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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투데이
사회 전반에 걸친 ‘문화적 전환’의 바람 간판도 예외일 수 없어
광고효과와 미적효과, 양적효과와 질적효과 조화 이뤄야
간판개선은 문화운동과 시민운동 차원서 이뤄져야 성공 가능
희망제작소 부설 간판문화연구소 / 최 범 소장
간판을 보는 시각이 변하고 있다. 인식의 전환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면 어떻게 변하고 있는가. 한마디로 말하면 ‘문화적 전환(Cultural Turn)’이다. 이는 사회 전 부문에 걸쳐 문화적 요소가 우위를 점하는 방향으로의 변화를 가리킨다.
이러한 현상은 대체로 1990년대 들어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과거 산업적 가치나 정치적 가치만을 중시했던 것에 비해 상대적으로 문화적 가치의 중요성이 커진 것을 가리키는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서두에서 언급한 간판을 보는 시각의 변화란 바로 사회 전반에 걸친 ‘문화적 전환’이 간판에도 적용되고 있음을 가리키는 것이다. 최근 간판을 둘러싼 기술적, 제도적 환경의 변화에 대해서들 많이 이야기하지만 필자가 보기에 가장 근본적인 변화는 바로 문화적인 것이다.
올해 초 발족된 희망제작소 부설 간판문화연구소는 그러한 인식의 변화를 가장 잘 보여주고 있다. 바꾸어 말하면 간판문화연구소의 등장은 간판을 보는 우리 사회의 시각이 이전과 달라졌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발족한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간판문화연구소의 존재가 꽤 알려지고 많은 기대를 받고 있는 것 같다. 따라서 간판문화연구소의 성격을 간판에 대한 인식의 전환과 관련하여 간략히 밝혀보고자 한다.
간판문화연구소의 전제는 크게 두 가지이다. 첫째는 간판을 문화로 본다는 것이다. 간판의 공식적인 명칭은 옥외광고물이다. 간판이 일상용어라면 업계와 행정기관에서는 옥외광고물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옥외광고업이라든지 옥외광고물등관리법이라는 용어들이 모두 그렇다. 옥외광고란 말 그대로 신문광고나 방송광고 등 다른 매체광고와 구분되는 것으로서 옥외에 설치되는 광고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옥외광고라는 말은 간판의 광고로서의 성격을 표현한 것이다. 물론 간판은 광고이다. 그러나 단순히 광고만은 아니며 그 성격은 복합적이다. 광고이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도시 경관을 좌우하는 중요한 시각적 요소인 것이다. 말하자면 간판은 도시 문화의 일부인 것이다.
그러므로 간판을 문화로 본다는 것은 간판이 가진 속성 중에서도 도시 문화로서의 측면에 주목한다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간판이 가진 광고적 성격을 부정하거나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동안 간판을 광고로만 보아온 까닭에 그것이 지닌 도시 문화적 측면이 무시되어온 것을 바로 잡고자 하는 것이라고 보아야 옳을 것이다. 그러니까 간판문화연구소는 간판이 가진 속성 중에서도 도시 문화적 측면에 초점을 두고 접근한다. 간판을 광고로 볼 경우에는 그것의 광고 효과와 양적 측면에만 주목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간판을 문화로 보는 것은 그것의 미적 효과와 질적 측면에 주목하는 것을 의미한다.
둘째는 간판의 주인이 시민이라는 것이다. 이는 첫째 명제와 바로 연결된다. 간판을 보는 시각의 전환은 간판의 주체 문제에도 그대로 적용되기 때문이다. 간판을 광고로 볼 경우 그 주체는 광고주(간판주)와 간판 제작자가 되지만, 간판을 도시 문화로 볼 경우 그 주체는 시민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광고로서의 간판 그 자체는 개인의 소유물이지만, 도시 문화의 일부로서의 간판은 공공재이며 그런 의미에서 도시를 살아가는 모든 시민의 것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앞으로의 과제는 어떻게 간판이 가진 사유물의 성격을 도시 문화라는 공공의 가치 규범 내에서 제어하고 조화시켜나갈 것인가 하는 것이다.
이것이 간판문화연구소가 추구하는 또는 간판을 보는 두 가지 인식론적인 전제이다. 그런 점에서 간판문화연구소는 우리 사회의 간판개선 노력이 곧 문화운동이면서 시민운동이 되어야 한다고 보며 그러한 움직임을 추동하는 엔진이 되고자 하는 것이다.
간판문화연구소의 등장은 분명 간판을 보는 기존의 관점에 인식론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그것은 어쩌면 광고와 산업의 관점에서 간판을 이해하는 것과는 대립되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간판문화가 반드시 광고나 산업적 관심과 대립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간판을 보는 관점을 다양화하고 우리 사회의 간판 현실을 더욱 풍요롭게 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 사회의 간판이 도시 환경에 끼치는 부정적 영향에 대해서는 많은 지적이 있어왔다. 그런 가운데 옥외광고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그다지 높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는 옥외광고든 간판이든 업그레이드되어야 할 때가 되었다.
간판이 도시 환경에 끼치는 부정적 영향은 한계에 다다랐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간판 현실을 이대로 두어서는 안되며 바람직한 방향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데 대해서는 사회적 합의가 존재한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간판문화연구소를 만드는 과정에서 그러한 합의를 확인할 수 있었고 여러 단체와 사람들로부터 지원을 약속받기도 했다. 마침 정부에서도 제도를 개선하고자 나서고 있다. 어떤 식으로든 간판은 이제 변하지 않으면 안되는 시점에 있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히 기술 혁신이나 제도와 같은 외부 효과에 의해서가 아니다. 더욱 근본적이고 심층적인 동력이 작동하고 있다. 바로 ‘문화적 전환’이다.
간판은 광고를 넘어 공공의 자산이자 문화가 되어야 하며 우리는 그 변화의 출발점에 서 있다. 이는 단순히 계몽적인 관점에서의 제시가 아니다. 이것은 옥외광고산업의 방향을 알려주는 지침이라고도 할 수 있다. 간판이 우리 시대 도시문화의 일부가 되도록 노력하는 것, 그것만이 그동안 간판이 초래했던 부정적 요소를 최소화하는 대신 긍정적인 요소로 전환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