한민국 해병대 전우회
  IT담당
자문위원
·02년 한국실사 설립
“도전하는 삶은 아름답다”
 영어, 일어, 아랍어 등 5개 국어 유창한 실력파
‘한국실사’로 사인업계 진출… 경영능력 인정받아
국내 실사업계에 5개 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실력파 CEO가 있다.
2년전 대형실사출력업체 ‘한국실사’를 창립하며 업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맹경수 사장이 바로 그 주인공. 사인시장에 입문하기 전 전세계를 누비며
종합 무역인으로 맹활약했던 맹 사장의 지나간 발자취와 삶의 여정을
들여다본다.        
■“삶은 도전과 쟁취의 장”
지난 1968년 해병대에 입대한 맹 사장은 이듬해인 69년 월남전에
참전, 2년여의 세월을 월남에서 보내고 전역했다. 하루에도 수십차례
죽음과 삶이 교차하는 그곳에서 살아돌아온 그에게 삶의 의미는 남달랐다.“죽다
살아온 저에게 살아있는 매순간은 도전의 연속이었죠. 또한 목표가 정해지면
꼭 쟁취해야 한다는 의식이 뇌리속에 박히게 됐구요.”그후 그는 하루
3∼4시간의 수면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에는 공부에만 매진했다고 한다.
한때는 머리고 눈썹이고 몽땅 밀고 공부한 적이 있었다던 그는 당시를
회상하며 미소를 지었다. “주변 사람들이 기겁을 하면서 피하더라구요.
군시절에 검게 그을린 몸과 얼굴에 머리카락은 커녕 눈썹까지 없는 사람이
걸어다녔다고 생각해보세요. 무서울 수 밖에요.” 그렇게 자신의 발전을
위해 3년여의 시간을 투자하던 그는 73년 쌍용무역종합상사의 공채시험에
합격, 종합무역인으로서의 첫발을 내딛게 된다. 그는 입사초기 무역업무를
익히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했던 기억을 풀어놨다.“당시에 저는 행정고시를
준비하고 있었죠. 친구의 권유로 우연히 보게된 시험에 합격하게 됐습니다.
그러니 제가 무역업무에 대해 당연히 생소할 수밖에 없었구요. 그래서
전 모두가 퇴근할 때 함께 퇴근하고선 조용히 경비아저씨를 찾아가 음식을
제공하고 홀로 사무실로 돌아와 무역업무에 관한 지식을 쌓고, 밤을
새가며 맡은 업무를 모두 처리했죠. 이 비밀을 모르는 직장상사나 동료들은
제가 해놓은 업무 처리량을 보면서 놀라곤 했었죠.”
■전세계 누비며 5개 국어  습득한 맹경수 사장
그의 쉼없는 노력은 해외지사에 근무하면서도 끊임없이 이어졌다.전세계를
누비며 그 지역의 언어를 습득하기 위해 노력한 그는 현재 영어, 일어,
말레이시아어, 아랍어, 이탈리아어 등 5개 국어를 능수능란하게 구사한다.
"보통 해외지사에 근무하게 되면 여행도 다니면서 자신의 여가를
즐기는 경우가 많죠. 하지만 전 남는 시간에 현지 말을 익히는데 더
투자했죠. 월남시절부터 닦아놓은 영어회화 실력이 남부럽지 않게 있었지만
영어는 절대 사용하지 않았어요. 항상 사전과 펜이 담긴 가방을 들고
다니면서 그 지역사람들과 대화하며 그네들의 말을 익혔던거죠. 그 덕분에
지금 5개 국어를 구사할 수 있게 됐네요.”그런 그의 노력때문이었을까.
입사 3년째인 79년 인도네시아 주재원(과장대리), 81년 이집트 지점장에
이어 82년 사우디아라비아 본부장, 89년 뉴욕지사 부사장을 거쳐 97년에는
싱가포르 법인 사장을 역임하는 쾌속승진을 거듭하며, 한때 중앙일보사가
선정하는 ‘한국경제를 이끄는 1000명의 경제인’에 뽑히기도 했다.

■시련 딛고 ‘한국실사’로 재기    
5개국어로 중무장하고 뛰어난 업무실력으로  회사에서 인정받던
그에게 시련이 다가왔다. 싱가포르 법인 사장으로 근무하던 98년도에
한국을 강타했던 IMF의 여파가 그에게도 미쳤던 것이다. 당시 쌍용자동차의
적자가 해외 무역팀에 영향을 미쳐 회사를 그만둘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 "어쩔 수 없는 상황이긴 했지만 참 허탈했죠. 회사를 나온
뒤 낚시로 하루하루를 보냈죠. 그렇게 3년이라는 시간이 흘러갔죠. 그때
조금만 더 마음을 굳게 먹었다면 지금보다 더 발전된 ‘한국실사’로
만들어 냈을지도 모르죠.”방황과 시련 속에서 고뇌하던 그에게 성공적인
재기를 하게끔 이끌어준 이가 있었다. 당시 실사시장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던
허전텍 허홍식 사장. 허 사장은 그에게 실사시장에 입문할 것을 권유하며
재기의 발판을 마련해줬다고 한다. “하루는 낚시를 하고 있던 저를
찾아온 허 사장이 ‘이러다 사람 망가지네, 다시 한번 시작해보세’라며
제게 실사시장에 입문할 것을 권유하며 저의 흐트러졌던 마음을 다시금
잡아줬죠. 실사시장에 생소하던 제게 다소 고민되는 부분도 있었지만
허 사장의 정신적 격려는 제게 너무나도 깊은 감동을 주었죠. 이에 모든
고민을 털어버리고 실사시장에 입문해 지금의 ‘한국실사’를 창업하게
됐죠. 지금도 허 사장에게 너무나 감사한 마음입니다.”
■고부가가치 지향하는 ‘한국실사’로
국내의 굵직굵직한 실사출력업무를 도맡아 하며 사인업계에서 명성을
쌓아가고 있는 맹 사장은 실사출력외에 고부가가치 산업에도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국내 실사출력시장은 업체간 과당경쟁이 치열해 들인
공에 비해 거둬들이는 성과물이 너무나 적죠. 이런 시장의 흐름을 읽고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보다 효율적인 이윤을 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우선 지난해 출시된 ‘렌티큘러’가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죠.
이 ‘렌티큘러’가 확산된 이후에는 또다른 아이템을 사인시장에 선보일
겁니다.”사인시장에 발을 들여놓기가 무섭게 업계의 리딩 컴퍼니로
‘한국실사’를 급부상 시켜놓은 맹경수 사장. 뜨거운 열정으로 끊임없이
도전하는 그의 다음 행보를 기대해본다.
진창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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